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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최민호 선수 세례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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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이 뭐죠?
스포츠 칸에서 퍼옴.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결승에서 이긴 순간부터 터진 눈물은 매트를 떠날 때도, 인터뷰에서도, 시상식에서도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몸은 비지땀에 젖었지만 얼굴을 적신 건 분명 뜨거운 눈물이었다. 9일 베이징올림픽 남자유도 60㎏급에서 우승한 최민호(28·KRA)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왜 그토록 울었을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과거가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치자 순하디 순한 그의 울음보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진짜 정신력으로, 제 모든 걸 참고 견뎌 가면서,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면서, 정말 참고 또 참았어요.” 머릿속에 끝까지 남은 잔상은 통한의 동메달에 그친 2004 아테네올림픽이었다. 체중을 10㎏이나 빼고서 그만 다리에 쥐가 나고 말았다. “그때는 동메달도 좋았는데 주위 반응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원희와 정말 친해서 계속 같이 다녔는데 항상 나는 뒤에서 혼자였어요. 정말 처량했죠. 금과 동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그땐 미처 몰랐어요.” 그후 그는 끝모를 방황에 허우적댔다. 2005년 여름, 퀴퀴한 여관방. 그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7병, 그리고 아이스크림 30개를 먹어치웠다. 눈 뜨면 들이켰고, 취하면 잤다. 그리고 깨면 또 마셨고, 취하면 또 잤다. 몸무게가 순식간에 10㎏이 늘었다. 한 마디로 폐인이었다. 운동은 안중에 없었다. 그냥 미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 그래서 모든 걸 잠시라도 잊게 만드는 술에 의지했다. 2005년 겨울, 병역특례자가 받는 4주간의 군사훈련이 전환점이 됐다. 규칙적인 훈련, 절제된 식사와 생활…. 퇴소 때 체중은 62㎏으로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원상복구하자 그때 다짐했다. ‘다시 시작하자. 매트에 다시 오르지 못하면 100년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때마침 구원의 손길이 왔다. 한국마사회(KRA)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강한 훈련과 확실한 자기관리로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엔 한 번에 아이스크림 50개를 먹었죠. 배가 터지지 않으면 잠도 못 잤어요. 미친 놈 소리까지 들었죠. 그런데 꿈이 생기니까 참을 수 있더라고요.” 사선을 넘나드는 훈련, 끊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는 인내. 서서히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려 10㎏을 빼야했던 아테네는 과거 실수였을 뿐, 최근 2년동안 그는 매순간 최고 몸상태를 유지했다. 몸과 마음은 준비 끝. 마지막 남은 운까지도 구했다. “자기 전에 기도했어요. ‘하느님, 제가 운동 이렇게 열심히 할지 몰랐죠, 깜짝 놀랐죠’라고. 매일 밤에 울 정도로 훈련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드리워졌다. 길몽도 꾸었다. 올림픽 우승하는 꿈, 그것도 같은 꿈을 다섯 번이나 꿨다. “깜짝 놀라 깨면 꿈, 너무 떨렸죠. 처음 꿨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런데 계속 같은 꿈을 꾸니까 얼마 전부터는 금메달이 그냥 내거려니 여겼어요. 그때부터는 올림픽이 너무 기다려졌죠.” 드디어 결전의 날. 그는 첫 판부터 결승까지 내리 5판을 화끈한 한판으로 이겼다. 소심한 성격 탓에 제 기량의 100%를 발휘하지 못해 매번 우승문턱에서 주저앉았던 한을 단번에 푼 드라마였다. ‘원조’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조차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민호형에게 줘야겠어요. 갖고 있기에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주민등록상 그의 생일은 8월18일. 그런데 진짜 생일은 올림픽 개막일인 8월8일이었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은 29회째, 그의 나이도 우리나이로 스물 아홉살. 이번 금메달은 29회 생일을 맞은 올림픽이 스물 아홉살이 된 순박한 청년에게 준 숙명의 선물 같았다. 이번 금메달로 ‘3등 전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도 뗐다. “아세요? 제가 동메달 그랜드슬래머라는 거. 어쩔 때는 국내 선발전, 심지어 단체전까지 3등을 했다니까요. 국내외 모든 대회에서 안 해본 3등이 없어요. 엄마가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최민호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같이 어머니 자랑을 늘어놨다. “우리 엄마 얼마나 착한지 아세요.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를 위해 새벽기도를 하세요. 성당 수녀님이 성당 열쇠를 맡길 정도였죠. 엄마가 봉사를 너무 많이 해서 성당으로 찾아오는 김천 할머니들이 무척 많았어요. 저는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천사같이 착한 엄마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요.” 그의 눈은 또 글썽글썽해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다시 비장해졌다. “한 체급 올린 66㎏급으로 런던올림픽 금메달에 다시 도전할 거예요.” 서른이 다 돼서야 맛본 유도의 참 맛. 서른 세살이 될 4년 후에도 또다시 이 맛을 느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