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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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우리 신앙의 어머님 /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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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7-09-26 ㅣ No.11499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왜 살며 지금의 삶은? 가끔은 이런 질문을 떫게 여기면서 그 답변을 피하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답은 있어야 삶이 분명해질 게다. 그 답변 가운데 하나는 분명 가족이 걸린다.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 때문에 산단다. 그렇다. 가족이라는 인연만큼 소중한 건 이 세상에는 없다. 그들과 기쁨으로 사는 게 삶에서는 정말 중요할 게다. 그렇지 못하면 주님 개입을 청해야만 하리라. 그 기쁨은 주님 은총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 참조)’ 얼핏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 가족들을 멀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에 많은 이가 의아하게 생각할 게다. 그러나 이의 초점은 그분께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멀리하셨다는 것이 아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을 새로운 가족과 형제로 삼으셨다는 데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축제가 끝나고 사흘이 되어서야 당신을 찾으신 부모님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라며 부모님을 쾌나 섭섭히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이는 하느님 뜻을 따르려면 혈육의 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이미 소시 적부터 예고하신 거다. 지금 예수님은 그때 그 모습이시다. 아들이 보고 싶어 왔으나 그분께서는 만나려 하지 않고,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다.’라고 냉정히 말씀하신다. 이런 예수님께 성모님은 그 옛날 그 섭섭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셨는지도 모를게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작은 가족 대신 한없이 큰 가족을 품으셨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가족을 떠나는 것은 크고 보편적 사랑, 더 많은 이를 형제로 맞아들이기 위해서일 게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외아들을 잃는 그 자리에서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십자가에서의 예수님도 성모님을 제자에게 맡겨 드리면서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가 되는 이는 누구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라고 단언하신다. 육적인 어머니와 형제들보다 영적인 가족 관계를 바라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먼저 떠나는 불효자가 아닌, 성모님을 혈육을 넘는 진정한 신앙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 혈육에만 매달려서 그 큰 하느님 뜻을 모르시면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육정에 매인 게 아닌 하느님과의 뜻을 이루려는 관계임을 분명히 보이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해타산에만 젖는 안타까운 가족관계를 주님 말씀으로 다져진 찐한 혈육의 참 가족으로 거듭나야만 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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