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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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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합니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아래는 교회가 정식 인가한 발현들입니다. 그러나 설사 인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
[과달루페] [파리] [라 살레트]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칼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nt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nacisco)에게 발현하였습니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습니다. * 외국 홈페이지 http://www.fatima.org/ [바뇌] [과달루페] [파리] [라살레트] [루르드] [파티마] [바뇌] [출처] 성바오로딸수도원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