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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아서-지리산 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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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We walk the path together
이 한 권의 책을 배낭에 넣고 던지듯 떠났다. 브라이언 신부는 온두라스의 인디언 부족 렌카족의 제사장이 소나무 가지를 들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그 상징을 물었다. "아주 이른 새벽 소나무 아래 고요히 앉아 있으면 소나무가 신께 들려 드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대화란 양쪽이 기꺼이 서로를 나누는 것이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는 시간 낭비이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모두 기뻐 뛰고 숲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시편 96,11-12) 모든 것이 하느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들의 일을 통해 하느님께 메아리로 응답하고 싶어 합니다. "선을 향하는 목적은 항상 초심자의 마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초심자는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초심자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전문가에게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로시 스즈키- 새벽 3시20분에 도착하여 4시12분 부터 오후 4시12분 까지 꼬박 12시간을 걸었다. 세석산장에서 1박하고 다시 3시간을 정상 탐방,그리고 중산리로 4시간을 비틀거리며 하산. 배낭이 가벼웠기에 배도 가벼웠고 산행이 힘들었지만 쉬웠다.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삶의 여정에 있는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자매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화는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이해 속에서 상대에게 말하고 듣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존경과 관심을 가지고 대화에 투신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증거 입니다."라고 영성이라는 것은 일요일 아침에 교회나 회당,사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있는 그곳에서 기쁘게 온전하게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영성생활이다.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되어 가는 존재는 없다. 다만 지금의 존재가 있을 뿐이다. 되어가는 존재 없이 되어 감,새로워지는 것 없는 '새로움'이 바로 하느님의 존재이다." 볕이 따갑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자유로워서 현상에 머물지 않고 어떤 발자취도 남기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이 자기가 왔던 본향에 온 것이기에 그 무엇도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도미니꼬회 리처드 우드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삶 속에서 햇살처럼 반사되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려면 우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그 반사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성경읽고 묵상을 해야 한다." 관상을 하는 사람은 내면의 사막을 통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곳을 통과하여 하느님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마치 글쓰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글쓰기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혼신의 열정을 쏟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글 쓰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터득하고 나면 온전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하느님을 잡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후에는 가만히 있어도 하느님의 현존이 햇살에 반사되는 은빛 종이처럼 빛날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은 마음에 달렸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깨닫는 지성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녕 무엇인가?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실재와는 다른 차원을 만난다는 의미이다. 궁극적 차원,하느님의 차원과 만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틱낫한- 선사 루벤 하비토는 말한다. "우리는 삶이 있는 그곳,신비와 경이가 넘치는 이곳에서 삶을 만날 수 있다." "종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 감동스러운 종소리가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고향이란 우리 모두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고향에 이르렀음을 깨닫기를!"
장터목에서 잤어야 했다. 이미 세석평전에서 힘을 다 소진하였기에 빤히 보고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숨쉬고 있는 공기도,하늘도 구름도 별도 저 해떠오름도 기막힌 아름다움이 아닌가- 데이비드 와그너는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그의 시 '숲'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숲이 숨을 내쉰다 들어라 숲이 응답하는 소리를 그대를 둘러싼 이곳을 내가 만들었나니 그대가 '여기'를 떠날 때는 '여기'에게 말하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대는 진정 길을 잃은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라 그대가 어디에 있는지 숲은 알고 있나니 숲이 그대를 찾게 가만히 있어라. 산은 말한다. 왔다간 흔적을 남기지 말고 올라왔던 그대로 내려가라고. 남에게 드러내고 자랑하고 유명해지려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지 알아. 우리 모두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본향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좋다. 넘 좋다.디바. 빛에 의해 땅이 그렇게 하늘에 열렸다. 땀방울 만큼이나 고생한 만큼이나 힘들게 얻은 아름다운 그림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죄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다. 죄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 감추어진 자신의 영적 실재에 대한 거부이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들은 어느 곳에서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는 굶주림에 직면하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단 한 번 당신이 내뿜는 향기에 취한 저는 이제 당신이 그리워 심장이 뛰나이다. 저는 당신의 향기를 맛보았고 이제 그 향기를 목말라 하나이다. 당신은 저를 어루 만져 주셨고 저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에 싸여 불타오르나이다. 아우구스티노-고백록-중에서
하느님은 안에 계시나 우리는 밖에 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고향에 계시는데 우리는 멀리 이국을 떠돌고 있다. 중산리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카1,78-79) 벗었다. 토마스 필립페가 말한 '현재 순간의 벌거벗음과 가난' 이다. "그대가 아침에 태양을 떠오르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네."
"그렇다면 스승님이 가르쳐 주시는 영적 수행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 깨어 있기 위함이라네."
눈물을 흘리며 내려왔다. 견딜만 하거든 아예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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