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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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창세기해설서 <보시니참좋았다>중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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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석 [pedrofe] 쪽지 캡슐

2008-04-18 ㅣ No.3017

다음은 임연진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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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석님 답변 감사합니다..그런데..보시니 참 좋았다 중에서요..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 및 그 숫자에 대한 언급은 야휘스트의 기술(7.2-3)로서 제관계의 기술 내용(7.14-15)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야휘스트가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가른 것은 후에 율법규정(레위 11.4-47)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효용성을 기준으로 나눈 것이며, 부정한 짐승도 똑같이 살 권리를 가지며 보존됨을 의미한다.<보시니 참 좋았다 p133>

하느님께서 알아서 노아앞에 보내주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구분이..

레위기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인간의 효용성의 기준이라는데..

하느님께서 판단하신  인간에 대한 효용성(식용?..제사용?..농사용?..교통수단?..) 의 기준이 뭔지 궁금해서요..

제가 창세기성서모임 그룹나눔 인도중에 송두석님께서 답변해주신 것처럼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해서 묵상적인 나눔만 했었다가..

제 대답에 제 스스로가 의문이 생겨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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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성경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노아 홍수 사건 이후인 창세기 9장에 와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음을 알게됩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창세기 9장 3절의 말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성경에 의하면 인간들은 채식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주해서에서 "효용성"을 근거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었다 라고 되어있다고
한다면, 도데체 어떤 짐승이기에 효용성을 근거한 것인가? 라는 논리적 의문을 가지실 수
있겠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짐승이 정결한 짐승이고 어떤 짐승이 부정한 짐승이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최소한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희가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첫째로 노아 때의 기준과 레위기에 나오는 짐승 분류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노아때 분류된 짐승의 상세한 내역이
있어야만 근거로 제시하며 다르다고 해야할 것 아니겠읍니까? 노아 때에나 레위기 때에나
동일한 하느님께서 분류해주셨는데 그차이는 레위기에서는 상세한 분류기준및 짐승들의
이름이 나오지만 노아 홍수 사건 때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결같은 하느님이시므로 동일한 분류기준일 것으로 믿읍니다.
그 이유는 변함없는 하느님의 속성을 믿기 때문이고 또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사람이 구분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구분해주셨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 항상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이나 자의적 해석이 기준이 되면 안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정결하다고 하신 짐승은 정결한 것이며 부정하다고 한 짐승은
부정한 것입니다.
 
둘째로 도대체 무슨 근거로 노아 때에 효용성을 근거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레위기와 다르게
구분했다 라고 해설서에서 설명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읍니다. 자매님이 인용한 주장에 의하면
노아 때와 레위기의 분류기준이 다르며 노아 때에는 효용성 기준인 것 같다 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제가 오해할 수도 있음), 우리가 논리적이라면 다음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분류법에 의해 동물의 이름이 열거되었는가?(답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때는 효용성 기준이고 레위기 때는 다른 기준인가?(분류된 게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나 의문이 드는군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자꾸 사람이 자신의 지식에 의해 분석하고 의심하면서 상상에 날개를
펴다가 그럴듯한 생각에 기준하여 자꾸만 성경의 앞뒤가 안맞는 듯 오해하게 되지만
성경에는 하느님의 영적인 원리가 흐르고 있어 영적으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문자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니라도 봅니다.
 
위에 인용한 임연진님의 글(해설서 인용)에 의하면 레위기의 기준과 노아홍수 때의 분류기준이
다른데 노아 때에는 "효용성"에 근거해서 분류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노아 때에 구분하여 분류된게 있기나 한가요?
뭔가 다르게 분류된게 있어야 그런 상상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해설서에서 쓰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 해설서를 쓰신 분은 성경이 앞뒤가 안맞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쓰다보니 사실상 노아홍수 때에는 상세하게 구분한 분류기준이 나와 있지 않음에도
자의적으로 무조건,
1.노아 때와 레위기에 나오는 분류기준이 다르다 라고 맘대로 상상해서 믿은 것입니다.
2.이러한 상상에 날개를 펴서 한걸음 더 나가서 노아 때에는 레위기 분류와 달리 "효용성"
기준이었다. 라고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짐승이라고 이름이라도 나와야
효용성 기준인지 아닌지 알 것 아니겠읍니까?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제 집안 얘기입니다.
제 아내가 지금부터 5- 6년전에 성경공부하면서 동일한 해설서를 들고 왔더군요.
그래서 제가 읽어보고 아내에게 그 해설서는 읽으면 안된다고 말해주었읍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읍니다.(오래되어서 기억이 약간 다를 수도 있음)
 
1.성경이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이며 성령의 감도하에 기록된 것으로 보지 않고, 중동지역의 여러
설화 (이민족설화포함)들이 점차적으로 서로 간에 영향을 주면서 인간들끼리 대충 멋대로 적은 것이다. 라는
뉘앙스가 풍김.
 
