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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계시는 성전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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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성서와 성전을 계시의 두 원천으로 삼습니다. 성전이란, 그리스도교 전승, 전통을 일컫는 개념입니다([가톨릭대사전]에, 신학적으로 깊이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어느 종교에나 전통은 있고, 그 전통의 맥락에서 교리도, 종교 의식, 신심도 형성되며, 마침내, 그 종교의 경전(Canon)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서란, 그리스도교의 성전들 중, 문자로 기록되고, 정경으로 확정된 문헌들의 모음이지요. 따라서, 성서는, 성전, 즉, 사도로부터 이어온 통시적 맥락의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해석될 때, 온당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종교에 관계 없이, 누구든지 성서를 읽고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모든 해석이 그리스도교적 해석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서라는 텍스트의 해석이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되려면, 그리스도교적 컨텍스트, 즉, 성전의 맥락에서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오직 성서'라는 테제를 내걸고 종교개혁을 하고 갈라져 나갔습니다만, 개신교 또한, 이같은 그리스도교적 전통의 맥락을 상당수 유지하면서 신앙을 영위하고, 성서를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해, 개신교파들 중에서, 칼뱅과 츠빙글리를 따르는 개혁파(장로교) 정도만이, 성서에 나오는 것만 인정한다는 입장이지만, 개혁파라 해서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같은 성서 문자주의적 입장에 함몰되면, 어떤 교리도, 신학도, 신앙 생활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전통과 전례를 중시하는 개신교파인 성공회와 루터교, 성공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감리교의 경우는, 더더욱 전통을 중시하고 있으며, 성공회-감리교는, 개신교답게 성서를 가장 우월하고 최종적인 권위로 두되, 성서와 전통을 신앙의 준거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파들은, 사도로부터 이어온 성직의 정당성 및 성사의 유효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사도로부터 이어온 전통 위에 온전히 서 있지 않은 것이며, 그리스도교 전통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음에도, 객관적 준거가 상당 부분 결여되어 주관주의에 빠지기 쉬운 맹점을 지니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는, 정경, 즉, 공적 계시인 성서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전통인 성전 또한 갖고 있을 때, 온전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 뿌리는, 나눠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전이라는 전통적, 통시적 맥락 가운데서 성서의 계시를 받아들일 때, 교회와 개인의 신앙의 열매 또한 올바르게 맺힌다는 것이지요. 어떤 부류의 분들은, 사적 계시를 성전이라 호도하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적 계시란, 글자 그대로, '사적'인 것이지, 공적, 즉, 교회 공동체가 공유하는 권위와 준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열매들이 성서와 성전, 교의라는 준거에 의해 가늠되어야 하듯이, 사적 계시 역시 성서와 성전, 교의라는 잣대로 교회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한 연후에, 그것이 진정 사적 '계시'인지, 비그리스도교적인 것인지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계시'로 판별되었다 해서, 성전에 편입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교회 내 출판물이, 교회의 판단 이후 출판 인가 여부가 결정되지만, 인가된 출판물을 모든 신자가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교회 내의 어떤 준거적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니듯이, 사적 계시 역시, '사적'인 것일 뿐, 모든 신자가 믿어야 할 교의도 아니며,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공유물도 아닌 것입니다. 사적 계시를 성전이라는 원천, 뿌리에 슬쩍 집어넣으려는 시도는, '지록위마'라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는 가증스러운 작태입니다. 사적 계시를 성전인 양 호도하는 분들은,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신앙의 기본을 새로 공부하시든지, 기만적인 강변 내지 궤변을 중단하셔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