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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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5 토/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의 호흡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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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11-25 ㅣ No.116397




연중 33주 토, 루카 20,27-40(17.11.25)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 20,38)





The question about the resurrection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의 호흡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사두가이 사이에 있었던 부활 논쟁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두가이들은 이스라엘의 순수 종교와 동떨어지게 살았으며 외적 신심에는 충실했지만 조상들의 전통은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들과 달리 부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모세 율법을 근거로(신명 25,5-10), 어떤 사람이 아내를 남기고 죽어 그의 형제들이 차례로 형수를 맞아 대를 이으려다가 모두 죽으면, 부활 때에 그녀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지 예수께 묻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율법을 근거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십니다(20,35-36).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20,35-38)

부활이란 육신의 소생이나 영혼의 상태 변화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생명과 영원성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아계신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여 산다면,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은 육체와 시간,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묶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일상의 순간마다 영원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도록 깨어있어야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영원하신 하느님을 만나려면 세상의 헛된 것들에 죽어야 합니다. 부활은 신비스런 환상이나 죽음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의와 생태적 공생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지금 여기서 드러나며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사두가이처럼 부활, 곧 하느님의 영원성을 부인한다면 스스로를 물리적 시간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매이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 지상생활에서 모든 만족을 찾으려 하고 물질 소유와 건강, 쾌락, 세속 명예에 집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현세의 우상과 일시적 만족에 가둬버리는 그런 인생이야말로 비참하다고 아니 할 수 없겠지요.

우리 모두 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굳게 믿어야겠습니다. 부활신앙 안에서 순간 안에서 영원성을 발견하며,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삶의 의미를 읽어내도록 해야겠지요. 이는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구체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고, 절망스런 현실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어떠한 시련이나 고통도 기쁜 마음으로 견디어 내며 기쁘게 살아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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