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해전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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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해전
-이어도에 부지런 떨고 일찍만 가면 우리바다가 될까- 서: 흐름이 분명한 것을 짚어보자 21세기 해전의 모습은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이러한 예상은 언제나 100% 틀렸다. 1차대전이 끝나고 열강해군의 주류들은 거포를 가진 전함을 중시해 최대 18인치에 이르는 거포로 둘러친 전함을 잔뜩 건조해댔으나 불과 20년 만에 다시 일어난 전쟁에서 해전의 주역은 다름아닌 항공기와 잠수함이었다. 전함은 허우대만 멀쩡하지 유용한 수단이 전혀 아니었다. 언제나 전쟁의 양상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나 통념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바다 싸움은 일정한 흐름을 형성해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 착안해 미래 바다전투의 양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글은 족집게 무당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유사 이래 변하지 않는 흐름과 원칙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짚어가다 보면, 다가올 미래에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강호제현의 매서운 질타와 거침없는 오류와 문제점 제기와 대안제시를 기대해본다. 혹시 이 글이 후대에 쓸모없는 것이 된다면 잊혀져 불쏘시개나 스팸으로 치부하면 그뿐이다. 세상에 한번 던져진 글에대해서 그 이상의 욕심과 미련은 버린다면 글 자체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해전 역사의 분명한 흐름: 적(敵)과 아(我)의 멀어지는 거리 근대적 해군이 형성되기 전까지 수천 년간 바다의 싸움은 지상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군은 그저 ‘배를 탄 육군’이었고 해전은 ‘배를 탄 채 싸우는 지상전에 불과’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화살과 돌등 힘을 축적한 발사 무기의 도움을 받았고, 화공(火攻)은 적 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법이었으나 이를 성공시키려면 필요요건과 상황충족이 까다로웠다. 기원이후 해전은 직접 상대의 배에 올라가 칼과 창의 힘으로 상대의 배를 접수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전술이었다. 이제 해군은 더 이상 ‘배를 탄 육군’이 아니라 ‘포를 가지고 원거리에서 적함을 침몰시키는’ 근대해군으로 탈바꿈한다. 최초로 근대해전 개념과 전술을 실현한 이순신의 함대는7년의 참혹한 전쟁에서 23전 전승의 신화를 쓰며 함포전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후 동서양의 해군은 창과 칼과 활이 아닌 화포중심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그 결과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포의 구경은 점점 더 커졌고 그에 따란 군함의 크기도 대형화되었다. 1905년 대마도 해역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일본의, 전함 대 전함의 대결은 이순신에 의해 체계화되어 발전한 5백년 함포시대의 마지막 절정이었다. 충무공 시대 고작 200-300m에서 포탄을 쏘던 함포들은 어느새 20km가 넘는 원거리까지 사격이 가능해졌다. 아군함대 측면으로 상대의 앞으로 가로막고 일제사격을 퍼붓는 이른바 ‘T자 가로막기’ 전술을 펼친 일본함대는 최강이라던 러시아 발틱 함대를 꺾고 단 한 번의 해전으로 국운을 건 승부에서 이겨 러일전쟁을 승리로 끝냈다. 이 해전결과에 경악한 열강의 해군들은 다투어 거포를 가진 전함을 건조해댔지만, 이 시점에서 대단히 얄궂게도 전함과 거포는 그 한계에 다다랐다. 대마도 해전 후 20년도 채 안되어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전함들이 맞대결을 펼쳤지만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고 전쟁의 흐름도 좌우하지 못했다. 1차 대전이 끝나고도 전함의 신화를 믿는 이들이 해군의 다수였지만, 잠수함의 어뢰 공격은 모든 함선의 치명적인 약점인 수선하부를 공격할 수 있어 소형함으로 대형함을 이길 수 있는 의외성과 비대칭성이 생겨났다. 