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내가 개종(?)을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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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4-08-25 ㅣ No.70373

중,고등에서 대학교까지 무려 10년을 기독교계통학교만 다녔으니 믿기 싫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때는 찬양대에서 테너파트를 소화하기도 했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예배당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에 적도 바로 아래인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옛 보르네오)섬에 있는 한국회사에 발령을 받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외롭기도 하고, 또한 제 이력서를 본 그곳 한국인 직원들이 내가 기독교학교를 나온 걸 알고서는 자꾸 자기들 예배모임에 참석해 달라고 권유하기에 다시 하나님을 찾아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3천여명의 인도네시아 현지인 직원을 통솔하기 위해 제재소, 합판공장 기술자를 포함하여 약 60여명의 한국인 직원이 있었으며 그 중에 20명이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주일이 오면 각자의 숙소를 돌아가며 순복음 조용기목사 테이프를 틀어놓고 예배를 보았으며 개중에는 취학 전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직원들도 있어서 그 집에서 예배를 보는 날은 푸짐하게 한국음식을 대접받는 날도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십일조를 내는 신자들도 있어 헌금한 돈이 제법 많이 모였을 때 였습니다.

"우리 이렇게 돈만 쌓아놓고 있으면 뭘 합니까? 이 돈으로 예배당을 하나 지어서 선교활동을 하든지 해야지.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듯이 해서는 될 일이아니잖소?" 내가 그랬더니

"누군 몰라서 안 하나요? 회교국가여서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교회신축허가를 안 내주는 걸 어쩌냐구요?" 하더군요.

"이 나라 헌법에 종교자유라고 하던데  뭘 그래요?. 정 안되면 한국인직원만 예배본다 하고 허가 받으면 돼지. 군수한테 가서 허가 받아 올 게요"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며칠 전에 우리 회사에서 그곳 남부 칼리만탄 주 정부에 태권도장을 하나 지어서 기부체납을 하면서 그 행정절차를 제가 맡아  처리하면서 남부 칼리만탄 주지사실과 부파티(군수)와 교분을 터 놓았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약 3개월에 걸쳐 줄다리기를 한 결과  건축허가를 어렵사리 받아 교회건물을 세웠습니다. 땅에서 약 1미터 높이에 철목이라고도 하는 울린나무 각목으로 바닥을 만들고(비가 잦고 전갈 등 독충이 많아 그렇게 해야 함) 그위에 라왕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150명이 함께 예배를 볼수있는 교회를 100% 나무로만 지었습니다.

그곳은 남위 1도, 적도를 기준으로 5도까지는무풍지대라 태풍도 없거든요.

헌당예배를 보던 날은 자카르타에서 한국인 목사를 초청해 와서 행사를 크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현지인 직원들이 찾아와서

"가까운 곳에 신부님이 한 분 와 계시는데 주일날 한국인 직원들 예배 후에 그곳에서 우리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사용허가를 해 달라"는 겁니다. 나는 속으로

'짜식들. 길 닦아놓으면 뭐가 지나 간다더니 별소릴 다 하네'하면서 "안된다"고 한마디로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일에만 한국인 20명이 예배를 볼 뿐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건물이어서 딴엔 양키들 흉내 낸다고 초콜릿도 사고 문방구류도 사서 주일학교를 만들기도 하고, 문화공연도 개최해 보았지만 교회건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알라신에 배신이라는 개념인가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았습니다.

 

한국인 직원들만 열심히 예배를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하면서는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았는데 내 차례가 되면 늘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글은 그냥 쓰는 편인데 기도하는 것은 원체 젬뱅이었거든요.

오죽하면 기도를 글로 써서 성경책 갈피에 끼워두었다가 "기도 합시다" 해서 모두가 눈을 감으면 그때 살짝 꺼내서 읽어 내려가는 편법을 썼겠습니까?

