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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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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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11-21 ㅣ No.116314

성소후원회 회원 분들과 의정부 한마음 청소년 수련장에서 피정을 하였습니다. 하루를 마치면서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을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신앙 때문에, 신앙 안에서 고통과 슬픔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신앙의 어머니들을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의 이야기를 묵상하였습니다. 남편 황사영은 순교하였고, 정난주 마리아는 2살 된 아들과 제주도로 유배를 갔습니다. 정난주 마리아는 관비가 되어서 유배를 갔기 때문에 2살 아들 황경한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제주도 최초의 신앙인이었던 정난주 마리아는 그 모든 슬픔을 가슴에 담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의 어머니 황 안나의 이야기를 묵상하였습니다. 함께 유학을 갔던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는 사제가 되어서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아들 최방제 프란치스코는 먼 타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 다른 두 아들까지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던 황 안나는 오직 충실한 신앙으로 모든 것을 참아냈다고 합니다.

안중근 토마스의 어머니 조성녀 마리아의 이야기를 묵상하였습니다. 조성녀 마리아는 아들 안중근 토마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으니 즉 죽는 것이 영광이다.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천주님께 기원할 따름이다.” 조성녀 마리아 역시 신앙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을 묵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들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어머니들의 슬픔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다섯 분의 미수습자 가족들도 이젠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묻고 고인들을 위한 장례를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유족들의 마음은 깊은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성모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입니다. 단지 그 모습만으로도 지극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묵주기도를 마치면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추석부터 몸이 많이 아프셨습니다. 한 평생 가족들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방황하는 아들 때문에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보내셨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진 아들 때문에 늘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수도자와 성직자의 길을 걷는 자식들을 위해서 매사에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셨고, 기도 중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수호천사입니다. 그분들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제와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성모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성모님께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선택하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신발, , , 전자제품, 악기, 운동기구, 친구, 가족, 이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선택해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하면 애착이 있을 수 있고, 욕심이 생길 수 있고, 상실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선택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제 곁을 떠난다고 해도 속이 상하거나, 아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하느님의 것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때 부유한 것보다 가난한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것 보다 아픈 것도 은총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벽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외롭지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지구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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