여기에 더해 1차대전에서 처음 그 가능성을 입증한 항공기는 속도와 공간의 제약과 파괴력의 집약도에서 단번에 전함을 뛰어넘으면서 2차 대전에서 그동안 해전의 주역인 거포와 전함을 일시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영국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의 격침은 모두 항공기에의한 것이었고 이것으로 해전의 주역은 항모와 함재기 그리고 잠수함에게 넘어가버렸다. 동시에 전함간의 포격전이 아닌 상대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항공기와 항공기 혹은 항공기와 군함간의 대결로 해전의 양상이 변해버렸다. 무수한 해전이 벌어졌던 태평양 전선이었지만 전함과 전함이 맞붙었던 대결은 고작 2차례에 불과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승부를 갈랐던 주요 해전은 모두 항공기 대 항공기 혹은 항모 대 항모에 의한 전투였다. 최초의 항모간 대결인 산호해해전,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라는 미드웨이 해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모간 대결이었던 필리핀 해 해전 그리고 20세기 최대 규모의 해상 대결인 레이테 해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항모와 함재기가 주도한 싸움판이었다. 또한 전쟁의 흐름은 상대의 해상수송라인을 파괴하는 잠수함의 활약에 의해 결정되었다. 캐나다와 미국, 호주등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콘보이 선단을 저지 하지 못했던 독일의 유보트함대는 결국 패전을 맛봤지만, 식민지에서 원료와 물자를 실어나르려던 일본의 수송선단을 철저하게 차단해버린 미해군 잠수함은 태평양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 미잠수함은 일본이 상실한 모든 선박의 62%(일본의 항모 8척을 포함, 전투함의 55%. 상선의 85%가미잠수함에 의해 수장됨)를 격침시켰다. 2차대전의 스타라던 항공기보다 더 맹활약을 펼친 셈이다. 역사상 최대의 거포를 가졌던 일본의 거대전함 야마토는 결국 단 한번도 거포를 사용해보지 못한 채 항공기에 의해 허무하게 생을 마쳤고 미해군의 고속전함들도 거포를 사용하기 보다는 대공포대로 적항공기로부터 주력인 항공모함을 지켜주는 항모의 호위역할에 더 치중했다. 이렇듯 전함과 거포의 시대는 한순간에 끝장 나버렸고 해전에서 상대를 육안 혹은 광학장비에 의해 식별하면서 함포를 쏘며 전투를 벌이는 시대는 저물었다. 항공모함과 함재기로 인해 함대 간 교전거리는 과거 수십km에서 수백km로 확장 되었고 원자력 추진 항모가 나오면서 이 교전 가능거리와 작전영역은 거의 전 지구로 확대되었다. 2차 대전에서 항모와 잠수함전술의 효용성을 입증한 미해군은 가히 세계 최강의 함대로 지금까지 지구의 바다를 지배해왔다. 함재기가 제트기화 되면서 항모는 더욱 커졌고 그 비용을 감당 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 혼자였으니까. 미국 항모 한척에 실리는 항공력은 웬만한 약소국의 공군을 능가하기 일쑤였고 냉전시대 미국의 대척점에 섰던 소련조차도 항모로는 아예 대적할 생각을 포기하고 비대칭 대안인 잠수함에 주력했다. 냉전시대가 막이 열리고 미항모에 맞설 타국가의 항모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에서 각국의 해군은 새로운 대안인 잠수함에 주력했다. 미해군이 처음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취역시키면서 잠수함은 ‘필요할 때에만 잠수할 수 있는 배’에서 ‘언제든지 물속에 숨어 있을 수 있는 진정한 잠수함’으로 거듭 났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미래의 흐름은 딱 하나다.
포클랜드 해전의 전훈(戰訓) 2차대전후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강대국간 상호확증파괴가 현실화되었다. 이후 강대국간의 전면전쟁은 완전히 불가능해진 대신 전 세계 각지에서 국지전과 대리전이 격화되었다. 특히 영국의 잠수함 콩커러는 핵추진 잠수함 특유의 고속기동성을 발휘해 즉시 전투 현장에 도달해서 영국해군을 저지하기 위해 출동했던 아르헨티나 해군의 최대함인 헤네랄 벨그라노(1만톤이 넘는 거함이었지만 2차대전 때 미해군이 쓰다 넘겨준 구식 경순양함)호를 추적해 격침했고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해군의 수상함대는 항공모함까지 있었지만 이후 영국잠수함을 의식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 한척도 바다로 나와 조직적인 저항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공군력으로 영국해군을 괴롭혔다. 