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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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조강지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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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19-01-19 ㅣ No.126899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은 고생을 하며 동고동락한 처를 가리길 때 쓰는 말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아녀자에 대해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해서 아내를 집안에서 내칠 수 있는 게 일곱 가지가 있어도 삼불거(三不去)에 해당하면 아내를 내치지 못하도록 유교의 조선사회에서 연약한 여인을 국법으로 보호해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삼불거 중 하나가 아내와 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렀을 때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 누구나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천국을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살면서 살았던 모든 걸 하느님 대전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조선시대에 아녀자가 칠거지악에 해당되어 한 집안에서 내쫒기는 상황이 된다 할지라도 삼불거에 해당하면 그 가문의 며느리 신분을 계속 유지하게 해 주는 것처럼, 저희도 만약 심판 때 천국에 가지 못하는 허물이 있어 하느님 자녀로서 천국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 하느님께 눈물로 호소할 수 있는 마치 삼불거와 같은 비장의 히든카드가 무엇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모른다고 하면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성부 하느님께 저희를 모른다고 하시겠다는 말씀을 보면, 하늘나라에서도 분명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께 저희 사정을 변호해주시는 변호인 역할을 해주실 거라 생각됩니다. 성경에서는 저희를 영적으로 예수님의 신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여정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 생활을 저버리지 않고 예수님과 같이 고난의 십자가를 같이 지며 예수님의 신부로서 조강지처가 되어 살아간다면, 성자 하느님인 예수님께서 친히 저희 변호인이 되시어 성부 하느님께 저희 처지를 이렇게 아뢰어 주시지 않을까요?

 

성부 하느님, 이 사람은 세상에서 살 때 말할 수 없는 숱한 고난 속에서도 저를 바라보며 저와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와 고난을 함께한 이 사람을 어여삐 여기시여 한없는 자비의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고 성부 하느님께 눈물로 간청하실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그렇게 하시고도 남을 분이십니다. 아마도 성부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외아들의 조강지처인 저희를 쉽사리 내치시지는 못하실 겁니다. 예수님의 조강지처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니겠죠?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고난의 길을 저희도 함께 걸어갈 때만이 예수님의 지고지순한 신부가 되고 또 조강지처도 될 겁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도 법관이 준엄한 법에 따라 판결을 할 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 참작이라는 것을 하는데 하느님께서도 심판하실 때 그렇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도 한 여인이 자기의 지아비를 바라보며 한 가문을 위해 힘든 고생과 희생을 하며 살았던 삶을 참작해서 제도적으로 나라가 보호해주었던 것처럼, 인간세상에서도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더군다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더더욱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조강지처가 되어, 먼 훗날 하느님 아들의 신부가 되어 천상 축복의 영예를 누리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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