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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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의 정향화(丁香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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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오 [venture5] 쪽지 캡슐

2010-02-19 ㅣ No.49236

 

 

산골짜기의 정향화(丁香花)

 

. 리쟈통(李家同) / 번역. 양재오

 

우리 집은 조상대대로 이 조그만 마을에서 살아왔다. 이 마을이 자리한 쪽에 산골짜기가 있고, 그 안 쪽에 큰 초원이 펼쳐지는데, 그 초원 주변은 무성한 정향(丁香)나무로 둘러싸여있다. 봄이 되면 초원 주변은 연한 자주 빛의 정향꽃이 만발하고, 그 향기는 골짜기 곳곳에 퍼진다.

 

우리 아이들은 틈만 나면 그 초원 위에서 뛰논다. 시골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집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초원 위에서 지낸다. 일 년 전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정부가 징집을 하기 때문에 입대를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결국 우리 가족들과 키스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갔다. 그 뒤 곧 편지가 한 번 온 뒤, 거의 반년이 되도록 소식이 끊겼다. 어머니가 아버지 소식을 들으려고 수소문 한 결과,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우리 이웃에 사는 아저씨와 어른들도 모두 징집되어 전쟁터로 갔기 때문에,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노약자와 여인네와 우리 어린 아이들 뿐이다. 내 또래의 사내아이들은 초원 위에서 놀뿐만 아니라, 밭에 들어가서 거친 일도 한다. 나는 선생님에게 아버지가 대관절 누구와 싸우는가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들이 이슬람 신자들과 싸운다고 대답하신다. 하여 나는 다시 왜 이슬람교 신자들과 싸우는가 하고 여쭈어보았다. 이에 선생님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셨는데, 그래도 그가 말씀하신 것이 아마도 역사와 관련된 것인 듯했다. 분명히 사백 년 전에 있었던 원한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지난 일들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어느 날 포병부대가 마을에 들어와서, 그들의 대포를 산골짜기 초원 위에 설치하고, 참호를 많이 구축하고 벙커를 만들었다. 그들이 마을에 와서 사내아이들은 사뭇 크게 들뜨고 흥분했다. 온종일 그 군인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들이 첫 번째 훈련으로 대포를 쏠 때, 우리는 멀리 떨어져서 큰 소리로 환호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슬람 신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수십 년 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줄곧 평화롭게 지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갑자기 그들과 싸우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마침내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고, 포병들이 어느 날 새벽 산 아래 쪽을 향해 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깊이 잠들어야 할 때 들려오는 시끄러운 대포소리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를 깨울 뿐만 아니라, 대포소리로 인한 진동으로 우리 집 창문들이 거의 모두 깨져버렸다. 어머니는 우리를 모두 한데 모이게 하여 탁자 밑에 숨었다.

 

이틀 뒤, 상대 쪽에서 반격을 했다. 포탄들이 산발적으로 마을 곳곳에 떨어졌으나, 포병기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좋은 날은 더 이상 없었다. 폭격 소리가 나면, 우리는 곧바로 은신할 곳을 찾아야했다. 어느 날 저녁 이슬람 신자들이 쏜 포탄이 초원에 설치된 포병 기지 위에 아주 정확히 떨어졌다. 우리 포병들이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대포는 한 시간 만에 거의 다 박살이 나고 말았다. 포병들이 대포를 못 쓰게 되자 그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포는 물론이고, 차량 한 대도 없는 실정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걸어서 산을 내려가야 한다.

 

부대장이 부상병 한 명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이 가련한 군인 아저씨는 그만 맹인이 되고 말았으며, 다리도 부러졌다. 비록 그가 가벼운 신음을 낼 뿐이지만, 우리는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할 수 있다. 부대는 그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는 약이 없는 실정이어서, 부대장은 어머니에게 그 부상병을 돌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전세가 나아지면 다시 마을로 와서 그를 데리고 가서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들것을 이용하여 그를 우리 방으로 들여보냈고, 어머니는 곧바로 그를 받아들여 그가 우리와 함께 생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곧 우리가 먹는 대로 그에게도 먹을 것을 주어 그를 푸대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부상병의 동료 젊은이들은 그에게 슬픈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떠날 때 그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네주었고, 그는 그것을 받아서 베개 밑에 넣어두었다. 비록 부대가 철수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포성을 듣는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어서, 대포 소리를 들으면 대략 대포를 쏜 곳이 어느 곳이고 또 얼마나 먼 곳인지를 안다. 적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어머니는 이 젊은이의 성명과 집주소를 묻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그 청년의 가족들이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에 관하여 어떤 것도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실종된 사람이 많으니까, 그의 가족들이 그가 실종된 것으로 간주하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몰래 우셨다. 이 젊은이는 분명코 우리 아버지가 이미 실종된 것을 모른다.