헤네랄 벨그라노의 침몰 이틀 후, 프랑스제 엑소세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가 영국해군의 방공구축함 셰필드에 엑소세를 명중시켰고 화재를 진압하지 못한 셰필드는 불과 4시간 반 만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사건이 준 충격은 매우 컸다. 대함미사일의 위력을 실전에서 그것도 대공임무를 맡은 구축함을 상대로 전과를 냈다는 점에서 현대해전사의 새로운 이정표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해군은 영국해군의 잠수함에 발이 묶여 본토에서 500km밖에 안 떨어진 포클랜드 섬에 몰려든 영국함대에게 제해권을 내줬다. 대신 이들을 공격했던 아르헨티나 공군은 고군분투 했으나 한계가 뚜렷했다. 일단 항속거리가 너무 멀어 목표상공에서 체공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같은 이유로 충분한 무장을 못해 화력 또한 미약했다. 프랑스가 제공한 엑소세 미사일이 소진하자 재주문을 했으나 영국의 기민한 외교는 자국 함대에게 치명적일 엑소세 추가 공급을 차단해버렸다. 엑소세 공격을 당한 이후에 영국 해군의 해리어 함재기와 헬기가 조직적으로 조기경보망(이 과정에서 찰스의 동생 앤드류 현 요크공작은 직접 헬기를 몰고 엑소세 미사일을 따돌리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뿌리 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통을 이었다)을 강화하자, 더 이상 전과를 못내고 백여 대가 넘는 항공기를 상실한 채 패퇴했다. 제해권을 내주고 이어 제공권마저 사라진 포클랜드의 지상군 수비대는 무기력한 저항 끝에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코저 전쟁이라는 모험을 시도했던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은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다만 이 대목에서 아르헨티나 해군이 유일하게 출동시켰던 209급 잠수함 2척이 어뢰의 성능미비와 평소 정비의 불량과 기기 오작동등으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상함대가 제대로 된 저항을 펼치지 못하자, 잠수함 2척만이 유일하게 영국해군에 맞섰고 사실상 영국해군은 이들 재래식 잠수함의 존재조차 탐지 하지 못했고 적절한 공격수단도 미비했었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잠수함은 수차례 영국해군의 수상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하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그때마다 어뢰는 불발했다. 이렇듯 포클랜드 해전에서 양측의 수상함대는 시종일관 상대의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가 발사하는 미사일과 폭탄과 맞서 싸웠고 그렇지 않으면 잠수함의 어뢰와 대결했다. 해전에서 더 이상 함대간의 직접 맞대결은 항공기와 잠수함과 미사일 때문에 불가능해진 것이다. 동시에 바다의 하늘을 누가 먼저 장악하는가에 따라 승패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특히 영국의 함재기 해리어는 속도와 선회에서 아르헨티나 공군에게 뒤지는 기종이었음에도 항모가 제공하는 조기경보력과 월등히 우세한 최신형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을 활용해 포클랜드 상공의 공중전에서 일방적인 압승을 거뒀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자국의 전투기와 공격기에 미제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을 장착하고 대적했지만 성능이 처지는 구형이었던 관계로 되려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영국해군의 항모에서 출격한 헬기들이 조기 대공경계망을 펼치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공망으로 대응하자, 초기의 놀라운 전과에도 불구하고 이후 더 이상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산발적인 공격을 되풀이하며 큰 피해를 입었다. 조기 경보기와 공중급유기와 같은 지원체제의 부재속에 오직 전투기와 공격기만으로의 해상 대함공격은 한계가 분명했다. 