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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욱 [ckrkdud] 쪽지 캡슐

2012-08-29 ㅣ No.6358

목사님의 답변을 보고 답장을 드립니다.
신학을 전공하시고 지금은 주님을 전하기 위해 애쓰시는 선교사 이시지요.
제가 목사님과 그래도 대화를 해보겠다 한것은 제가 많이 배워 대적하겠다는 뜻으로 한것이 아니라
개신교 분둘을 좀 더 이해하고자 함 이었습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 입니다.
 
물론 천주교의 성경 해석과 많이 다를수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있습니다.
 
어쩌면 시작과 더블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제 의견을 전달 하고자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
 
1. 천주교 성경과 개신교 성경이 다르다는 것을 또 확인합니다.
기준이 다른 데 이런 것 가지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천주교 성경이 맞나? 개신교 성경이 맞나? 가 되어 의미없는
논쟁이 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자손이고 다윗의 자손이 맞습니다.
 
답변 잘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신학의 전공자입니다. 최소한 원본(영어성경이든 라틴성경이든)의 내용상 어느것이 맞는지
확인해 주실 수 는 있다봅니다.
천주교 성경이 우위에 있다 그런 얘기가 아님은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마태오복음사가 복음을 쓰면서 전하고자하는 대상을 예루살렘과 인근의 유다인으로 정하고 그들의
정서에 부합하여 효과적인 복음전달을 하고자 다윗을(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다윗과 같은
힘있는 통치자로서 현실적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다윗왕조시대의 영광을 바란것으로 알고있음)
아브라함의 앞에
놓았다 저는 생각합니다.

목사님과 이러한 답변을 주고 받기를 희망하였습니다.
 
2. 14라는 숫자에 너무 의미를 두지 않았음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다면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14를 맞추려고 했는가 보다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14는 다윗 이름을 구성하는 히브리 글자의 숫자입니다. 이 숫자는 다윗왕조시대의 영광을 나타내지요.
성경을 잘 아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신것 같습니다.
어떤분은 7은 하나님의 완전수, 6은 사단의 수 사람의 수라고 하지만 그런 것은 사람이 각자가 만들어낸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이또한 목사님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7귀신 들렸다면 이것도 완전수입니까?
귀신에게 완전히 정복당한 상태를 나타내기위해 7귀신이라 한것은 아닐까요?
예수님 포도주 만들 때 6항아리입니다, 이것도 사단의 수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못하실일이 없다는 의미를 가미한다고 볼 수 도 있겠지요.
아시다시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숫자에 의미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맞추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이니
다른 생각할 것이 없다고 보고요.
성경이 하느님의 감도를 받아 적혔다느것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하느님 마음이니 다른 생각할게 없다는 것은 좀 아닌듯 싶습니다. 
그 하느님 마음을(뜻)을 바로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성경이 쓰여진 이후 지금가지 의미를 더 정확히 알려고 많은 교회신학자들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성령의 감도를 받아 마태오복음사가 그렇게 쓴 이유, 목적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3. 마치 성경이 틀렸다, 오기라는 표현을 하시는데 성경 족보에 어디가 오기가 있나요?
아브라함~다윗까지
다윗부터~바베론 이거
바벨론 이거후~ 그리스도까지
14대가 아닌가요?
마태복음서를 보세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성경상의 바빌론 이후 기록(12 - 16절)은 13대 입니다. 다시 세어보시지요.
여고니아는 이전의 대에 14대 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견해는 아마도 후대의 필사자가 실수한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7절의 아비야의 후손은 찬미가의 작가 [아삽]이 아닌 [아사] 이지요.(1역대 3장10)
 
그러나 마1장에는 빠진 임금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뺏겠지요.
존경하는 목사님. 성경책에 나오는 인물 다 한다해도 과연 몇명정도나 이름이 있을까요.?
이름이 없다하여 그들 모두가 문제가 있어 하느님께서 빼셨다고 하는것이 옳을까요?
성경에 이름이 없다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진거라고 말하는건 지나친듯 싶습니다.
성경내용을 임의로 단정짓기 시작하면 그 폐해는 말 하지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1) 요람(이세벨의 사위)의 3아들: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2)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그 외에도 흔히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듯 육적 혈통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식이 없어 동생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지는 일이 있듯이
스알디엘 다음에는 동생의 아들인 스룹바벨이 왕이 됩니다.
이런 것이 마태복음서에 기록이 안되었다하여 오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엔 오류가 존재하지않지요.
하지만 사람이 쓴 성경이기에 글자나 문자의 오기는 있을수있습니다.
그것을 [대화의가치]로 까지 이야기 하시는건 좀 오버라고 봅니다.
 
