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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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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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30 ㅣ No.8861

저는 아주 일찍 성공을 했습니다.
20대에 서울 강남에 집을 샀고, 동남아, 유럽, 미주 등 해외여행을 다니며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한 삶을 살았지요. 좋은 부모도 만났지만,
특별한 카리스마 덕에 젊은 시절 자수성가도 했습니다.
산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 30대에 세상의 즐거움과 재물에 회의를 느껴
어떤 신부님과 의논하여  작은 원룸과  자동차 하나만 남기고 다 처분했습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다 버렸다는 자부심으로 가난을 기쁘게 살았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라는 주변의 권고가 많이 있었고, 또 들어오라는 수녀원도 많았는데,
저는 수녀라는 성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교회안에서의 신부님, 수녀님들의 권위는 참 명예로운 출세나 다름없지요.
그런데 만인들의 존경을 받는 그 권위가/
세상을 다 버린 저에게는 또다시 버려야 될 하나의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수녀가 된다는 것이 금반지를 버렸으니 다이아 반지를 끼겠다는 모순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지금도 그 선택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한 5년여 동안은 가난한 제 주변에 사람들이 그래도 있었는데,
30대 중반 넘어서 부터는 가진 것도 없으니 하나,둘 사람들이 떠나가는군요.
이제는 젊은 패기도 없고, 힘들 때 의지할 친구도, 가족도 없습니다.
참 외로워 보이나요?
그런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아시는 분은 아실겁니다.
그런대로 외로운 삶을 나름대로 은총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집착할 인연이 없다는 것이 저를 참 자유롭게 해 주었거든요. 경제적으로는 정말 힘들었지만요.
 
 몇년 동안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도로 심해서 그 때의 신부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취직도 힘들고 다시 가족들에게 의탁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요.
그렇다고 지난 일만 돌아보며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되겠지요.
하여 실버시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났고,
한 3년여 정도 함께 지내다가 저의 기도생활에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며 
할머니 회장님은 저에게 많은 ㅡ재산을 후원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개신교 다니시는 분인데, 종교와 관계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분입니다
할버니에겐 두 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안아
저에게 많은 재산을 후원해 주십니다. 집과 차를 사주셨고,
또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에 저를 위한 상속 지분이 있음을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요.
저는 할머니에게 철학, 신학, 문화, 교양 등의 말 벗이 되어드리며 그곳에서 대학원도 다녔습니다.
석사학위 마치고 박사 논문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십여년 동안,고생을 너무 한 탓인지 저는 그 할머니의 도움을 마다 않고 덥썩 받고 말았네요.
30대 초반에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가난하게 살겠다고 주님앞에서 다짐했는데,
40대 초반이 되어서 그 버린것을 다시 모두 주어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참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 집에서 회장님의 문화생활을 도와드리며  고급스포츠를 즐기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닙니다.
작은 원룸으로 만족했던 그 마음은 이제 꿈속의 일인양 무시하고 지금은 혼자서 45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답니다.
젊은 시절 저를 자극했던 신부님의 권고따위는 이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신부님은 그 때 제게 이런 말을 해주었지요. 제가 가난한 노후를 잠시 염려할 때 그것은 그 때 가서 생각해도 되고, 그 때 되면 저절로 다 해결이 된다고요,
그런데 살아보니 아니었습니다. 아직 할머니가 되지는 않았지만, 30대 중 후반 부터는 돈 없고 가난한 노처녀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뿐입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돈이 없었는데도 모두 외면하는 세상이었지요.
저는 이 할머니 회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흔한 과일도,생선도 먹지 못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 먹을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시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저에게 몸이 아프다고 병원에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요.
겨우 몸을 추스려 일하러 간 곳이 장로교회 다니시는 회장님 댁이었고, 그 회장님 눈에 들어 중년에
로또당첨 이상의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행운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의 젊은 시절처럼 주님을 위해 다 버린다고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전부를 버리라고 하는 권고는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재산을 다 버리는 가난보다는 적당히 누리면서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이 주변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참 허무합니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참 멀고 지루한 여행을 하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수녀님들은 저에게 너무 변해간다고 걱정하시네요.
하지만 그렇게 걱정을 해주던 수녀님들도 제가 돈이 없었던 가난한 노처녀시절에는 제 전화조차도 부담스러워 하셨던 분입니다. 저는 동등한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대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부자든 가난하든 간에 사람은 그저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해보니까 저는 동등한 입장이 아닌,, 가진자들의 봉사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요.
저의 인격은 없습니다. 부자일 때는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가난할 때는 주고받는 것이 없이 그저 주는 것만 받으라는 태도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부자들은 한마디 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피해망상이라고요.
그런데요. 무시라는 것이 꼭 대놓고 삿대질을 한다고 무시가 아닙니다.
딱히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특히 종교 안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절대로 증명할 수 없는 관념속의 특별한 무엇이 있는데
그 장벽은 만리장성을 초월하는 엄청난 장벽 입니다.
그것이 뭐 가난한 사람이나 권위가 없는 자들의  피해망상이라해도 어쩔수 없지만요, ㅎㅎ
 
저는 이제 부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궁핍과 가난은 분명 다른 것인데, 어리석게도 저는 궁핍하게 사는 것이 가난인 줄 알고,
꼭 있어야 될 필요조건 까지도 다 버리고 살았었지요.
글쎄~~~ 스스로 버렸다면 버린것이 되겠지만,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인데요,
딱히 뭐라 정리를 할 수는 없지만, 제 스스로 버리고도 결국은 빼앗겼다는 피해망상은 있었답니다. ㅎㅎ
어찌되었건 그 덕분에 체험한 10여년의 궁핍한 생활은 저에게 참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어 주었지요.
그리고 세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제가 직접 가난해 보지 않고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옆에 사람 있다 했지요? 
그렇게 우리 모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인데,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사람들을 위에도 놓고 밑에도 놓고 하는군요.
우리는 모두  평행선 위에 나란히  옆에 있는 사람들 맞지요? ㅎㅎ
저도 그렇게 나란히 옆에 있습니다. 단지 벗들의 평행선 밖으로 밀려났을 뿐이지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던데,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것도 인생인가 봅니다.
 
가난할 때는 울며 매달려도 모두 떠나갔습니다. 하여 정주고 집착할 인연이 없었던지라 오히려 자유로웠는데,
다시 부자가 되어보니 이제는 잡고싶은 사람이 없어 그 또한 정주고 집착할 인연을 없애주는 군요,
그래도 부자로 사는 것이 죄를 면하는 길임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부자만이 참으로 가난하게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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