 

어느덧 봄이 되자 초원 위에는 정향화가 꽃을 피운다. 집 안에서도 그 꽃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어느 날 날씨가 무척 좋았고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다. 젊은이가 바깥 날씨가 좋으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를 초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 몇몇 아이들은 합세하여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는 우리에게 정향화가 피었는지 묻는다. 우리는 그렀다고 대답한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을 한 그루 정향화 아래에 놓아달라고 하며, 또 우리에게 정향화를 꺽어서 한 묶음을 달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에게 초원 위에서 놀라고 하면서, 다만 대포가 있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전히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는 정향나무 아래서 잠을 자고 싶다고 한다.

 

나와 형은 우리 집의 양들을 지키는 개를 데리고 초원 위를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총 한발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급히 서둘러 집 쪽으로 내리 달렸는데, 그 곳에서 젊은이가 총을 맞고 쓰러져 있고, 우리가 꺽어다 준 꽃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의 시신을 빨리 묻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를 넣을 관을 구할 방법이 없다. 어머니는 여러 사람을 동원해서 장방형의 무덤을 파고, 젊은이를 침대보로 싼 뒤 양탄자를 준비해서 그를 매장한 뒤, 그것을 그의 시신 위에 덮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해야 그 청년의 입 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조무래기들이 동원이 되어 무덤을 팠기 때문에 무덤 파기를 마치자 때는 어느새 황혼녘이 되었다.

 

마을의 나이든 신부님도 도착했고, 그 분은 우리에게 성당의 종을 치라고 하였다. 포병이 우리 마을에 진주한 이래 처음으로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다. 우리가 들것을 내려놓을 때, 한 무리의 이슬람교도 군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살그머니 마을에 진입하여 조심스럽게 한걸음 씩 전진해 온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관을 사용하지 않은 채 매장하려고 하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가운데 장교 한 사람이 우리에게 “그가 이슬람신자냐?”하고 묻는다. 나중에 내가 알게 된 것은 이슬람 신자는 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신을 천에 싸서 매장하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이 하루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우리는 그 장교에게 우리에게 관이 없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하자, 그는 낮은 소리로 혼자 말처럼 “죽은 뒤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모자를 벗으라고 한 뒤, 곁에서 장례 예절을 지켜본다. 우리 몇몇 조무래기들은 흙으로 덮는 일을 맡았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일이라 속도도 더디고 하니, 곁에서 지켜보던 이슬람신자 군인들이 무덤의 흙을 덮고는 돌아갔다.

 

이것은 두 주간 전에 발생한 일이다. 그 젊은이의 묘지는 봄비로 촉촉이 젖어들었고, 그 위에 풀이 가득 피어난다. 정향화가 시든 뒤, 그 꽃잎들이 모두 이 새로운 풀밭 위에 떨어진다. 우리는 묘지에 아무런 표식도 만들어 세우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여기에 이름을 모르는 젊은이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슬람교 군인들이 떠난 뒤에 우리 작은 마을에는 두 번 다시 포성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밭에 가서 일하고 남은 시간에 초원에 가서 서로 마음껏 뛰어놀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내아이들에게 일종의 공통된 생각이 있다고 믿는다. 장래 어느 날 어른들이 우리를 전쟁터에 보내면 우리는 모두 아마도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조그만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나라 곳곳에 정향화 나무를 심는 것이다. 만일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나는 어느 한 그루 큰 정향나무 아래에 묻히고 싶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옅은 보라 빛을 띠는 정향화 꽃잎이 내 온 몸에 흩뿌려졌으면 좋겠다.

 

* 이 글은 李家同이 200843일에 발표한 山谷裡的丁香花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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