2.성경 안에도 야휘스트 문헌 엘로이스트 문헌, 사제계.. 등등의 문헌들을 앞뒤 안맞게 짜집기 하다 보니
중복되어 나오면서 문자적으로 앞뒤가 안맞는다. 라고 오해를 불러일으켜 해설서를 읽는 사람이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의심하게 할 소지가 있음(순전히 제 개인적인 견해임).
 
인간이 만들어낸 주몽설화나 이이솝우화와 같은 것으로 성경을 믿는 분들이 도대체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는 무슨 의미로 받을까요? 도대체 그렇게 설화라고 믿는 사람이 복음말씀 선포 때에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본인은 설화로 믿는데 그냥 남들이 일어나니까 따라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는 다 성경말씀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출애굽 때에 서서 불에 구운 양고기(성체및 말씀 상징)를 먹었듯이 복음 말씀 선포시에
우리가 서서 복음을 우리의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먹는 것입니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 구약의 성경말씀을
주몽설화 정도로 치부하고 있음에 분노합니다. 제가 가능하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여 항상 설명드리려고
주님께 기도로 은혜를 청한 후에 글을 올리고 있읍니다. 저도 과거에는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설화에
불과하며 기껏해야 역사서인데 그것도 자기들이 미화한 것이다. 라고 불경스럽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봉독하며 주님의 은혜로 신구약이 영적으로 또한 문자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구약이 없이 신약을 이해할 수 없고 신약이 없이 구약을 해석할 수 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읍니다.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바칩니다.
 
제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한가지가 있는데, 하느님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가 의심없이
믿기를 바라십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이 먼저 임하고 물질적인 축복이 필요에 따라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약속이고 저는 그렇게 체험한 사람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하느님께서 자신을 믿어달라 하시면서 자신의 말씀인 성경은 앞뒤가 안맞게 뒤죽 박죽으로 만드셨겠읍니까?
그런 하느님이시라면 제가 왜 믿겠읍니까? 저는 논리에 관하면 평생을 자신감에 넘쳐 살아온 사람입니다.
만일 성경에 논리적 모순이 있었다면 제가 절대로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거의 30년을 성경을
읽어온 사람입니다. 처음 이십몇년간은 항상 의심을 하며 뭔가 잘못되고 앞뒤가 안맞는 것이 없나 하는 불경한
생각으로 하느님의 오류를 찾아가며 읽었읍니다. 그 다음 5년은 매일 매일 놀라며 읽게 되었고 지난 1년반
동안은 눈물로 회개하며 감사하며 성경을 읽고 있읍니다.
 
제가 굿뉴스에 글을 올리게 된 것도 하느님께 회개하는 마음에서 혹시라도 과거에 저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는 분이 계시다면, 하느님의 성경말씀이 참됨을 증거하며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하느님은 거짓인 성경말씀을 믿으라는 거짓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자 참되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참된 성경말씀을 우리가 의심없이 믿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을 내리시고 필요에 따라 물질적인 축복도 내려주십니다.
 
해설서에 대한 견해는 순전히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최소한 저희 집안에서는 그런 해설서는
읽지 않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그런 해설서를 읽고 난 다음에 몇줄 주워들은 지식으로 감히
성경말씀에 대해 야휘스트가 어쩌고 엘로이스트가 어쩌고 제관계열이 어쩌고 하면서 앞뒤가 안맞으니 믿지
말고 그냥 참고만 하는 것입니까? 앞뒤가 안맞게 보이는 것은 단지 의심하는 사람의 눈에 그런 것이지
믿는 사람에게는 훌륭하게 영적으로 성령님께서 연결시켜 주십니다.
 
"믿게 해주세요." 라고 겸손하게 하느님께 청할 때 믿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신의 부족한 지식으로 의심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지식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다는 것이므로 하느님보다 자신의 지식이 더 높은 것이고
지식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이지요.
 
