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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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치보다 개인재산 앞선 세상 납골당분쟁서 ‘작은 FTA’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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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규 [mindule] 쪽지 캡슐

2007-09-18 ㅣ No.4009

사회가치보다 개인재산 앞선 세상
납골당분쟁서 ‘작은 FTA’를 보다
 
 
 
한겨레  
 
 
»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가톨릭 교회 안에 납골당을 설치하는 일로 인근 주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이고 자녀들 초등학교 등교도 막는 일이 벌어졌다. 납골당이 아이들 정서를 해치고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아이들 어머니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항변했다.

어떤 사물을 ‘혐오시설’로 봐야 하나 하는 문제는 지극히 주관적 차원의 문제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 또 함부로 옳다 그르다 얘기하기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몹시 딱하다. 답답하고 우울하다. 이런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한 사회의 관념, 정서, 가치 지향, 문화의 한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누구든 머지 않아 죽을 텐데, 연로한 부모들은 더 가까운 장래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자신들마저 조만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그 기억, 기념물을 그토록 혐오하다니 혼란스럽다. 화장장도 그렇고,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죽음이나 관련 시설에 대한 저런 혐오는 삶에 대한 강렬한 긍정일까 부정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혼란과 자가당착일까. 한편으론 제사나 죽은 사람 자리가 산 사람 자리보다 더 대접받는 우리의 또 다른 장묘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화장율이 99% 이상에 이르고 묘지들이 도시 주택가 한가운데, 그리고 농촌마을 안이나 옆에 자리잡고 있는 이웃 일본과는 사뭇 다르고 교회가 묘지를 관장하던 전통적 유럽이나 공원화한 오늘날의 그들 묘지와도 다르다.

그런데, 이런 사념이 공허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송기호 변호사는 자신이 쓴 <한미 FTA 핸드북>(녹색평론사)에서 1997년의 통화위기(속칭 ‘IMF 사태’)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국가가 갑자기 초라한 몰골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어느 날 옆집 부자 아줌마에게 무릎을 꿇고 돈을 빌려 달라고 애원하더니, 가족 가운데 부실한 아이들부터 내보내는 장면을 집안 식구들이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 한국인들은 국가를 내팽개쳤습니다. 대신 각개약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공백을 외국의 금융자본이 채웠습니다. …IMF 사태의 정신적 충격은 매우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10년 동안 ‘개인의 재산’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IMF 사태 후 10년간의 결과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입니다.”

아이들에게 죽음과 관련 시설에 대한 혐오를 행동으로 체험하게 한 주부들의 저 맹렬한 몸짓이 바로 ‘개인의 재산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문화’의 체현이 아닌가. 이제 믿을 것이라곤 오직 나의 재산뿐이요, 그 재산(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국가든 사회든 용납하지 않겠다는 몸부림. 그런 몸부림이 종국적으로 누구의 배를 불려줄 것인지 <녹색평론>, <사회비평>, <황해문화>, <창작과비평> 등은 계속 얘기하고 있다.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샨티)도 FTA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황당한 사례들을 지적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더 큰 고기가 그것을 또 잡아먹고…. ‘내 그 물로 오는 가시고기’들.

김종철 교수의 지적대로 이런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대통령선거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서울 어느 동네 주부들의 항변은 종교나 문화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적 규모로 구축되고 있는 이 끔찍한 먹이사슬이 야기한 자그마한 파열음이 아닐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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