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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창세1: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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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4-25 ㅣ No.119994

 

 

 

-공동번역 성서 사용-



 빛이 있으라
  (창세1:1 - 5)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2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4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5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시간이 창조되기 전인 영원 속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시고 ‘레시트!’ ‘시간을 창조’하셨고 그 시간과 함께 물질이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물질의 존재 방식이며 그 시간이 사라지게 될 때 물질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시간이 사라지게 될 때 사람의 영혼은 영원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의 개념을 도출 해 낼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물질인 육신과 물질세계를 떠나는 그날, 다른 말로 ‘죽는 날’ 그 사람은 시 간 속에서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영원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매일 매일을 영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매일 매일을 영원을 준비하며 사는 삶을 에녹의 삶을 예로 들어서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 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바로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들이며 앞으로 천국을 살 사람들인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째 날‘에 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의 말씀 ‘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라는 이 구절을 가지고 학자들 간에 많은 이견들이 있습니다.
 이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는 창조의 첫째 날 첫 事役을 설명한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 면 1절에 나오는 ‘天地’는 천지만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들과 땅’ 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하늘이 ‘하늘들’ ‘솨마임 ‘이라고 묘사가 된 것은 성경이 하늘을 셋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기권의 하늘, 그리고 그 대기권 밖의 무 한히 뻗어있는 것 같은 우주로서의 하늘, 그리고 하느님께서 거하시며 앞으로 그 분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하늘 이렇게 셋으로 나누 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바오로가 하느님이 계신 곳을 보고 왔을 때 그 곳을 삼층 천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라는 공간 과 지구가 그 첫째날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첫째 날에 하늘들과 땅, 즉 지구가 만들어졌고 거기에 빛이 보태진 것입니다.
(욥기26:7)북녘에 있는 당신의 거처를 공허(토후, 빈 것, 무(無)) 위에 세우시고 땅덩어리를 허공에 달아(타라, 매달다) 놓으신 이,  이 말은 하느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 홀로 걸어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창조된 지구는 처음에는 무질서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이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창조된 무질서한 천지를 시간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시는 것이 엿새 동안의 창조인 것입니다. 여기서 ‘깊은‘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테홈‘은 바다를 뜻합니다.
(창세7:11)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십 칠일, 바로 그 날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하늘은 구멍이 뚫렸다.  여기도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 ’테홈‘이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그러니까 첫째 날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지구는 혼돈과 공허와 깊은 바다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성령이 계십니다.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구절이 2절 말미에 붙어 있지요? 여기서 ‘휘돌다‘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라하프‘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품다‘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그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뿐인 세상을 질서와 풍요와 빛의 세상으로 창조해 내시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품어 안고 계신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라는 것은 태초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성부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 내신 삼위 하느님의 작품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모습은 創世前에 있었던 하느님의 계획을 받들어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택한 자들 속에서 이루고 계신 오늘날의 새 창조를  힌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창세기의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를 타락한 죄인들의 세상에 그대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장 23 '땅을 내려다보니 끝없이 거칠고 하늘을 쳐다보니 깜깜합니다.
여기 보시면 타락하고 추악한 세상을 끝없이 거칠고 깜깜하다’이라하지요?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속해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떻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죄인들이 하느님의 은혜로 빛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가? ‘ 바로 그 이야기가 창조를 시작으로 가시적으로 역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歷史 속에서 하느님의 구속사와 관련된 것들만이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에 관해 몇 가지 엇갈리는 학설을 내 놓고 있습니다.
①먼저 gap theory 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격 설’이라고도 부르지요. 이 학설은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1장 1절 과 2절 사이에 오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는 설입니다. 즉 하느님은 1절에서 천사를 포함하여 세상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하셨는데 사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포함한 세상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고 그로 인해 2절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땅 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지구의 상태가 지속되던 중에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땅을 새롭게 하신 것이 3절  이후에 언급되고 있는 창조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gab theory에 의하면 창세기 1장 3절에서 31절까지의 창조는 첫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절의 첫 창조와 3절부터 나오는 새로운 창조 사이 에 수십 억 년에서 수백 억 년의 gap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나이가 왜 이렇게 많은지가 설명이 되지요. 정말 그럴까요?  
②두 번째로 일일 간격 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literal day with gap theory)