헌데 그 엉터리 기도를 하다보면 갑자기 아멘! 아멘!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느닷없이 아-버-지! 아버지! 하며 나를 놀라키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신앙이 깊으면 내 엉터리 기도에 저렇게 감동을 할까? 나는 왜 저렇게 안 될까?"하며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부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 큰 부정사건이 터졌습니다. 자체 재물조사에서 제재목재고가 큰 차이가 난 사고였습니다.  업무과장인 제 싸인이 있어야만 제재소 창고에서  제재목이 출고되는 것인데 인출증(Issue note)을 아무리 맞춰봐도 창고의 재고가 많이 모자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재소 창고에서 잘못을 했든지 업무과에서 잘못을 했든지 둘 중에 하나가 잘못된 것 같은데 제재소 창고담당과장은 바로 그 아버지! 아멘!을 잘하는 도사여서 제 생각에는 그 사람이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제 부하들이 잘못한 것으로 여기고

"제 부하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시말서를 쓰고 약 2개월치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변상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현지 경찰이 검문을 하다가 인출증 없이 제재목을 파는 상인들을 단속해서 취조를 한 결과, 세상에! 그 아멘도사가 자신이 데리고 살던 현지인여인(픔반투 라고 합니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몰래 회사창고에서 빼 낸 나무라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 저는 물론 원상복구가 되었지만 그는 그일로 귀국조치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 같은 저로서는 예배당이라 하면 정나미가 십리쯤 떨어져서 다시는 교회에 안나간다 하고 선언을 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몇달 후에 교인들이 떼거리로 밤에 내 숙소로 몰려 온 겁니다.

심방이라나 뭐라나 여튼 그런 거 있잖아요.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젠 용서하고 교회에 나오시오" 했지만 나는

"아직은 싫다"고 막무가내 였죠.

그때였습니다. 현지인 부하직원이 커다란 십자가를 메고 나를 찾아 왔습니다.

"이건 내가 뚜안 권에게 선물할려고 직접 내 손으로만든 것이다."하며 주더군요.

그 직원이 평소 손재주가 좋아서 목각을 하는 걸 자주 봤지만 그가 인도네시안 티크로 만든 목각 예수상은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더군요.

"뜨리마까시. 하지만 오늘은 손님이 와서 내일 인사할 게"하고 그를 돌려보내고 자랑스레 그걸 교인들이 앉아 있는 방에 가져와서 그들에게 보였더니 대뜸

"권과장님 그거 태워버리세요. 그건 우리 십자가가 아니라 천주교 십자가인데요" 하더라구요.

저는 사실 그때까지 천주교 십자가와 예배당 십자가가 다르다는 걸 몰랐습니다.

예배당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했기 때문에 빈 십자가라는 겁니다.

"하지만 제 딴엔 공들여서 만든 걸 어째 태웁니까? 뒀다가 누굴 주든지 해야지"하며

그것을 방 귀퉁이에 치워 두었습니다.

 

그날밤 그들이 돌아간 후에 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총무과장이 밤늦게 돌아오면서 우편행낭을 가져 왔기 때문에 서울에서 온 신문과 편지가 그날은 밤 늦게 배달되었습니다.

집에서 온 편지가 있기에 반갑게 뜯어 보았더니 제 집사람이 하얀 면사포를 쓴 사진이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겁니다.

"아니! 왠 면사포??" 하며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아내가 천주교영세를 했다는 겁니다.

 

소름이 오싹 하더라구요. 십자가 예수상과 아내의 영세 소식!

마치 무슨 계시같은..... 비약이 되더라구요.

 

이튼날 미사를 보게 해 달라던 현지인 직원을 제 스스로 찾아가서

"지금도 신부님을 모셔 올 수 있다면 언제든지 교회건물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더니 그들이 얼마나 좋아 하던지.... (그리고 그 십자가 예수상도 그들에게 주었는데 나중에 더 큰 예수상을 만든 후에 되돌려 받아 지금은 우리 집 안방에 모셔 두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던 그해 84년도에 저도 천주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갑자기 꺼내느냐 하면 며칠 전에 개신교 안수집사였던 제 친구 하나가 제 대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개종을 한 이유를 얘기해주고 3년을 뜸을 들이면서 활동을 하였더니 8개월 전 입교를 해서 교리를 마치고 지난 성모승천대축일에 우리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친구가 우리교회에 맛 들일 때 까지 대부노릇 할려면 앞으로 애는 먹겠지만 그래도 개종을 하는 이들이 하나 하나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지루한 얘기 끝까지 앍어주신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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