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일)
(녹) 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자유게시판

2019.5.19.복음말씀 중,"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묵상나누기 예시 35-양남하 시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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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하 [simonyang] 쪽지 캡슐

2019-05-12 ㅣ No.217933

2019.5.19.복음말씀 중,"서로사랑하여라(요한13,34)"묵상나누기 예시 35-양남하 시


 

◆복음말씀전문;<"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3ㄱ.34-35


방에서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복음말씀 전문 중 마음에 와 닿는 성구 >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 묵상과 다짐 >

 

<묵상 >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주만물창조주 아버지의 거룩한 뜻인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선교의 삶(요한 6:38~39 참조)을 오롯이 사시다, 파스카축제가 시작되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배신자) 유다가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가자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권(利權)을 약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승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감동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내가 너희를 감동시킨 것처럼 너희도 서로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서로가 누구입니까일차적으로 제자들을 말합니다. 제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끼리 섬기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낮추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섬기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참사랑이며 정의이고 평화이며 인간중심교리의 뿌리이며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사랑을 물질 명예 등 이권(利權)으로 저울질 하는 듯  싶습니다. 사회정의, 정의평화,사회교리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도 느낍니다! 하지만 사회교리 등을 들먹이면서 하느님을 이용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가치관을 실현하는 해방신학주의자들의 본성은 굳이 숨기고 싶어하는 모습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1)

예수님은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들 안에 두려움을 불어넣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교세확장은 물론 정권 붕괴 등을 인위적으로 꾀하지 않으셨습니다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당신의 삶이었고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비롭고 용서하고 베푸시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삶이었습니다.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다짐 >

 

이 묵상과정을 통해 예수님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열리는 삶의 공간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우리 각자의 심장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심히 박동하고 있음은,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주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살려지고 있씀입니다.
하지만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이기적이고 또 배타적(排他的)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긍정하고 방어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생명의 기원(起源)이신 하느님에게서 또 이웃에서 고립되기도 합니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청개구리 삶을 살고 있습니다 .

비록 삭막한 세상에서 앞뒤가 뒤틀린 삶을 살면서도 이 정도로 감동하며 살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체가 은총이며 축복이기에,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부부간 또는 1~2()간에서 실천 가능한 부분이 많으므로 은사(恩賜)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기로 하고,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찬미와 감사만큼은 꼭 품고 살 것을 다짐"합니다.

 

*1).사랑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보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세상의 관행을 넘어서 신앙을 동기로 한 실천을 합니다. 이 세상의 관행을 따라 살지 않기에 신앙인은 불편을 겪기도 하고 불이익(不利益)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주도자들에 의해 국가 안보는 오히려 위협당하고, 법치주의가 붕괴되고, 자유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주의가 파괴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예수님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해방신학 주요 범주에 속할 것입니다. 

 

***이 글 원문주소: http://m.cafe.daum.net/kfb67/NPRR/385?svc=cafeapp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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