한 예로 주의 기도는 두군데 마태오 루가 복음에 등장하지만 내용이 다릅니다.
둘다 주님게서 말씀하신걸로 되어있습니다.
둘다 Q문헌에서 옮겨왔지만 루가복음사와는 달리 마태복음사가는 자신의 생각을 가미한것 이지요.
그럼에도 마태오기도라고 부르지않습니다. 
그럼에도 초기교회지도자들은 주님의 의향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이지요.
 
4. 왕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대상.하를 보시면 도움되리라 생각합니다.
 
역대 왕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림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람은 이세벨의 사위입니다. 요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대하21장 참조하세요.
마태복음 성경의 족보에 빠질 정도라면 아들들의 신앙은 좋다고 볼 수 없겠지요.
(출20:4-6 3, 4대까지 부모의 죄가 간다는 성구가 생각나네요.)
마태복음 성경의 족보에 빠졌다하여 이들의 신앙이 좋다 나쁘다 평하는것은
옳지않다 봅니다. 그것은 지극히 목사님의 개인적 견해이지요.
바빌론 이후 소개된 12명중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는 불과 세명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9명은 목사님의 표현방식을 빌리면
신앙심이 좋지않아 구약성경에 적히지 않았다가 죽고난 이후 어디선가 신앙심이 좋아저서
마태복음에 실린것이 되어버립니다.
성경은 편하게 당장 머리에서 느껴지는데로 이리저리 내둘리면 안될듯 싶습니다.
 
더구나 목사님은 많은 이들을 가르치는 분 이기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목사님의 잘못된 판단은 되돌릴수없는 가르침으로 다른이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고냐(=여호야긴)라는 인물을 들면
대하36:9, 렘22:24-30 여고냐 자손은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단 족보에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생명책에는 이름이 기록됩니다.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요.
범죄하면 출32:32-33
생명책, 이름없어 문제, 지워졌다....
위에서도 언급하다 시피 앞으로는 이런 의견은 내지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틀렸다고 하면 저와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답이 나와야 한다고 여깁니다.
맞습니다. 성경에 근거하는게 나와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이니까요.
사람의 생각이 아닌 성경에 근거....
그런데 목사님.
이번 답변의 대부분은 성경에서 근거를 제시하신게 아니라 목사님의 생각인듯 합니다.
제시해주신 성경구절 어느곳엣도 마태복음에서 지워진 이름들은 신앙이 올바르지 못해
지워진거라고 하지 않습니다.
 
질문도 대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좀 불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한줄은.....
성경의 구절에 대한 의미를 질문하였습니다. 성경구절이 대화할 만한 가치가 없다 여기시니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지 난감합니다.  
 
목사님
성경의 어느 부분 (현재 이 질문처럼)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과
어떤것을 주장 하거나 혹은 어떤 가르치거나 할때 성경의 의미를 찾지않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문자가 내 주장에 어울리는가 를 보고 형태만 불러다가 인용하는 것 중에서
 
주님을 바로 섬기기위해 성경을 올바로 가르치는 것은 전자 인가요 후자인가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요즘은 TV, 인터넷등) 대부분의 개신교회의 목사님들이
후자의 경우를 택하시더 군요.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것.
성경의 의미를 인위적으로 가공하는것.
내 생각이 마치 하느님의 생각이고 뜻인것처럼 포장하는 행위.
하느님을 사람의 상식으로 재단하려는 행위에 대해
그리스도 인들이 극심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모쪼록 영육간에 평안하시고 주님의 은총속에 평화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제 글에 불쾌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 드립니다.
 
2012 .8 . 28
차태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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