이 이론은 하느님께서 첫째 날의 창조를 24시간 내에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는 수억 년 정도를 쉬시다가 다음에 둘째 날 창조를 하시 고 또 수억 년을 쉬시다가 또 셋째 날 창조를 하시는 식으로  총 46억 년에 걸쳐 창조를 하셨다는 설입니다. 이 설에 의하면 아담 이전에 이미 인류가 있었고 그들이 사탄과 함께 하느님께 범죄 했기 때문에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여 죽이셨다고 합니다.  이 설은 19세기 초에 스코틀랜드의 토마스 찰머스에 의해 제기  되었습니다. 이 이론도 당시 지질학의 발달로 인해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으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변증하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이론인 것입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추측이나 상상으로  변증하다보면 이런 억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③세 번째로 점진적 창조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6일 6시대 설’이라고도 불립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날’ ‘하루’ ‘욤’을 문자 적인 하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 그러니까 지질학적 시대와 대충 일치하는 기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중생대, 고생대, 쥬라기, 백악기 같은 이런 지질학적 기간이 성경에 ‘하루’  ‘욤’ 이라고 기록이 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이론도 조금 억지처럼 보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루를 그냥 ‘24시간’으로 봅니다. 그리고 날들 사이에 gap이 있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엿새 만에 천지 만물은 창조 된 것이고 하느님은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의 나이도 6,000년에서 길어야 12,000년 정도로 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우주의 나이를 그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존 칼빈 은 단호하게 이 우주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4,000년 전 사람이니까 거기서부터 거꾸로 족보를 따져 올라가 보면 그 정도의 나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화석들을 담고 있는 지층들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지층과 지층이 품고 있는 화석들을 보면 마치 진화론을 입증하는 것처럼 가볍고 작고 단순한 것이 아래에 있고 크고 복잡한 것들이 위쪽으로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창조론을 입증해 주는 것들입니다.  
원래 화석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형성되지 않습니다. 지금 죽어서 땅에 묻힌 짐승들이 모두 화석이 됩니까?  대부분 썩어 없어집니다. 화석이라는 것은 생명체가 갑작스럽게 흙 속에 묻히고 또 이 흙이 급속도로 압력을 받아서 석화(石化)될 때에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지층 중에는 화석을 품고 있는 고대 지층들과 같은 지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발견되는 화석들과 화석을 품고 있는 지층들은 어떤 지각의  대 변동에 의해 생겨 난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창세기 6장의 노아의 대 홍수인 것입니다. 하늘의 물들이 땅으로 모두 쏟아지고 땅의 물들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과학자들은 아득히 먼 옛날에는 땅이 지금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가 아니라 거대한 한 덩어리의 땅이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나이 문제도 그렇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이나 천문학적 자료를 근거로 계산해 본 지구의 나이는 50억 년에서 150억 년에 이릅니다. 이건 어떻게 해결을 하지요? 여러분 아담이 아기로 태어났습니까? 성인으로 태어났습니까? 성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혼자있는것(獨處)이 좋지 못하다고 금방 結婚도 시켜 주신 것 아닙니까? 
계속해서  3절을 보시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아마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르’ 라는 단어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만 해도 ‘아마르’라는 말이 9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는’아마르‘라는 단어를 통해서 천지가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렇다고 창세기에 정확하게 ’천지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라는 말이 한군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지가 말씀으로 창조가 된 것을 어떻게 아는가?  신약에서 창세기 1장 의  ‘아마르’라는 단어가 ‘하느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밝혀 줍니다.
(히브11:3) 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보세요. 천지는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히 밖으로 뱉어지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1:1‐3)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골로1:15‐16)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히브1:2.10)  2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0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주님, 한 처음 땅을 만드신 이도 주님이시요 하늘을 손수 만드신 이도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천지는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천지는 예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막연하게는 알고 있지만 잘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이다’ 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어떤 나라 말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빛이 있으라’ 이렇게 한국말로 하셨을까요? 아니면 ‘let there be light' 이렇게 영어로 하셨을까요? 아니면 히브리말로 ’오르 하야‘그러셨을까요? 아니면 그리스어로 ’프오스 람파이‘하셨을까요?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올라가 보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입에서 나오나요?  하느님 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질문은 참 멍청한 질문이지요.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체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 분의 입이 ’있다 없다’를 거론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우선 우문(愚問)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국어사전의 개념으로만 이해를 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들을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에 연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그 것이 소리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그 말을 내 뱉은 존재의 속에 들어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내 뱉어진 말이 ‘빛이 있으라’라는 말처럼 명령형으로 나왔을 때, 그 말은 그 명령을 말로 내 뱉은 존재  속에서는 ‘계획 과 의지’로 먼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밖으로 내 뱉어진 어떠한 언어가 아니라면 그 것은 언어로 나오기 전의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는 곧 실행이요, 성취이며 완성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어떤 것을 계획하셨다는 것 자체가 그것은 반드시 실현되고 성취되고 완성될 일이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는 ‘그 자체가 힘과 능력을 갖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지전능한 존재는 헛된 목적을 가질 수도 없고, 헛된 의지를 품을 수도 없으며 자신이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을 이루실  충분한 힘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말씀‘은 그 자체가 ’힘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이사55:10‐11) 10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 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 오지는 않는다.'


