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19)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1-19 ㅣ No.117681

 

2018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사무 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

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

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

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복음 마르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

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얼마 전, 우연히 두 분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점점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런 말을 자주 하더군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이 말을 들으면서 왜 목소리가

커지고 싸우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목소리를 더욱 더

키울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

안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화도 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자신도 말했듯이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대우받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별 것 없습니다.

그저 눈을 맞추면서 따뜻한

눈빛을 건네주는 것,

말 한 마디에도 반응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가 존중받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상대방 역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앞에 있는 사람,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판단하지도 않으십니다.

이를 오늘 열 두 명의 제자를

뽑으시는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당시에 능력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받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 중에서 제자를

뽑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부족함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뽑혀 제자가 됩니다.

그 부족함이 결정적으로

드러났던 부분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람도 있었고,

수석제자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붙잡히자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신도

모두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첫 번째

말씀은 ‘평화’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정이 제자들이

 세상 끝까지 주님의 기

쁜 소식을 전달하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인정해주시고 지지해주시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세상 안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거룩함은 특별한 것을

행함을 뜻하지 않고,

사랑과 신앙으로 평범한 것을

행함을 뜻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십자가를 바라보며 겸손을 묵상합니다.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야 할 때."

18년째 새벽마다

묵상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내용이 모두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바로 나쁜 말은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이니 어떻게

나쁜 말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들을 100%

실천하면서 사는가 라고 묻는다면

조그만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꼭 그렇게 살지는 못해요.

저도 인간이거든요. 그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죠.’
글이 행동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를 종종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선물도 많이 보내주시고,

우연히 만나게 되면 사진을 좀

같이 찍어달라는 부탁도 하십니다.

제 책을 가지고 오셔서 사인해

달라는 분도 꽤 됩니다.

제 자신을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부족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인정받으면

기분도 좋고 힘을 쑥쑥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 자신이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행복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고개를 숙이고

주님께 겸손되이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이렇게 부족한데도

 저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자신의 능력과

재주란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늘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당신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17년 묵상 글이 제본되어서

책장에 이렇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432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