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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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2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오창일 요아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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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7-12 ㅣ No.113170




2017
07 12 () 가해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창세기 41,55-57; 42,5-7.17-24
마태오복음 10,1-7


오창일 요아킴 신부님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찬미 예수님!

어떤 공동체이건 그 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협력자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구원 사업을 계속해 나가시기 위해 협력자들을 뽑으시고 사도단을 구성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배반자 유다가 사도단에서 탈퇴한 이후에 사도들의 수는 열하나였지만, 성서는 사도들의 수를 언제나 열둘로 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야곱의 열두 아들의 후예들로 열두 지파를 형성하였듯이 새로운 계약의 시대인 신약은 열두 사도를 통해 영적인 백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학식이나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나 상층 계급에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별로 뛰어난 점이 없는 사람들을 내세워 맡기셨습니다. 그 뜻을 알기란 힘들고 다만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다른 곳에서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신비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철부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볼품없는 사람들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치는 치유의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제자로 뽑으신 사람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이 무엇이냐 하는 것 보다는 그들이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 장차 무엇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보고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은 우리에게 인간의 지혜와 능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겸손되이 하느님을 위해서 쓰여질 때 큰 결실을 맺을 수 있고 하느님은 그런 사람들을 택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길 잃은 양들을 한 울타리로 다시 불러 모으는 데는 목동의 피리와 지팡이만 있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혜나 능력은 사실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 있어서는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복음 전파자들은 다 하느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어려움과 난관은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에 얽힌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 프란치스꼬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전교하기 위해 시내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큰 길과 골목길을 아무 말없이 한 나절이나 돌아다닌 후 그냥 돌아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정색을 하며 물었습니다. "스승님, 전교는 언제 합니까?" 이렇게 묻는 말에 성인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걸어 다니며 전교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얼굴을 보았고 우리 행동을 보지 않았습니까? 만일 우리가 걸어 다니는 것이 전교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하며 다녀도 전교가 될 턱이 없을 것입니다."

'
현대에는 지식을 파는 선생은 많아도 인격을 전수하는 스승이 적다'고 우려합니다. 사실 우리 시대에는 가르치는 사람은 많아도 증거자는 극히 적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으려 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가요? 불신의 골은 커지고 점점 깊게 패어 있습니다. '불신의 시대'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예수님도 고향을 방문하셨을 때 고향 사람 사람들로부터 지독한 불신에 부딪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마르 13,2-6 참조).

그러나 신앙을 가진 우리가 하느님을 마음 속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자라날 것이고, 하느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온전한 선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만큼 더 커질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성숙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느님을 닮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보다 앞서 가신 성인들의 삶은 전혀 실패가 없거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삶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고 닮고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노력에 항구하도록 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나하고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나는 힘들어도 내색을 하지 않는데 누구는 작은 일에도 불평하며 빼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나 독선적이어서 도저히 신앙인이라고 바라볼 수 없는, 그래서 함께 하기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비록 그들로 인해 힘들더라도 그들도 하느님께서 뽑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그가 하느님 안에서 회개하기를 바라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도 주님께서 뽑아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 그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기도로 말미암아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각자의 능력을 은혜롭게 사용하는 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오창일 요아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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