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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 [사랑의 힘을 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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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회칙「교회와 성체」는 성찬의 신비를 희생제사의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에 대해 (게시자 ㅡ 이런 시도가 여기 게시판에서도 벌어졌었다) 성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재확인하면서 교황은 성체성사의 놀라운 신비가 교회 안에서 제대로 살아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이를 ‘어두운 그림자’라고 표현한다. 회칙의 제1장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인 성찬례가 해골산의 희생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제사”라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성사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성체 안에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하는 성체성사는 ‘신앙의 신비’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성체성사’에서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는 성찬의 희생 제사에 동참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강화되며 성체공경은 성찬의 희생 제사와 연결된다고 거듭강조한다. 성찬례 거행의 품위’에 관한 5장은 성찬례가 언제나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제6장 ‘“성체의 여인”이신 마리아의 학교에서’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아 성체성사의 깊은 신비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태중에 받아들임으로써 성체 신앙을 선취하셨고, 해골산에 이르기까지 평생 예수님 곁에서 성찬의 희생 제사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게시자 ㅡ 희생제사의 의미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치 남의 일인 양 없애버리지는 않았다. 마리아 자신도 아드님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의 희생제사에 온전히 참여하였다) / <이 내용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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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그리스도의 몸' = 성체
[ 그리스도 , 내 교회 , 성체성사 ]
예수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란 의미는 ["하느님의 아드님, 성자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들을 인간적으로 드러내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 주 하느님이시다. 그분께는 인간적 위격이란 없고 오직 신적 위격 뿐이시다.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복이 있다" 하고 일러주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교황 바오로 2세께서 언급하신 '어두운 그림자'는 '죽음의 힘'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이 '죽음의 힘'은 '죄의 힘'이다. 오늘도 여전히 이 '어두운 그림자'는 신자들에게 은연 중에 드리우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제사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는 멸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사람의 영혼들을 '죄의 권세'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 속박'이라는 사슬은 당시의 율법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사용했던 종살이의 굴레였다. 오늘 시대에도 '은총의 힘'에서 떨어진 영혼들은 인간의 죄를 무기로 삼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의 의미를 퇴색시키며 자신들의 거짓된 신념과 언어의 개념으로 '죄의 힘'을 그 당시 율법주의자들처럼 체계화 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에 의해 영혼들은 죄에서 해방되었다. 죄의 죽음이라는 세상은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심판받았는 것이다.
하지만 "속이는 영"들은 인간의 죄를 말하며 영혼들이 계속 '죄의 종살이'에서 풀어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미혹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게 하심으로써 죄에서 풀어 주신 바, 구원자의 은총의 힘을 영혼들이 알지 못하게 가리우고 십자가 피의 능력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복음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힘' 인 것이다. 죄의 힘은 죽음의 힘이다. (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 성경)
"속이는 영"들은 "죽음의 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베드로처럼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죄의 속임수(힘)'과 그에따른 '죽음의 힘"에 갇혀 있게 된다. 예수님을 단지 한 인간으로만 보고 자신에게 참된 생명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온전하게 그 영혼이 순결하지 못하면 '은총의 권세'에서 떨어져서 '죄의 죽음' 안에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 영혼이 '하늘나라의 열쇠'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체는 자기 안에 살아있지 못한다. 자기 안(내면)에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성체(예수님)께서는 점점 커지셔야 하는데 온갖 속이는 영(글, 언어, 개념)들이 자기 영혼을 짓눌러 성체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고 거부하게 만들고 만다. 거짓된 믿음을 찾아 거짓된 세상의 신념 속으로 차츰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죄가 사랑을 가로막아 악을 저지르게 되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즉, '죄의 힘'은 '사랑의 힘'(십자가 힘)을 가로막아 그 영혼이 마침내 악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죄의 힘을 전하는 영들은 죽음의 힘을 전하는 영들이다. [거짓말 (글) 속에는 악마가 활동하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사랑의 힘'을 부정하는 영혼들은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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