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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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 수/ 길 잃은 양들을 위해 파견된 우리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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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7-11 ㅣ No.113169




가해 연중 14주 수, 마태 10,1-7(17.7.12)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6)




 


The Commissioning of the Twelves






 

길 잃은 양들을 위해 파견된 우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십니다(10,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공생과 파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오신 임마누엘이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첫째 목적도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무엇을 하기에 앞서 그분 곁에 머물러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하면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법과 사랑을 배웠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저 동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연민의 마음을 심장에 새기려고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시선을 그분의 눈길로 바꾸며, 그분의 참지 못하는 사랑의 몸짓을 세포에 새기려고 함께 한 것이지요.

예수님과의 공생, 그분의 집에 머무는 것이 제자들의 일차적인 소명입니다. 예수님과 공생함으로써 예수님을 품고 예수님 안에 머물며 그분과 깊은 친교를 이루지 못한 채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과의 친교 없이, 그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니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복음선포는 힘을 잃고, 더 이상 선포가 아닌 자기선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파견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며 이렇게 분부하십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10,6-7) 예수님께서는 파견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칠 권한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권한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인 모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권한입니다. 전인적 구원을 위한 것이지요. 그분께서는 사회적 종교적으로 소외받고 식민 통치의 억압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치유와 인간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이 막강한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그 권한이 예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사랑의 권한 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떠나 오직 주님의 일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주신 권한입니다.

파견 받은 사도들은 파견하신 주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에게 부여된 일은 개인사업이나 상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의 권한을 받고 파견된 사도들의 사랑의 소명을 이어가야 할 오늘의 사도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한국 땅에 파견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길 잃은 양들”, 곧 이 세상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힘을 잃고 아파하는 이들에게로 나를 파견하신 것이지요. 사랑이 추방당한 곳에 사랑을 회복하고, 생명이 억압받는 곳에 생명이신 하느님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인간이 도구로 전락하고 그 존엄성을 침해받는 곳에 그 고귀함을 회복하라고 파견된 우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고유함과 다양성을 존중하시며 부르시어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사랑의 사도로 파견하셨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믿음과 차가운 심장을 가진 우리 또한 그렇게 파견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길 잃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주님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도록 나를 파견하십니다. 돈과 권력이 팽배한 오늘의 세상 한복판으로 나를 파견하십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가장 보잘것없는 종”이라 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도”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보다 더 작아지는 가난과 보편적 형제애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며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했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았으면 합니다. 사도들처럼 나의 존재 이유가 바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음을 알고, 또한 이 시대의 “길 잃은 양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전존재를 바치며 투신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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