또한 이때까지 한물간 무기로 취급했던 재래식 잠수함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특히 큰 전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세계 최고의 대잠 탐지 능력을 자랑한다는 영국해군의 구축함 사이를 뚫고 들어갔던 아르헨티나 잠수함의 성능을 목격한 중소 해군국들은 강대국의 강력한 수상함대에 대한 비대칭 전력으로 잠수함의 가능성과 위력을 점차 인정하게 된다. 심지어 재래식 잠수함을 더이상 건조하지 않던 미해군마저도 최신형 버지니아 급 핵추진 잠수함에서는 천해에서 정숙성이 더 뛰어난 재래식 잠수함과의 대결이 가능하도록 설계가 추진 될 정도였다. 아르헨티나에 잠수함을 수출했던 독일의 하데베사는 포클랜드 전쟁 덕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10개국이 넘는 해군에 209급 잠수함을 수출· 공급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실 포클랜드 전쟁으로 영국이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가뜩이나 경제가 악화되던 영국은 15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전비를 소진해 기실은 상처뿐인 영광이었고 아르헨티나는 아예 정권이 바뀔 정도로 타격이 컸다. 대신 이 전쟁으로 자사 제품의 위력을 실전에서 입증해보인 엑소세 제작사와 잠수함 건조사만이 큰 호황을 누렸다. 각설하고 포클랜드 해전에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은 이후 해군의 함정 건조와 무기개발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제 서로가 서로를 보지 않고 수평선 너머에서 전투하는 시대의 막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상대 또한 같은 군함이 아닌 항공기와 잠수함 그리고 미사일로 변해버렸다.
이어도 해역에서 해상함끼리 포격전 할 건가 자, 이제 우리들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자는 쪽의 가장 주된 논리는 이곳에 기지를 만들어서 함정을 두고 빠른 출동이 가능하도록 선점을 해놓으면 우리가 제해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단 그들의 말에 따르면 훨씬 더 빨리 출동할 수 있어서 그렇단다. 목포나 부산 진해에서 출발하면 늦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하에서 제주도에 우리 해군기지가 있고 그곳에 우리 해군의 수상함대가대기하고 있다가 적의 함대가 오기전에 이어도 해역에 먼저 도달하면 무슨 장점이 우리에게 있을까? 잘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없다. 포클랜드 해전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이 거리가 멀어서 혹은 준비가 덜 되어 포클랜드 연안에 접근하지 못했던 걸까? 북반구의 높은 위도에 위치한 영국함대는 남반구의 맨 끝에 있는 포클랜드까지 만 킬로가 넘는 먼거리를 힘들게 항해해야 했고 시간상으로도 두 달이 넘는 준비기간이 걸렸다. 사실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아르헨티나 해군은 분명히 유리했다. 본토에서 기껏 천 킬로도 안 되는 근접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기실 실전에 들어가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영국잠수함 때문에 가장 큰 주력함을 잃고서 제해권을 상실했다. 비록 낡았다고는 하나, 항모도 있었던 아르헨티나 해군이었으나 포클랜드를 먼저 선점했고 시간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할 해·공군력이 빈약했던 아르헨티나는 영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한나라가 그 해역 혹은 어떤 섬을 지킨다는 것은 그곳에 기지를 만들어서 가능한게 아니라 영국해군이 포클랜드 전에서 보여줬듯이 언제든 그 해역에 투사할 제공·제해 장악력에 달려 있다. 그래서 육상전과 해전은 다른 논리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류근일을 위시한 일부 국내 극우선동세력들과 그들의 대변지인 뉴데일리는 중국의 항모를 들먹이면서 이어도를 지키기 위해서 해군기지를 제주에 설치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이미 30년전 포클랜드 해전에서도 섬에 기지가 있건 없건 해·공군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국가는 영토도 영해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도대체 21세기에 기지 만들면 우리가 이어도를 지킬 수 있다고 떠들어 대시는 얘네들은 대체 누구십니까? 