<육필서신> 제주땅에 뼈를 묻고 싶다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간절한 호소


  ‘평화의 섬 제주!’
  세계 으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고, 지나치지도 않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그 캐치프레이즈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유니 평화니 하는 말들은 하도 많이 써서 케케묵고 싫증나는 말인데도 왜 ‘평화의 섬 제주’라는 말에 우리 모두 공감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분단 상태의 불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은 건 제주도청이었고, 제주도를 갈 때마다 제주도 소식을 전하는 TV 화면을 통해 그 말을 노랫가락처럼 듣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정반대의 말이 터져 나왔다. ‘서귀포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 벼락 치듯 한 그 돌출적인 결정에서는 평화를 박살내는 전쟁의 화약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평화의 섬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전쟁을 위한 군사기지 설치란 말이냐. 이런 모순이 어디 있으며, 남해안에 해군기지 할 섬들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제주도냐, 하는 항의와 반대가 일어났다. 그랬더니 정부에서 하는 말, 군 기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착하고 순박한 국민들이 금방 입 다물게 되고, 살짝 속아 넘어가기 좋은 그럴싸한 말씀이시다.

  그러나 그건 능란한 정치적 말장난이고 속임수일 뿐이다. 인류 역사 이래 군인들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고, 군 기지는 크면 클수록 큰 전쟁을 야기 시켰던 것이다. 물론 군 기지가 잠정적으로 평화를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그런 변명이 왜 하필이면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비켜선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전 국민적 공청회도 없이, 반대하는 국민들을 몰아치며 해군기지 공사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려 하고 있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섬에.

  제주도 중에서도 경관이 더욱 빼어난 서귀포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서귀포 일대는 관광객에 군인들이 범벅이 된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삶의 여유와 휴식과 화평을 맛보고 즐기려는 것이 관광의 주목적이다. 그런데 군인들이 드글거리다니. 그 살벌함과 불안함을 어느 관광객이 좋아할 것인가.

 

   
▲ 범섬이 바라다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에서 제주해군기지 강행에 대해 걱정하는 조정래 선생  ⓒ제주의소리
   
▲ 조정래 선생이 <제주의소리>에 보내온 육필 기고문 ⓒ제주의소리

 

  그리고 또 한 가지, 국가 안보를 위하는 합동군사훈련이니 어쩌니 하며 우물쭈물 얼렁뚱땅 해서 미 7함대가 정박하면 어찌할 것인가. 그 큰 배에서 3천명이 넘는 미군들이 쏟아져 나와 서귀포 일대를 뒤덮어버리면 어찌 될까. 그들을 반기는 술집들의 번창, 그들의 돈을 노리는 불나비들의 창궐……. 이렇게 망하는 제주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스럽다.

  그런 와중에 제주도에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의 땅 사기 바람이 그것이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50만 불을 투자하고, 내국인 5명 이상을 고용할 경우 영주권을 부여할 수 있다. 그 규정에 따라 한 사람이 이미 영주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중국 부자들이 제주도 땅을 사들이기 시작해 올해는 작년보다 234배나 급증하여 그들이 가진 땅이 벌써 20만평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다. 경치 좋고, 가깝고, 자기 나라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할 것을 알고 중국의 큰 부자들이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나서면 어찌 될 것인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중국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니까 제주도로 눈을 돌려 몇 조 위안을 쏟아 부어 버리면 아름다우나 좁은 섬 제주도는 순식간에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그들이 80~90%쯤 제주도를 차지한 다음 제주도가 자기네 나라 것이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에이, 그건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엄연히 법이 있는데 무슨 무식한 소리냐고? 과연 그럴까? 중국은 지금 동북공정만 할 것이 아니다. 치졸하고 뻔뻔하게도 아리랑이 자기네 것이라고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하고 있다. 그뿐인가. 바다 속 암초 이어도에 우리가 애써 기상관측소를 세운지가 벌써 언제인데 그게 자기네 것이라고 억지 쓰기 시작한 것이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덤비는 일본과 뭐가 다른가.

  너나없이 돈에 홀리고 환장한 시대라고 하지만, 도민의 경제 활성화라는 미명을 내걸고 다급하게 치닫는 망국적 행정을 제주도청은 자제해야만 한다.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사들이는 것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와 압구정동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고 떠들썩했다. 분명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자 유치를 해 중국 사람이 7성급 호텔을 짓게 된다고 자랑이다. 7성급 호텔?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그 호텔이 높이 솟아 한라산을 가려버리면 어쩌나? 그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연 파괴고 망국이다. 제주도가 천 년 만 년 사랑받는 섬이려면 자연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고, 올레길에서 아스팔트와 각목길을 걷어내 돌이 울퉁불퉁하고 잡초 드문드문 난 옛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길이 그지없이 낭만적이며 발바닥 지압에 효과가 최고라는 것을 어찌 공무원들만 모를까.

  나는 제주도민이 되고 싶다. 제주의 빼어난 풍광 속에서 작가의 말년을 보내다가 그 땅에 뼈를 묻고 싶다. 행정적으로 제주도가 망쳐져 내가 그 꿈을 접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거목이자 ‘태백산맥’의 저자인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제주의소리>에 특별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그에겐 특별한 인연이 없는 땅이지만 말년에 뼈를 묻고 싶다는 땅이 바로 제주입니다. 제주 역사, 제주 땅, 제주 사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그가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특히 해군기지 건설이나 중국인과 중국자본 유치 정책을 보면서 적지 않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생은 고민 끝에 제주도민들, 제주도 정책당국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당부하는 육필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제주도민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접지 않도록 해달라는 조정래 선생의 서신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제주의소리>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조정래(1943년 8월 17일~) 선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전라남도 승주군(현 전라남도 순천시)의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 <선생님 기행>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어떤 전설>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유형의 땅>,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연습> <사람의 탈> 등을 저술했다.  특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은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대표적 역사소설이다. 조정래 선생의 작품은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 <오, 하느님>(문학동네)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만해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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