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143 글에 덧붙임]성당에서의 결혼식 비용문제

스크랩 인쇄

배지은 [aerin92] 쪽지 캡슐

1999-08-20 ㅣ No.237

음... 아주 오래된 글인 것 같지만, 저도 나름대로 씁쓸한 기억이 있어서...

 

저랑 제 약혼자는 이른바 캠퍼스 커플입니다. 저희가 서로를 만나고 같이 성장한 학교는 카톨릭 계 학교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학교를 몹시 사랑하고 있고, 나중에 결혼식을 올릴 때 꼭 학교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드리자고 다짐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당의 혼배미사 비용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동네 본당의 세배에 육박하는 가격이었죠. 그래서 우리 정서를 이해 못하시는 부모님은 동네 본당을 놔두고 왜 굳이 그 비싼 학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닌데다가, 적어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결혼식 비용 정도는 우리도 부담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혼배미사의 비용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따라서 부모님께 뭐라 주장할 바를 잃게 되었습니다. 학교 측에 도대체 그 비용이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 가격이 내려갈 수는 있는 것인지 강력하게 문의하였습니다만, 대답도 신통치 않았고... 결국 저희는 저희의 추억이 깃든 학교 성당에서의 혼배미사를 포기하였습니다. 그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성당은 저희같은 캠퍼스 커플들의 혼배미사로 항상 북적북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가격이 올라간 것은 아닐까 하는,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이 없어서 그 대열에서 탈락한 것이고 돈있는 사람들은 원하는 곳에서 혼배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 분이 본당에서 혼배미사를 드리지 않고 유명 성당을 찾는 신도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셨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저같은 경우는 개신교 신자였다가 학교를 다니면서 2년 전에 개종을 했고, 학교 성당이 공소였기 때문에 동네 본당에 이름만 올려 놓아서, 본당 쪽보다는 학교 성당이 훨씬 더 고향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올릴 본당은 약혼자의 본당- 정말 한 번 가보지도 못한 곳이고...) 그리고 그 공간에서 저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신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혼배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뭐 이런들 저런들 어떠리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어쨌든 한 순간이나마 자본권력에 의한 상처를 입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요. 그것도 다름아닌 성당이라는 곳에서 말이죠!



138

추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