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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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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성전건립을 위한 기도문 중에 “민족복음화를 위한...(생략)... 강동지역 복음화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기도문을 작성하신 형제님께서는 주임신부님께서 주문하여 작성하였다고 한단다. 참 좋은 기도문이다. 그렇다 이 기도문을 작성하기 위해 깊게 묵상했을 형제님의 노고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문을 늘 묵상해보면 이 죄인이 주장하는 취지도 그다지 틀린 것이 없는 것이다. 착각일까? 민족복음화이면 교구장님의 방침인 2020복음화를 떠 올리게 되고, 강동지역이면 7개 본당들을 분가시킨 강동지역 모 본당으로서 제2의 부흥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 기도문 취지가 그저 생색내는 밀실과 전시행정식의 치적의 뜻으로 받치는 건립기도문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이 기도문의 취지대로 표현하자면 서울대교구내에서 3번째로 큰 대지를 확보하고 있기에 더욱 알차고 지혜스러운 복음화 성전건립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 죄인의 표현들에 대하여 알몸 되기를 싫어하시는 높으신 분들이여 이의제기를 해달라는 주문을 드린다. 3천 평의 대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랜드 마크 하나 없는 추진은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지적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 건립에 따른 교구행정의 교과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 죄인의 판단에는 원칙 밑에 있어야할 편리가 원칙보다 우선인 것을 체험했기에 그런 것이다. 이러니 현장에서는 신자들을 무지함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 달라는 주문이다. 교구관리국을 방문하여 상담하면 추진에 대한 지침서가 있다고 하여 그걸 보여줄 것을 주문하니 못 보여준다고 하며 해당 본당에 가서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추진위 간사를 만나서 그리고 공문을 통해 정식 보여 줄 것을 요청 드렸는데 아직까지 답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 현실인 것이다. 신자들을 객으로, 무지한자로 취급하는 작금의 현실은 슬픈 것이다. 아니 못 보여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신자 없는 종교단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신자들을 팔불출 취급하는 자세들은 시정되어야할 가톨릭행정 제도상에 크나큰 숙제이다. 너무 군림하는 일방적인 자세와 행동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목기본방향이 아닐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교구나 본당에 질문한다, 무엇이 원칙이며 편리인지 바르게 설명 좀 해달라는 것이다. 아마도 평신도가 사심 없이 교구 등 감사제도가 주어진다면 고여 있는 많은 고름을 짜낼 수 있음을 확신한다. 평신도가 만든 것도 아닌 재무평의회제도? 이 제도를 왜 만들었는지? 그 취지와 운영규정과 집행방법과 상벌에 대하여 윗분들께서는 평신도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서울시노드대회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하여 잘못이 있으면 이의제기를 주문한다. 기왕 가톨릭신앙을 믿는다고 자부들 한다면, 가톨릭신앙의 주체성과 정체성에 대하여 먼저 성찰하고 묵상하며 봉사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선명하게 잘못된 건립추진이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눈을 속일지라도 진리와 진실은 못 속일 것이다. 건립추진에 대한 각종서류들이 특급비밀인지, 1급 비밀인지, 2급 비밀인지, 3급 비밀인지, 대외비인지, 분명한 공지를 해줄 것을 정히 요구한다. 평화신문 2008, 04, 20.자 기사를 보면. 추진위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자의 지붕붕괴와 천정붕괴(천정의 인테리어 부분 붕괴)를 구분 못하는 인터뷰 내용이 자칫 지적을 하지 않으면 이걸 모르는 독자들은 그대로 믿고 오해를 낳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려면 정확하게 해야 되지 않을까? 3백만원이 없어 갑바 씌우기를 거절하고 빗물이 새도록 방치하며 신자들이 원했던 재수선 보다는 건축의 사전준비로 철거하려고 여론 조성을 위한 의도성의 작전으로 누수 됨을 방치했었다고 인터뷰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사고로 추진봉사들을 하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 달라는 주문이다. 요 몇일 전에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사전에 예견한대로 문화원이 누수가 되어 엉망진창인 것이다. 무엇하나 쓸모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고비용 관리의 발생과 계단 투성이로 얼룩진 새 성전만 짖자고 하는 발상은 실효성면에서 그다지 효용이 없는 것이다. 사목회에서는 예방차원에서 이 누수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토론을 해 본적이 있는지 사목회장은 발표해보라는 것이다. 무엇이 급해 이렇게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공동체 사목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하여 잘못되었다면 이의를 제기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 사목자를 보기 전에, 늘 성전에 현존해 계시는 주님을 먼저보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성체조배를 하는가 말이다. 바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새기며, 지키고, 관리하고, 이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의 명령이신 복음화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하느님보다 사목자 부터 우선시 하는 환경이 너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직접보고 표현한 숭례문을 보지도 않고 남대문이라고 우겨대는 행동들이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 있으며, 차라리 어느 형제님 표현대로 사목 자와 자존심 싸움이면 좋겠다. 왜냐면 사목자께 엎드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 표현하고 좀 벗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구약성경의 탈출기에서 나오는 모세의 소명담을 묵상해보면 어떨까하는 주장을 해본다. 이 지적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 달라는 주문이다. 왜 예수님께서는 “적당히” 타협하셨으면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텐데, 왜 타협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까지 돌아가셨을까? 앞으로 신앙생활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는 피조물로서 풀어야 할 이죄인의 긴 숙제이다. 그러나 이 숙제에 대하여 그저 단순하게 가르쳐 주신대로 받아드리고 싶지, 여러 갈래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민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식이 아니고 믿음이기에 그런 것이다. 사목 자와 만남은 성전 건립 때문에 만났기에 이 만남의 약속은 주님과 약속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약속한 토론회와 각 추진서류들을 공개해 줄 것을 거듭 엎드려 요청 드린다. 굿 뉴스 자게판에 평상시에는 댓글도 치고 그랬다. 이마저도 인내함은 혹여 이 죄인으로 인해 상심을 드릴 것 같은 판단에 자제하고는 있지만, 정성 드려 올린 글에 대하여 아낌없는 칭찬과 관심을 못 드리니 송구스러움을 말씀을 드린다. 짝사랑 같은 표현에 양해를 구한다. 변함과 용기는 좋은 것이다. 변함과 용기는 주님이 주신 큰 선물일 것이다. 성전 건립을 위한 기도문 취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교부들이 가르치시는 인간 사이에서 요구되는 현명(賢明), 정의(正義), 용기(勇氣), 절제(節制) 등, 가장 요긴한 네 가지 덕인 사추덕(四樞德)을 묵상해보고자 한다.(가톨릭대사전 6권 4037쪽 하단) 좋으신 주님! 어떤 유혹에도 휘말리지 않고 마음을 철저히 비운 자세와 행동으로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08, 08, 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