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양윤모 니꼴라오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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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희 [kohthea] 쪽지 캡슐

2012-03-20 ㅣ No.176

작년 71일 단식
오늘 42일 째 단식 중입니다. 

해군이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대한 폭파 작업을 강행한 지 9일로 사흘째다. 강정마을 하늘은 무심할 만치 유난히 파랗고, 강정포구와 해군기지 공사장 안 곳곳에 노란 유채꽃까지 흐드러져 있다. 역설이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눈물이 난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도 일어났다. 해군기지 공사장 안으로 진입한 신부·목사 등 성직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을 경찰이 강제 연행하는 과정서 항의하는 주민·활동가들이 다치고 연행되는 일이 속출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눈물을 닦으라”고 하는 이가 있다. 아직 이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말한다. 눈물이 아니라 강정주민들에게 몸과 마음을 보태라 한다. 눈물 대신 강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땀 흘리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 말한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중 구속돼 옥중단식 31일째인 제주땅이 고향인 영화평론가 양윤모(56.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씨다.

<제주의소리>가 9일 오후 양윤모씨와 면회해 옥중 인터뷰를 가졌다. 교도관 입회하에 단 10분의 짧은 만남이었다. ‘기자는 면회가 안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잣대 때문에 기자 신분도 숨겨 가며 어렵게 가진 인터뷰다. 그가 입은 수의 오른쪽 가슴에 '의료병동5',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 '220'번이란 글자가 또렷했다.

 # 양윤모는 역시 양윤모였다

면회실에 들어서자 먼저 나와 있던 그가 활짝 웃으며 오른손바닥을 유리창에 갖다 댔다. 그의 손바닥 앞에 기자도 손바닥을 포갰다. 69kg이었던 그의 몸은 54kg으로 ‘반쪽’이 돼 야윌 대로 야위었지만 묵직한 전율이 되돌아왔다. 지난 2011년 4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돼 옥중단식 57일, 다시 석방 후 14일 동안 총 71일을 단식했던 그다. 두번째 30일을 넘은 단식, 그래도 "아직 견딜만하다"고 한다. 

양윤모는 역시 양윤모 였다. 한 달여의 단식이 믿기지 않을 만큼 표정과 말은 ‘맑았고’, 의지도 ‘단단’했다. 구럼비 바위에서 첫 발파가 시작된 지난 7일부터 그는 소금도 끊었다. 목과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야 겨우 한모금의 물을 축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구럼비는 그렇게 만만한 바위가 아냐”라고 말문을 뗐다. “구럼비가 폭약에 조금 깨졌다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건 대단히 미련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더 치열해질 것을 주문한 말이다.

‘단식을 멈추고 건강을 추슬러야 할 것 아니냐’는 우려에 양 씨는 느닷없이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나는 제주사람으로서 그동안 영화도 해봤고, 영화평론가로도 살아봤다. 영화인으로 대한민국에서 명예도 얻고 존경도 받았다. 영화인으로 온전히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 고향에 빚진 것을 갚는 심정으로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내 한 몸 바쳐 구럼비와 강정마을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날 위해 희생하시던 우리 어머니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지 말라던 그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눈물을 지켜보다 가슴이 울컥했다.

 

 
   
▲ 제주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인 양윤모는 지난 2011년 4월 해군기지 반대운동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 후 구속되기 전까지 3년간 구럼비 바위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인(?)으로 살았다. 사진은 지난 2009년 11월 구럼비 바위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를 생수병에 담아 오며 해맑게 웃던 모습이다. 강정 바다도 눈이 부시게 푸르고 그의 웃음도 눈이 부시게 해맑다.    <출처 = 다음블로그 제주도 토배기>
   
▲ 양윤모 씨가 두번째 구속되기 전 가장 최근 사진이다. 지난 1월29일 강정마을에서 카메라 앵글에 잡힌 양윤모 씨. 뒤로 보이는 한라산 백록담에 그의 머리 색을 닮은 하얀 눈이 내려 앉았다.   <출처 = 다음블로그 제주도 토배기>
 
 

  # “어머니의 심정 이제야 알 것 같다” 눈시울…

양 씨가 다시,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나보다 강정 주민들이 더 걱정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강정마을 문제에 더 많은 문제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런 고민이 없으면 지식인이 아니다. 언론이 더 노력해야 한다. 언론이 더 열심히 해달라”는 당부도 던졌다.

그의 말은 거침없이 계속 이어졌다. “한미FTA 체결은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우리나라의 경제주권을 미국에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지난 달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과 미국간에 군사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 이른바 한미 군사FTA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모 군사전문지를 통해 제기했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는 물론 군사주권까지 온통 미국에 내주는 꼴 아니겠냐”고 울분을 토해냈다.

면회가 끝날 즈음 양씨는 “어느 수녀님께서 주셨다”며 목에 걸린 묵주를 내보이며 “매일 30분씩 기도하고 있다. 제주의 생명평화, 강정마을의 생명평화, 구럼비의 생명평화를 지켜달라고 하늘에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회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그가 다시 양손바닥을 유리창에 마주댔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양손으로 브이를 그려 ‘승리’를 다짐했다. ‘선배, 건강 되찾고 밖에 나와 막걸리 한잔 해야지?’ 하는 기자의 인사에 “그래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은 몹시 힘겨웠다. 그의 대답이 빈 말이 아니었으면 한다. 강정마을에선 오늘 이 시간에도 ‘양윤모 선생과 구럼비를 살리기 위한 평화생태 행동’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2012,3,10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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