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눈물나게 아름다운 제주의 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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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희 [kohthea] 쪽지 캡슐

2012-03-20 ㅣ No.183

유채꽃 피는 계절, 눈물나게 아름다운
제주의 봄을 맞으러 가는 여행자들은
꼭 한 번씩 강정에 들러주시길 바란다

“이름?” “구럼비.” 당황한 경찰이 다시 묻는다. “이름?” 은발의 영국 여성이 빙긋 웃으며 다시 대답한다. “내 이름은 구럼비.” 경찰에 걷어차여 배에 멍이 든 채 연행된 노벨평화상 후보 앤지 젤터의 이야기다. 우리뿐 아니라 지금 전세계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생명·평화·민주주의 수준의 바로미터이다.

강정천~구럼비 바위~강정포구로 이어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올레 7코스의 구럼비 바위에 직접 폭파가 임박했다. 길이 1.2㎞에 이르는 구럼비 바위가 몸에 보듬어 기르던 온갖 생명들, 천연기념물들을 폭파해 전쟁기지를 만들겠다는 국가권력과 그 배후의 탐욕스러운 거대자본은 여론이 더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구럼비를 깨뜨려 ‘말뚝을 박으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3월 들어 대림산업이 구럼비 해안가 밭들의 발파를 진행한 것에 이어 이번주 중 삼성물산이 구럼비 본 바위의 폭파를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길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지혜로운 민중들이었다. 인터넷에서 ‘강정마을’을 조회해 보면 관련 행사들로 새봄의 일정들이 빼곡하다. 강정마을 돕기 바자회들이 열리고, ‘평화비행기’가 제주도로 향하고, 구럼비를 살리자는 크고 작은 문화예술 공연들이 확산되고 있다. 작가들은 릴레이 단식을 시작한다고 한다. 돈도, ‘빽’도, 경찰력도, 군대도 없는 미약한 존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연대의 놀이를 창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싸움이 거대자본과 결탁한 국가권력의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증명하는 전조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움직이면 된다. 설혹 구럼비의 한구석이 깨져 나간다 해도 구럼비는 우리가 가진 설문대 할망의 멋진 신화처럼 강인한 몸을 가졌다. 절대로 한 번에 죽지 않는다. 50% 이상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다친 곳을 스스로 복구할 힘이 있다. 그게 대자연이다. 눈멀고 귀 막힌 권력과 자본이 저지르는 이 악행을 막을 수 있는 출발은, 작년의 희망버스에서 경험했듯,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기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며 연대하는 것이다.

한심한 정부와 삼성에 한 말씀만 드리겠다.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 불가능한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지금 잘나가는 것 같지만 당신들의 무지몽매함이 당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당신들이 떠들어대는 ‘선진 문화’나 ‘세계 일등기업’이라는 게 얼마나 천박한 수준의 것인지 낱낱이 까발리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들 자신이다. 구럼비가 그저 쓸모없는 바윗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미의식·문화수준으로는 죽었다 깨도 민중을 이길 수 없다. 진화한 시민들은 국가권력의 배후와 거기 도사린 대자본의 천박한 욕망까지 꿰뚫어보고 있다. 시민은 유권자이자 소비자이다. 진짜 권력인 민중이 당신들을 분명코 단죄할 것이다. 당신들은 강정마을을 버리겠다고 작정했으나, 우리는 강정마을을 살릴 것이다. 우리는 제주도에 군용 트럭들이 활보하고, 어느 날 미군들이 함정에서 쏟아져 나와 해변을 발가벗고 돌아다니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살리고 보듬고자 하는’ 의지가 이기는 것이 정의다. 역사는 정의의 방향으로 흐른다.

곧 유채꽃 피는 계절이다. 제주는 눈물나게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봄을 맞으러 제주도로 가는 여행자들, 신혼부부들, 순례하는 올레꾼들은 꼭 한 번씩 강정마을에 들러주시길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과 들꽃처럼 어여쁜 사람들이 거기에서 여러분을 맞이해 줄 것이다. 님들이여. 지독한 폭력 앞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꽃씨를 뿌리는 사람들과 함께 수백만년 인간의 마을을 지켜온 구럼비 바위가 우리에게 전하는 생명의 노래를 부디 들어주시길.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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