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신앙도서ㅣ출판물 ※ 이미지 업로드 시 파일찾기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복사하여 붙여넣기 하면 오류가 발생합니다.

조용한 게 좋아 / 성바오로출판사

스크랩 인쇄

성바오로출판사 [saintpaolo] 쪽지 캡슐

2019-06-05 ㅣ No.768

 

 

<책으로 바로가기>

 

 책 소개

 

묵주를 돌리다가도, 미사에 참례하면서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궂은 뉴스들과 쉴 틈 없이 울어대는 카톡 소리에 생각은 잡다한 것들로 산만해져 둥둥 떠다닙니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되뇌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다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이 자기임을 문득 깨닫습니다.

닐 기유메트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조용한 게 좋아’는 한 번 잡으면 카톡이 아무리 불러대도 인터넷 뉴스가 현란하게 속살거려도 깊고도 재미난 이야기에 취해 눈을 돌릴 수 없게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면서 시시콜콜한 것도 알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분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어졌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얼 좋아하시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연옥 생활은 어떤지, 왜 카르 마르크스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으며, 무신론자와 개신교 신자 그리고 스님은 곧바로 천국행인데 어째서 생애 대부분을 바티칸 교황청에서 보낸 추기경은 연옥에 머무르라고 천사가 가로막는지를 신랄하면서도 따뜻하고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성인이고 천국은 누가 들어가며,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고 과연 누가 믿는 사람인지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십자가 수난’ 앞에서 우리가 이따금 답답해하면서 ‘왜 예수님은 큰 권능을 보이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적들을 전멸시키지 않으셨을까? 그러면 온 세상 사람들이 마침내 그분을 믿었을 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이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으로 신나게 상상 그대로 펼쳐집니다.

 

야유와 조롱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 대해 무관심하신 것 같았다. 그분이 의식을 잃으신 것일까?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라는 말을 들으셨을 때 그분이 눈을 뜨셨다. 이 마지막 말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그분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분은 숨쉬기가 한층 더 힘들어졌다. 그분의 관자놀이의 정맥들이 이 순간 눈에 띄게 불거져 퍼렇게 드러나 보였다. 그분의 입은 분노로 굳어지셨다. 아버지에 대한 그 언급이 그분을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분은 격노해 적들에게 소리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의 불신앙 때문에 너희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심장이 얼어붙을 만큼 번개가 무섭게 쳤다. 하늘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이 십자가를 비추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두려워하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 앞에서 예수님은 거룩하게 변모되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의 피와 땀과 함께 못이 사라졌다. 예수님은 이제 완전히 십자가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을 바라보시고 경건하게 두 팔을 위엄 있게 펴시고는 눈부시게 찬연히 빛나는 평온한 모습으로 공중에 서 계셨다. 그 순간, 그분을 조롱하던 모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땅에 쓰러졌다.” (본문 중 ‘왜 그랬을까’ 일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시죠?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본원적인 마음은 ‘하느님을 향해있고, 어느 정도 무한함’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의 실현 방법을 통해 깨닫게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비틀거릴 때 방향을 바로 잡고,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줄 것입니다.

 

 책 속 한 구절

“때로는 고통이 좋을 때도 있어요. 심지어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은 경우도 있지요. 이것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물을 배워야 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하느님께 돌아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오. 그것은 당신의 가슴속에 사랑을 점화시키는 불꽃이 될 것이오.”

 

“나를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찬란히 빛나는 빛 속에서 나를 네 눈으로 직접 보려는 너의 바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란다. 왜냐하면 그런 바람을 지닌 인간적인 눈은 너무 허약해서 어디에나 있는 나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대신에 네가 네 마음 안에 있는 눈으로 나를 찾으려고 한다면 너는 나를 매우 뚜렷이 볼 수 있을 거란다.”

 

“여기서는 정통이니 아니니 하는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차례

즐겁게, 경쾌하게

왜 그랬을까

깊은 우물

누가 아는가

성인이 돌아가셨다

내 뜻대로 해 주소서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되었다

다른 시각

연옥 생활

심장 마비

9월의 사나이

중요한 것부터 먼저

그림자

꽃을 피우는 들풀

임무 완수

비교할 수 없는

초대받은 모든 사람

제스트

집착

사람들은 왜 하느님을 믿을까?

 

 

 글쓴이 :닐 기유메트 Nil Guillemette

로마 교황청 직속 성서 대학에서 성서학을 전공했다. 예수회 신부인 그는 베트남의 달라트 신학 대학에서, 그다음에는 아비장의 서아프리카 가톨릭 대학에서, 그리고 아테네오 드 마니랄 대학의 로욜라 신학부에서 10년 이상 신약 성경을 가르쳤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081 0

추천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