제 글이 어떤 경우에는 너무 강하게 들려 읽는 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읍니다.그런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혀둡니다. 제 의도는 다만 한가지인데 하느님의
말씀이 참됨을 믿어주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시므로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며 신구약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의심없이 진리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함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교만한 마음들은 하느님 앞에 낮아져야 합니다. 감히 하느님의 말씀이 맞네 틀리네 하는
교만한 주장은 본인의 머리가 혼란상태에 있어 앞뒤를 따질 능력이 안되므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참되신 성경말씀이 참임을 증거하는 것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지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말씀에 오류가 있기라도 한듯이 주장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의 죽은 지식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보다 잘나서 자신의 지식으로 하느님의 실수를 찾아냈다고
의기양양하는 것인데........... 그러면 하느님은 뭐하러 믿나요? 자신의 지식을 믿으면 되는 것이지요.
가끔 성경묻고 답하기에 질문하는 분들 중에 보면 자신의 의심을 기정사실화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자신의 의심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우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겠다는 자세로 성경을 읽으시면 하느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어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이상은 나눔차원에서 말씀드렸읍니다.
 
이하 추신입니다.
 
인간에 대한 효용성을 기준으로 해서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파악할 수
없으므로 임연진님 질문에 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그러나 제가 관련한 성경귀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이미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즉, 동일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서로 다른 기준일 수는 없다고
본다는 것이고, 노아 때의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과연 레위기와 다른데 그러한 이유가 인간에 대한
효용성 기준으로 다른 것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군요. 해설서 공부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정결한 짐승의 숫자에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이미 얼마전에 논쟁을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으나 밑에 다시 한 번 설명드립니다.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인 성경공부를 하다가 해설서 공부로 바뀌어서 그만 하느님의 말씀을 주몽설화
수준으로 바라보게 되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해설서의 저자가 과연 신앙인으로써
성경말씀이 계시진리임을 믿는냐 아니냐 가 중요하다 하겠읍니다. 만일 해설서 저자의 시각이 성경말씀은
일부는 주몽설화 수준이고 일부는 이것저것 짜집기해서 구성한 것으로 앞뒤가 안맞는게 당연하므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라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람은 바로 안믿는 분(부정한 짐승)이므로 그런 말을 우리가 양식으로
받아먹어서는 안되겠읍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성체입니다. 성체는 또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양식은 성체이시자 말씀(성경의 레마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성체도 받아 먹고 말씀도 받아
먹읍니다. 음식은 바로 말씀이고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참사람이시고 참하느님이심)입니다.
부정한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부정한 짐승이므로 그런 분(짐승)의 말(음식)은 받아 먹어서는 안되겠읍니다.
 
그리고 숫자가 일곱쌍이냐 한 쌍이냐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일곱쌍의 정결한 짐승을 넣은 것이 맞읍니다. 그럼 한쌍은 뭐냐? 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 상씩 짝을 지어서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그렇게 정결한 짐승은 일곱쌍이 모두 들어갔는데
들어갈 때는 한 쌍씩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일곱쌍이 들어간 것이 맞읍니다. 일곱쌍이 맞는 이유는 
한쌍도 일곱쌍 안에 들어가 있으므로 한 쌍도 맞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 쌍만 맞으면 일곱쌍은 거짓이 되어서 바로
성경의 하느님 말씀을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해보세요. 합동결혼식을 하는데 신혼부부가 한 쌍씩 입장합니다. 그러나 그날 결혼한 신부는
한 쌍이 아니고 모두 일곱쌍입니다.  믿으려고 하면 믿어지는 것이고 의심하려고 하면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다가 뒤죽박죽으로 앞뒤가 안맞게 써놓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는 하느님이시겠읍니까? 그런 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롱해서는 안되겠읍니다.  그 다음에 비는 40일간 왔는데
왜 홍수는 150일이냐 라는 의문도 있는데 꼭 비가 내려서만 홍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땅속의 물들이 솟아
올라와서 홍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이므로 성경을 의심으로 읽지 말고 믿음으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세계 도처에서 오늘날에도 물이 솟아서 호수를 이루는 곳이 얼마나 많읍니까. 백두산 천지도 그렇고 높은 산에서도
물이 솟아올라 오늘날에도 호수를 이루고 있지 않읍니까?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국립공원 중에
옐로스톤(Yellow Stone)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는 Old Faithful 이라고 하는 분출구가 있어서 약 한시간 간격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땅속에서 솟아 올라 하늘높이 올라갑니다. 제가 가족과 함께 가서 보고 정말 놀랬읍니다.
땅 속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이년 후에 가족과 한번 더
다녀왔읍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우리가 믿는 것이지요. 
 
저는 하느님의 성경말씀은 다 믿기로 작정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앙을 고백합니다.
과거에 의심했던 것이 모두 제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제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성경말씀이 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때가 되고 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면 은혜로 알게 해주시리라 믿읍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써 그분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의심하기 보다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게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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