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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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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9-26 ㅣ No.114994

 

2017년 9월 26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즈 6,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복음 루카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아마 이 시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오르지

못할 까닭이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시대 문인이며 서예가인

 양사언의 시조입니다.

어렵고 힘든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지요.
학창시절에 이 시조를

 배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태산이 얼마나 높기에

 이렇게 시조에도 등장할까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습니다.

중국 산둥성 중부 타이산 산맥의

주봉인 태산은 높이가

1,532m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보다 높은 우리나라의 산은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금강산, 덕유산 등으로 곧 태산이

아주 높아서 못 오를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속담 중에서도 ‘갈수록 태산’

이라면서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산으로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별 것 아닌 것입니다.

바로 지례짐작

때문이 아닐까요?
지례짐작으로 섣부르게

판단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쉽게 포기하고

 또 좌절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남에 대한 부러움 역시

이러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부러움을 표시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결혼하지

않아서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없고,

사고치는 아이도 없고,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저 역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결혼하셔서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그래도 사랑스러운

마누라도 있고,

나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도 있으니까요?

또 함께 하니

얼마나 기쁩니까?”
다른 이에 대해서 지례짐작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누가 말해주지요.

사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루카 11,27)

이라고 말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례짐작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 11,28)

라고 분명히 하시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례짐작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성실하고 기쁘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나리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합시다."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돈을 가장 원하면 어떻습니까?

그 돈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높은 지위를 가장 원하면

그 지위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누군가 함께 하기를 원했는데

 함께 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이 클수록 실망도 크고,

희망이 클수록 절망도 크다.’
자신이 원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착취하고 궁지에

몰아넣게 됩니다.

결국 무시무시한 적들은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조금 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온유하고 겸손해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 온유하고 겸손해지 위해

언제나 시간을 내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해야

주님께 속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저절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교만한 경우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한 없이 낮출 수 있는 것,

그래서 주님과 언제나

함께 하는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으로

고통을 향해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과 함께 함으로써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그래서 우리에게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홍창만 루카 신부님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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