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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 사쿠라와 영적 사쿠라 [바오로적인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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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수 [tpwkdygks624] 쪽지 캡슐

2012-02-06 ㅣ No.71030



지난 과거의 시대에는 <육적 사쿠라>가 많았다.
일반 시민들을 향해서 일명 '사쿠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민주투사'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속으로는 '독재아류'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그리고 신앙의 여정에서는 <영적 사쿠라>가 많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 신자들을 향해서 일명 '사쿠라'라고 말할 수 없다.

겉으로는 '진리의 영'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속으로는 '더러운 영'인 것을 가리킨다.

'더러운 영'은 진리를 주장하는 것같아 보여도 아니다.
오직 매도와 기만의 헐뜯기에만 바쁜 그런 영을 지니고
진리 보다는 더러운 짓에만 혈안이 된 '속이는 영'을 말한다.

육적인 사쿠라가 육적 차원에서 '양의 탈을 쓴 이리 떼들이다'고 하면
영적인 사쿠라는 영적 차원에서 '양의 탈을 쓴 이리 떼들이다'고 할 것이다.

육적인 사쿠라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악한 권세'에 예속시키듯이
영적인 사쿠라도 사람들을 지배하고 '악한 권세'에 예속시킨다. 

더러운 영들의 속이는 매도와 기만의 영적인 독재체제 안에서
영적인 사쿠라에 대한 항쟁이 바로 '영혼의 민주화 투쟁' 이다.

창세기 때부터 드러난 뱀(사탄,악마,마귀)에 대한 영적인 투쟁은
영적인 사쿠라에 대한 영육의 분별과 영적인 식별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 이어 차후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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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과는 별도로 아래 참조>   바오로적인 회심에 관한 자게판 게시글입니다.

 

인간의 불과 인간의 회심 [영적 투쟁으로의 전환]
 
작성자   장이수(tpwkdygks624)  쪽지 번  호   184618
 
작성일   2012-02-05 오후 2:05:14 조회수   56 추천수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사도행전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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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한 운동권 학생이 있었다. 그는 순수한 운동권이었다. 어느날 인간을 위해서 던진 화염병이 인간에게 불이 붙었다. 다행히 문제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교 길을 지키고 있던 정보과 소속원들이 '화염병 사건'을 조사하려고 그를 연행해 갔다. 조사실의 현장은 상상 그대로이다. 각설하고 그들은 그에게 자신들과 협조 관계를 맺으면 '총학생회장'을 시켜 줄 수 있고 즉시 집으로도 보내 주겠다며 은밀한 밀약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구두로 체결하지 않았으며 응당한 댓가의 조치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개월이 지났는데 운동권 중에서 사쿠라로 지목되어 의심을 받았던 이가 차기 총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운동권이다고 모두 '정의의 편'이 아니고 '인간의 편'이 아닌 것이다.

그들 중에는 더러운 손을 잡고 겉으로는 정의롭게 나서지만 운동권 내부의 동향을 알려주는 '하수인'들에 불과한 자들이 더 많이 있었다. 특히, 정치적 노선을 따르는 운동권들이 더러운 손을 잡고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나서기도 하였다. 상호 정보제공으로 상호 이득을 노리는 그야말로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이었다.

이런 자들은 어떤 때는 조용히 동태를 파악하는 역할과 선두에 나서서 사진기 역할을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시하고 의심을 덜 받기위해 다른 운동권 학생 보다도 더욱 과격한 주장과 헐리우드 액션을 취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연결된 하수인은 '스파이 쉽게 말하면 사쿠라들'인데 참 운동권 보다도 더 운동권인 것처럼 보이려고 액션을 취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인간 안에는 이같은 인간들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서 특별히 어떤 액션을 나타내려고 한다 할 수 있다. 자신의 소신이 아니라 남을 고자질(정보제공) 하여 자신과 관련된 이득을 노리고자 하는 자들이 사회 안에서 얼마든지 '정의의 탈', 혹은 '인간의 탈'을 쓰고 존재해 있다 할 것이다.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불을 던졌다. 정말로 인간에게 불이 붙어 인간 불을 보면서 홀로 깨우친게 하나 있었다. 어찌하여 인간을 위한다 하면서 인간에게 불 붙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중적인 모순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 떼들이 오히려 더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그 또한 모순점인 것이다. 사실 선한 인간을 위한다 하면서 선한 인간을 박해하였다 하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 생각하면 바오로의 회심과도 같았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는 말씀을 인간으로 대입해 보면 "나는 네가 박해하는 인간이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하겠다. 그 당시에는 신앙인이 아니었고 종교는 아편과도 같다고 여기고 있었던 때였다. 지금 이념 교조주의자들에게서 그때와 같은 모습을 본다.

바오로는 '주님의 빛'을 보았지만 나는 '인간의 불'을 보고 인간과 신앙으로 돌아서서 회심하였다 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로부터 변화되었으며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앞으로 남아있는 일이 있다면 시대적 이리 떼들을 분별해 내는 일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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