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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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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톨릭 신앙을 갖기 전에 가진 의문 중에 하나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사흘길을 걸어 모리야산으로 아들 이사악을 번제하러 가서 실제로
번제하려고 칼을 들어 이사악을 내리치려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과연 믿음인가?
그것은 광신이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광신을 요구하시는가?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믿음은 광신인가? 에 대해 물었을 때, 저에게 돌아온 대답은,
"무조건 믿어라" , 또는
"그냥 믿으라니깐" , 아니면,
어떤 친구들은,
"대충 믿으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길 따지는 거야."
이런 식의 답변을 듣곤 했습니다.
한참 세월이 흘러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후 몇 년전 어느 날,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의문이 주님의 은혜로 풀렸습니다. 혹시라도 과거의 저와 같은 의문으로 인해 분심을 갖고
계시는 분도 계실 수 있어 나눔 차원에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질문하시는 분이 없는데도 글을 올리게 된 점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를 보시면 11장에서 25장까지 약 15장에 걸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아 175세에 죽기까지 100 년에 걸쳐
하느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즉 어느날 갑자기 아브라함의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고
장구한 세월 동안 하느님을 체험함으로써 그분께서 전능자이심과 그분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약속으로 주시어 100세에 이사악을 갖게 되었는데,
이사악을 번제하라 하신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사악에게 번제할 나뭇짐을 지게한 것으로 보아 이사악의 나이가 열살은 넘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100세에 낳은 이사악이 약 15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대략 115세 전후 이었겠지요.
75세에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시어 아브라함이 약 115세 안팎이었을 때,
이사악을 번제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으로 추정하면,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그때까지 40 여년에 걸쳐, 다음과 같은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말씀대로 이루심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1.기근으로 이집트에 피난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를 보호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파라오와 그 집안에 여러가지 재앙을 내리심.(창세기 13장)
2.아브라함이 99세에 나타나시어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사라를 통해
다음해에 이사악을 낳게 됨을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심.(창세기 17장과 18장, 20장))
3.말씀하신 대로 소돔이 한 순간에 멸망당함을 봄(창세기 19장)
4.그라르에서 나그네살이할 때 사라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심.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의 병을 고쳐주심.
(창세기 20장)
위와 같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번제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기 전에 이미
40 여년에 걸쳐 하느님을 체험하였으며 그러한 체험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전능자이시며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1장 12절에 보시면 특기할 만한 하느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사라의 요청을 아브라함이 무척이나 언짢게 생각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지 않으려 합니다. 이스마엘이 첩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브라함
입장에서 처음으로 갖게된 큰아들인데 아비의 마음이 어찌 쫓아내고 싶었겠습니까?
바로 이때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시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 받을 것이다."
라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만큼(창세기
15장 5절)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신 하느님께서 이사악을 통해서
낳게 될 후손들만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이어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서로 다른 말씀을 놓고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고민을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A: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B: 이사악을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만일 우리가 아브라함인데 하느님의 말씀 A 를 믿지 않고 B 만 믿고 이사악을
번제하러 갔다면 이는 믿음이 아니라 멀쩡한 자식을 잡는 냉혈한이자 광신도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사악을 통해 후손들이 태어날 것임을 약속하신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써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심을 체험한 아브라함은 A 를 믿었기 때문에
B 라는 행위을 믿음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40 여년에 걸친 하느님 체험에서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전능자이심을 알게 되었기에 설령 하느님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하더라도 이사악을 다시 살려주시어 이사악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을
별과 같이 많게 하시고 이사악을 통해 갖게 되는 후손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칭함을 입게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A)에 근거하여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게 된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이사악을 번제로 바쳐도 다시 살리시어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시어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통해 후손들을 말씀(A)대로 얻게될 것을 확고하게
믿은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히브리서 11장의 다음 말씀이 아브라함의 그러한 믿음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17절에 붉은 색으로 표시한 "약속" 은 바로 18절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으로"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말씀인 것입니다. 만일 번제했는데
다시 살려주시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언약말씀은 거짓이 되는 것인데 아브라함의 체험에 의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고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40 년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아브라함을 번제하러 사흘길을 걸어 모리야 산에 가게 된 것입니다.
위에 인용했듯이, 첩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에 그렇게 언짢아 했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죽이러 가는데도 아브라함이 거역했다거나 지체했다거나 언짢아 했다는 말이 성경에 한 마디도 안나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었는가 하면 40 년에 걸친 체험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을 확실하게 보고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위 성경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수 있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믿고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한 것입니다. 이사악을 번제시키라는 하느님의 참혹한 명령에 아무 생각없이
순종한 비정한 아버지가 아니라 반드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냥 상상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약속(언약)을 믿은 것인데, 그 언약인 즉슨,
이사악을 통해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겠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자식을 죽이라고 해서 죽이겠다고 나선 비정한 아버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언약 말씀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믿은 믿음의 아버지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이러한 믿음인 것이지 멀쩡한 자식을 죽이는 맹신이나 광신이 아님에도
오늘날 마치 하느님께서 광신을 요구하시는 것 같이 억지 믿음을 강요하는 미신이나 맹신은 우리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언약말씀을 확고하게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1.말씀(성경,공적계시)에 근거해서 믿어야지 아무렇게나 믿으면 우상숭배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믿음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오랜기간에 걸쳐 하느님의 말씀(성경)을 듣고(읽고) 그러한
하느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고 체험하여 하느님께서 전능자이심을 알게 될 때
살아 있는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3.따라서 내 맘대로 또는 상상대로 또는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고 말씀(성경)에 근거해서 믿어야 되고 나아가서
깨달음과 체험에 의해 하느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믿게 해주셔서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믿게 해달라 기도하여 은사로 믿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성경말씀이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약속으로써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믿는 것도 아니고, 상상으로 믿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믿는 척하는 것도 아니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믿게 해주셔서 체험과 깨달음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게 될 때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 성도의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주님께 기도로 청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믿음의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성경에 계시된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가 바르게 믿음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과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언약말씀에 근거하여 이사악을 다시 살려주시리라는 믿음이 아니라, 만일 아무 생각 없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하러 사흘길을 걸어 모리야 산에 간 것이라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아닌
광신자에 불과하듯이 우리에게 말씀(성경과 성전)이 없는데 뭔가를 믿는다면 그것은 환상이거나 우상이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사악을 통해 나오는 후손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여겨질 것이고 이러한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임을 약속하신 살아계신 전능자의 말씀에 근거하여 아브라함과 같이
흔들림없이 믿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1.광신자와 같이 믿지 않을 것이며,
2.맹신자와 같이 사적계시(공적계시인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무당 공수 수준의 사적계시)를 믿지 않을 것이며,
3.뭘 믿는지 모른 채 미혹된 자들이 하는대로 따라서 우상숭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에 근거하고 은총에 근거하여 믿을 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살리는 믿음이 되어 그사람에게서
믿음과 일치하는 합당한 선행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족 :
참고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하러 사흘길을 걸어 도착한 모리야산은 사무엘하 24장에 나오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써 다윗이 은 50 세켈에 사서 이 자리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믿는 이를 위한 "야훼이레"가 되시었습니다.
복음서(루카 13:13)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모리야산) 외에 다른 장소에서 돌아가실 수
없으셨던 것은 바로 이삭을 대신한 "야훼이레"로 숫양을 마련해 두었듯이, 우리 죄인을 위해 주님께서 "야훼이레"가
되신 것입니다. 신구약의 말씀들은 이와 같이 영적으로 문자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신구약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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