 (히브4:12)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 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에레23:29) 29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순다. 똑똑히 들어라. 


보시는 바와 같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치 힘이 있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런데 열역학 제1의 법칙에서 에너지, 힘은 곧 물질 이라는 원리지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물질은 에너지로 화해도 그 형태가 변할 뿐 동일한 그 물질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감소하거나 보태질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은 곧 에너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에 어떤 창조적인 힘을 가하면 그 것이  그 에너지의 양만큼의 물질이 될 수 있다 는 논리가 성립되지요
그 것을 지금 우리가 공부한 원리에 적용을 해 보세요. 하느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힘입니다. 다른 말로 에너지입니다.  열역학 제 1법칙에 의해서 물질이 무에서 유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에너지, 힘, 능력이 하느님의 말씀 속 에 있었고 그 에너지가 형태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천지 창조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하는가?
성경은 하느님을 ‘성부  성자  성령‘이렇게 삼위(三位)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느님을  'one substance three persons''본질은 하나이신데 본체가 셋인 분’ 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1:3)  3 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기서 ‘본질‘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 ’휘포스타시스‘는 ’subsistence''실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본질’ ‘휘포스타시스’의 ‘형상’ ‘카락테르’ ‘인(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본질’과는 ‘다른 본질’ ‘휘포스타시스’를 갖고 계신 분이지만 ‘본질’이 같으신 분 ‘consubstantial’(라틴어로 는 호모우시오스)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다른 ‘본질’를 갖고 계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부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에 정확하게 동의하시며 그 것을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성자께서 실행하신 그 것을 ‘적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5:17) 17 그러나 예수깨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보세요. 예수님은 세상의 창조 때부터 자신이 성부와 더불어 끊임없이 일해 오셨음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중보자로 일을 하셨습니다.

천지 창조 때는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를 가시화 시켜 천지 만물을 창조해 내셨고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사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 려오셔서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2,000여년 전 성자 예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를 실행에 옮기신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나타나셨던 하느님의 使者,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나셨던 하느님의 使者, 야곱과 씨름을 한 하느님의 使者, 아브라함이 만난 하느님의 使者’ 그 천사들을 보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뭡니까? ‘내가 야훼 하느님을 뵈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즈카리아 2장에 보면 ‘측량 줄을 잡은 자에 대한 환시‘ 가 나옵니다. 3절에서 천사가 천사를 보내는데 12절에 보면 그 보내는 천사를 ’만군의 야훼‘ 라고 선포를 합니다. 아울러 이사야서에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군의 야훼 라고도 부릅니다.  