이어도 해역에 중국의 경비함 혹은 군함 아니 항모가 떠있다고 그게 중국의 영해가 되고영토가 될까? 그럴 일 없다. 만약 중국이 우리의 영해 혹은 이어도를 자신의 것이라고 무력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싶거나 우리와 전쟁을 해서 이를 탈취할 속셈이라면 저들은 이어도 해역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우리 해군의 수상함 그리고 가장 먼저는 공군력과 잠수함 세력을 영순위로 없애려고 할 것이다. 바다에서 승리하는 것은 상대의 해군을 바다에서 물밑으로 수장시키거나 아니면 포클랜드 전쟁 때처럼 아예 항구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 결코 육군이나 연안 경비대처럼 먼저 그 해역에 부지런 떨고 가서 서성대는 게 아니다. 바다에서 군함을 그 나라 영토로 인정해주는 국제법상의 관례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아무리 바다에 먼저 가봐야 누가 와서 우리 배 침몰시키거나 무력화 시키면 그때부턴 그 바다의 주인은 우리가 될 수가 없다. 우리가 정녕 제주도와 이어도의 영역을 수호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주적 군사지휘권의 획득이 최우선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의 군대는 우리의 국익과 관심보다는 미국의 이익과 관심에 의해 움직임을 먼저 제한받는다. 설령 제주도 해역 영해까지 중국 함대가 밀고와도 연합사 사령관이 ‘노’하면 우리는 함대를 움직일 수조차 없다. 실전상황이 되면 대한민국 해군 함대를 움직이는 주체는 해군작전사령부나 합참이 아니라 한미연합사 소속 해군 구성군사령부가 될 것이며 그 지휘관은 미해군 태평양 함대의 제독이 될 것이니까. 극단적인 예지만 그럴 수 있다. 미국이 가쓰라 태프트 밀약 때처럼 중국이랑 짝짜꿍이라도 되버리면 우린 한미동맹을 파기하기 전까진 전작권을 휘두를 수 없다. 자, 이제 중국해군의 잠수함들이 제주기지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해보자.제주에 기지가 있고 거기에 우리 해군의 주력함대가 있다면 그건 제주에 하루안에 도달 가능한 저들 핵추진 잠수함들에게 불감청 고소원의 사항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이라면 제주해군기지는 충분한 항공보호가 어렵고 한국해군의 빈약한 16대 대잠초계기로는 중국해군의 잠수함들을 막아 내는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현재 한국공군은 팰콘과 이글이라는 꽤 나쁘지 않은 전투기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이어도나 제주 남쪽 해역에서충분히 작전체공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 장비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한국공군의 이어도 해역 장악력은 의심스럽다. 아니 현재론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 국가들은 어떤가? 그들도 우리처럼 공중급유기가 없던가? 조기경보기와 각종 항공지원체계가 없나? 지금 이런 현실에서 그저 해군의 수상함대 우리 해군이 유일하게 보유한 대양형 함대 7기동전단을 제주에 두고서 중국이 접근해오면 먼저 들이대시겠다고? 그런데 해군의 군함한척 한척은 한나라가 수십년을 두고 축적한 국력의 결정판이고 한번 상실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막말로 육군 1개 사단은 전멸해도 나라의 물력과 국력이 받쳐준다면 3달 이면 다시 동일한 사단을 편성해낼 수 있다. 그러나 군함 한척을 상실하면 다시 건조하는데 최소 3년 그리고 그 배가 싸움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력을 훈련하는데 2년 도합 최소 5년은 걸린다. 따라서 7기동전단과 같은 핵심 전력을 제주 같은 곳에 전진배치한다는 것은 전력의 강화 혹은 우리 영향력의 증대가 아니라 제주도 남쪽 해상으로 진입시 전혀 우리 항공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미약한 항공대잠 초계력을 생각해보면 자칫 함대를 잃었을 경우 1,2,3 함대 같은 연안 경비 부대만 남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가 함대를 회복하는 데에는 10년이 아니라 한세대가 걸린다. 현실이 이런데도 제주에 기지 만들고 기동전단 전진 배치하자는 당신들 누구냐?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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