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여긴 너가 있을 곳이 아니야!!

스크랩 인쇄

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19-05-22 ㅣ No.129869

 

 

어제 밤늦은 시간에 환기를 위해 열어둔 문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불빛을 보고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낮에 나비를 본 적은 있어도 밤에 본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02년도에 스님과 일본 수사 신부님과 휴전선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에 이 이야기를 한번 올릴 기회가 있을 때 한번 올리겠습니다.

 

그때 6.25 전쟁이후 민간인이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길을 걸었습니다. 색깔이 아름다운 나비를 많이 봤습니다. 아마 그때 본 나비가 제가 지금까지 본 나비보다 더 많이 봤습니다. 나비는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나비도 하느님의 아름다운 작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가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생명체를 그냥 어떻게 죽인다는 건 정말 마음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나비를 원래 자기가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곳으로 되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나비가 딱 날다가 가만히 있을 때 그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가만 있을 때 제가 조심조심 엄지와 검지로 날개를 순간 잘 잡았습니다.

 

잡으니까 나비가 파르르 제 몸을 떠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게 뭐지 하며 빨리 놓아죠 하고 아우성치는 듯했습니다. 그때 순간 잠시만 있어봐 너가 있을 원래의 자리로 옮겨주려고 하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 잠시만 참아. 그 몇 초 되지 않는 순간에 나비와 나눈 대화였습니다. 문밖으로 나비를 날려보내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한번 그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비는 그냥 밤에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그건 잘 모릅니다. 아무튼 나비가 밤에 자신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불빛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저기가 무엇이지 하며 호기심에 그 불빛을 따라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나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밤하늘을 날았는데 갑자기 낮처럼 밝은 곳을 보니 신기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조금 날다보니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있는 밤하늘을 나는 그런 공간이 아니였습니다. 자꾸 날기는 나는데 뭔가 부딪히는 겁니다.

 

이거 왜 이러지 하고 나비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난감했을 겁니다. 밝은 곳이라 호기심에 어떻게 들어왔지만 사실 나비에게는 나비가 원래 있어야 할 그런 자유로운 공간이 아닙니다. 나비는 자신이 왜 이 좁은 공간에 있는지 영문도 모르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나비를 보며 이 나비가 마치 우리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나비를 우리의 삶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는 살면서 순간 혹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나비가 밤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데 불빛을 보고 제 방 안으로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비는 순간은 좋았을 겁니다.

 

우리도 유혹에 빠질 때는 그 순간은 유혹이 주는 그 달콤함에 취해 있어 그 유혹의 즐거움에 자신이 유혹에 빠져있는 것조차도 모를 수도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데 잠시 지나면 유혹에 빠진 나비가 날다가 자신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 때 그때 나비는 비로소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어야하는 게 원래 우리의 자리입니다. 근데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공간을 벗어났습니다. 바로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원래 우리가 있어야 할 에덴으로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낙원에서 살면 좋은데 우리 인간이 그 자리를 그냥 박차고 나왔기에 정말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나비가 제 방으로 들어와 나가려고 몸부림쳐도 나갈 수 없는 나비 신세가 우리의 삶과 마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나비의 모습을 보니 제가 나비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서는 나비의 몸을 잡아야 합니다. 근데 나비는 제 맘을 모릅니다. 뭔가 자신이 날려고 날갯짓을 하려고 몸부림쳐도 몸부림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비는 자신이 사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래 들어온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제가 나비를 잡아서 날려주지 않으면 제 방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유가 박탈된 채 죽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런 나비처럼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우리가 사는 곳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아들이 오신 것도 제가 제 방에 갇힌 나비를 제가 구해주려고 나비의 몸을 잡았을 때처럼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게 어쩌면 우리 인간이 보기엔 제가 나비를 구해주기 위해 나비의 몸을 잡았을 때 우리는 이게 하나의 족쇄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나비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나비가 이런 제 맘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자유가 구속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하늘 나라에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아야 바로 우리의 원래의 고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근데 우린 그 말씀이 무지한 인간의 눈에는 그게 우리의 지금의 삶이 더 안락하고 편한한데 그렇게 사려고 하니 힘든 것도 따르는 게 현실입니다.

 

만약 나비가 제가 나비의 날개를 몇 초 잡아서 그 몇 초 동안 나비가 자신의 몸이 구속되지 않으면 나비는 제 방에서 죽게 되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모릅니다. 만약 나비가 그런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저에게 고맙다고 가만히 있어야 할 겁니다.

 

나비는 제 맘을 모르는 것입니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고 하는 제 마음을 말입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면 우리의 지금 신앙생활도 나비의 삶과 같지 않을까요? 제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드리고 싶지만 완전히 결론까지 제 생각을 이번에는 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이글을 보시는 분께서 제가 어떤 말을 드리고 싶은지 한번 나비의 날개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좋은 묵상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41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