(이사25:9) 9 그 날, 이렇게들 말하리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 하느님이시다. 이분이 야훼시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던 야훼시다. 기뻐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종합해 보면 성부 하느님과 다른 본질를 지니셨지만 한 본질 속에 계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기 前인 창조 때나 구약 시대 때도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을 실행에 옮기시면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仲保者의 역할을 하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바오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끈 분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이 성자 예수님을 보았다’ 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에서는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을 참았다 고 합니다. 이렇게 성자 예수님은 창조 때에도, 구약 시대 때도, 하느님의 말씀의 실행자가 되셔서 중보자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0여년 전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創世前에 계획된 새 창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창세전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셨던 그 계획대로 완벽하게 살아내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 창조를 시작하신 그 복음을 창세기의 첫 창조와 비교해 보세요.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셔서 하느님의 새 창조를 이루신 것처럼 첫 창조 때도 창세전에 있었던 하느님의 작정과 예정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가 힘과 능력이 되어 실행되어지는 것이 말씀이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지금도 우리 안에 성령으로 존재하시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날 기록된 말씀으로 가시적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요한5:39) 39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서 운동력이 있으며, 그 자체가 힘이며 능력인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 창조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듯이 새 창조도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어지고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 여러분의 거룩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따라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요  이것이 바로 ‘아마르’가 담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창세기의 첫 번째 날 창조된 것이 빛이지요?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천지 창조 위에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은 태양 빛이 아닌 어떤 다른 빛입니다. 그 빛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신약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신약에서 하느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죄인들을 질서와 풍요와 빛으로 이끄시기 위해 첫 번째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느님 말씀의 실행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지요. 요한복음의 첫째 날에  ‘빛이 오셨다’라고 하지요? 그 요한복음 1장 2장의 일곱 날에 관한 내용은 창세기의 일곱 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요한1:9‐10)9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창세기 첫째 날의 빛은 태양을 발광체로 하지 않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그 빛,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질서를 세우시고 풍성함으로 채우시며 어두움을 몰아내실, 無에서 有로 생명을 창조해 내실 그 하느님의  생명력이 바로 창세기 첫째 날의 빛입니다. 다른 말로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제 그 분의 능력과 지혜로, 다른 말로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시겠다’ 라고 하는 하느님의 포효(咆哮)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두움과 구별되는 어떤 빛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낮과 밤도 생겼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피조물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하느님의 생명력은 다른 말로 ‘바라크(福)’혹은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부르지요
 하느님의 천지 창조는 하느님의 영광에서부터 출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 창조의 첫째 날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 찬, 무질서한 천지에 ‘빛’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그 하느님의 생명력, 하느님의 영광이 만물을 존재케 하는 것이고 만물을 유지하는 힘인 것입니다. 그 래서 첫째날 ‘빛’이 있는 것으로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그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새 창조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영광의 빛이라고도 부릅니다.


(히브1:3)3 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고린후4:6) 6 '어둠에서 빛이 비쳐 오너라' 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첫째 날은 그 창조된 빛으로 말미암아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질서가 잡히고 생명의 움이 트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反逆하여 질서를 깨뜨리고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만들어 버린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질서로 하늘의 풍요로 광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빛은 지금의 태양 빛과 같은 그런 종류의 빛은 아니었지만 분명 하느님의 영광 이 드러나기 시작한 빛이었고, 어둠을 밝히고 구별해 내는 광명 한 것이었고, 아직 태양이 없었던 창세기의 셋째 날에 만들어진 풀과 씨 맺는 채소와 果木을 자라게 하는 숨어있는 빛, 보이지 않는 빛, 하느님의 생명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이 생기기 전에 하루를 밤과 낮으로 구별 짓는 빛이었습니다.  
원래 밤과 낮을 가르는 것도 태양이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果木을 자라게 하는 것도 태양인데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빛’이 창조 되고 그 빛에 의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과목이 자라고 밤과 낮이 갈리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태양이 밤낮을 가르고 식물이 자라는데 필연적 원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력인 ‘하느님의 영광의 빛’ 이 우주의 운행 원리이시며 이 땅의 모든 생명의 원인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는 ‘빛’ 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새 창조를 상징하고 있는 구약 성경에 啓示된 구속사의 첫 사건도 항상 빛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막에 들어서면 첫 번째 보이는 것이  번제단인데  번제단은 죄인들의 속죄를  위해 무죄한 어린양이 대신 죽임을 당하는 곳입니다. 바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새 창조는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의 첫 시작은  過越節 사건이지요? 모든 죄인들의 장자가 죽어 나가는 과월절에 어린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공로 없이 살아나는 날입니다. 역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죄인들의 出埃及이 시작이 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창조, 구원의 시작은 하느님의 영광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첫째 날에 빛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빛을 보고 그 빛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이들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돌아온 것이며 온통 공허뿐인 이 세상 속에서 하늘의 풍요를 맛보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질서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처럼 하느님께 반역하고 그 분의 말씀을 경솔히 여기며 살 것입니까? 우린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에 의해 또 다른 ‘세상의 빛’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어두움을 폭로하고  밤과 낮을 갈라버리는 거룩한 빛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인내하고 많이 사랑하세요.  원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피 흘리기까지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빛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오경의 최초의 수신자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의 구원은 어느날 즉흥적으로,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창세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며 창조도 바로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 일어 났던 것이고 너희들을 있게 하기 위해 아담이 있었고 아벨이 있었고 셋이 있었고 노아가 있었고 셈이 있었고 아브라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너희의 구원을 위한 약속을 하셨고 이렇게 그 약속을 지켜내신 것이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건 바로 오늘날 출애굽 해서 광야를 살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신앙인’들에게 외치는 소리인 것입니다.

아멘.

 

 

공부한것을 올려봅니다.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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