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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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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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9-21 ㅣ No.114869

 

2017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학창시절에

좋은 성적을 받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좋은 성적을 맞는 학생들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스로 공부에 집중합니다.

모든 이가 좋은 성적 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에 집중하거나

전념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활기도 없고 금세 피곤함과

싫증을 느낍니다.

열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합니다.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

열정이 보이면 강의를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이 보이지 않으면

저 역시 힘이 쫙 빠져서

마지못해 강의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했던 강의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곳이

군인들을 대상으로 할 때였습니다.

그것도 훈련으로 피곤함이 가득한

신병 교육대에서의 강의였지요.

강단에 서서 인사를 하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서

잠 잘 준비를 하는 군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강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듣지 않겠다는

표시를 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저 역시 힘이 쫙 빠졌습니다.
군인들의 욕구가 저의 강의보다

 앞서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 ‘관심 없어.’라는

욕구를 내세우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개그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그프로그램을

온전히 본 적이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보다가 늘 잠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이러한 방송을 시간 내어

본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관심도 또 열정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를 생각해봅니다.

저절로 주님의 뜻에 맞게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일까요?

우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욕구를 낮추고

대신 주님께 대한 열정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마태오 사도는 잘 알려진 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는 같은

동포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지배하던

마에 바치기에 매국노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윤택했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태오를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마태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 주님을 따릅니다.

 마태오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혹시 세상의 것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을 세상의 것

다음 자리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전혀 아니었음을
인정하면 검은 수렁에
빠져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상처와 흉터를
마주하면서 도리어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파울로 코엘료)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스트레스를 줄이는 주문."
1936년에 ‘스트레스 학설’을
제창하면서 스트레스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한스 셀리에
(Hans Selye, 1907~1982)’
가 고별 강연을 할 때였습니다.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스트레스의
연구의 대가이시니,
 저희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한스 셀리에는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감사.”
감사하는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 없이 살아갑니다.
반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십시오.
세상에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습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 중에는
남에 대한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늘 좋은
이야기만 나옵니다.
분명히 부정적인 모습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꼬집어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시던 지요.
이 신부님의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삶,
긍정적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웃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으십니까?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많이 웃으세요. 
어느 본당의 모자상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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