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여성사제와 교회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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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daram77] 쪽지 캡슐

2000-03-05 ㅣ No.566

아래에 있는 송 님과 승 님의 글을 잘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건 살아있는 교회의 표징이란 생각도 듭니다. 자칫 분열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원론적인 문제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잠시라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의 논의는 다람쥐 쳇바퀴돌듯 끝이 없이 맞물리는 듯 하군요.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리고 이성적인(?)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여성 사제를 허용하는 것이, 그리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교회의 권위를 타파하는 것이 참다운 민주 교회의 초석이 되겠지요. 그리고 교회적인 입장에서 또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교회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또한 정당하다고 생각되겠구요. 이건 우리의 서 있는 위치가 틀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파트 1층에 사는 아이에게는 아파트 5층이 높게만 느껴지겠지요. 하지만 아파트 10층에 사는 어른에게는 아파트 5층의 높이란 '애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누구의 말이 옳습니까? 아파트 5층은 높은 층입니까, 아니면 낮은 층입니까?

 

전에 올린 두 편 정도의 글에서 저는 여성 사제론에 대해 '함구하라'는 다소 경망스러운 내용을 썼던 듯 합니다. 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지만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참다운 봉사직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였지요. 하지만 이런 입장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불거져 나온 여성 사제론은 논점을 교묘히 일탈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겠지요.

 

저의 입장은 이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성전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개신교는 sola scriptura(맞나?)라구 하여 오직 성서만을 믿고 성서에 있는 말씀만을 신봉하지요. 그래서 마리아에 대한 구전이나 성체의식 등도 거부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구요. 하지만 우리 카톨릭은 성전을 인정합니다. 성전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전승,  사도로부터 혹은 신앙 공동체로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을 인정하는 거지요.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성전에 의합니다. 삼위일체론도 어쩌면 이에 의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구요. 미사 때의 성변화도 아마 성서에는 없지요? 미사 자체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생긴 거니까...

 

2000년을 이어온 교회의 중요한 전통은 현시대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이치대로 따지는 분에게는 그분이 이신론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줄 몰라서 믿나요? 우리는 불합리한 줄 몰라서 믿나요? 하느님이 오로지 이성으로 판단되고 파악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불합리하기에 믿는다는 중세 교부의 말씀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거니와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분도 계시겠지요. '오호라, 교회에 대해서는 무조건 함구하라고? . 이런 파쇼적인...'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때요?

 

사제란 무조건 안에 들어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끝나는 성소가 아닙니다. 안에서 기도하는 소명을 맡으신 분들은 오히려 수도원의 수사님들이지요. 사제는 활동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몸소 자신의 삶으로 실천할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사목활동 중에 다가올 수많은 위험이랄지, 고난이랄지, 그런 문제는 생각해보셨나요?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 시골의 본당에 기거하면서 직접 발로 주민들을 찾아가는 문제를 생각해보셨나요? 우악스런 일부의 신자분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성당의 그리스도성을, 정체성을 지켜야하는 사제의 어려움을 생각해보셨나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들의 애환을 달래주는데에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술자리는 그냥 사교적인 차원에서 쉽게 끝나는 자리는 아니지요. 이를테면, 사제는 혼자 사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봉사직이라 이겁니다. 이건 여성분이 맡기에는, 물론 불가능은 아니겠지만요, 남자가 맡기보다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이 다시 페미니즘적인 문제로까지 간다면, 이번에는 저도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서도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입장에서 드릴 말씀이 있지요. 그건 너무 장황해서...

사제가 결혼하는 문제요? 그럼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실래요?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요, 얘를 먹여 살려야 겠는데요, 돈이 없거든요. 눈앞에는 헌금이 있고요. 자기가 대충 헌금액수는 조정할 수 있지요... 이런 상황이 우발적이고 한두번 있는 상황이 아니고요... 20여년간 계속 이러는 거예요... 혼자 살 때 보다는 많이 유혹이 생기지 않을까요? 또 자신의 아내를 두고 있다면, 교회의 실질적인 활력의 면에서는 훨씬 많은 우위를 점하는 여성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목을 하는데에도 남다른 애로가 있지 않을까요? 훌륭한 목사님들이 여성관계나 돈문제로 사회적인 망신을 당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결코 신앙에 있어서는 우리의 신부님들보다 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분들이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다 말같지도 않은 이유라고 무시할 수 있겠지만요... 또 이런 저런 이유를 다 무시한다면, 현학적이고 이론적인 말을 써 가면서 이런 실제적인 이유들을 무시한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탁상공론식의 엘리트적인 신학상의 공론만이 남을 뿐이고, 또 풀리지 않는 분열의 소지만을 안고 살게 되겠지요. 에유~

 

제가 이런 보수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저의 출신 성분을 의심하지는 마시고요. 이런 의견도 있구나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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