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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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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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8-21 ㅣ No.13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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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판관9,6~15)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7ㄷ)

판관기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분배한 다음부터 사무엘의 영도아래 왕정이 들어서기 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약속의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야훼 신앙안에서 단결시킨 여호수아의 시대는 가고 혼돈의 시대가 돌아왔다. 

여호수아기의 저자는 땅과 율법의 관계를 보증에서 경고로 발전시킨다.
즉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전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땅의 소유를 보증하지만, 그 땅에 정착하면서부터는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 땅의 상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판관기는 이 경고가 구체적 현실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그분이 선물로 주신 땅을 차지하고도 그곳에서 번영을 누릴 수 없다.
오히려 그 땅에서 무질서와 혼돈을 겪을 뿐이며, 약속의 땅이 문제의 땅으로 돌변할 것이다. 이 혼돈의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왕정의 도래를 고대한다. 그러나 왕정이 들어서면 과연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안정과 번영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상적 훌륭한 제도가 아니라 참 임금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이다.

오늘 독서에서 요탐은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화를 통해 왕정제도가 쓸데없음을 전하며 격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참 임금이신 하느님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임금을 찾는 그들을 우화를 통해 비판하는 것이다.

스켐의 지주들에게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운 것은 마치 나무들 중에서 올리브나무도,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아닌 가시나무를 세운 것과 같다.
그것은 올리브나 무화과나 포도나무는 열매가 있는데 반해 가시나무는 아무 열매도 결실도 없는 나무이기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시나무 그늘 아래 사람이 몸을 피할 수 있는가?
가시나무에 무슨 그늘이 있으며, 가시나무 그늘 아래 어떻게 몸을 피할 수 있는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세, 여호수아를 거쳐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이스라엘이 계약의 하느님, 참 임금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이 만든 제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들에게 부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든 제도와 형식과 틀 말고 온전히 만유 위에 하느님만을 향하고 있는가?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20,1-16)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요?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5)

 

한글 새 성경'나에게 합당하지'에 해당하는 '엑세스틴 모이'(eksestin moi; It is lawful for me)의 번역을 생략했는데, 포도밭 임자의 행동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뜻이 있으므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내게 합당하지 않느냐?" (Is it not lawful for me to do what I will~?) 라는 뜻이 된다.

원문대로 하면,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행위였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신다 하여도 그것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은 절대 공의로우며 인간에게도 유익이 되는 선(善)한 것이기에, 인간이 왈가왈부할 성질이 못된다는 것이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에 해당하는 '호티 에고 아가토스 에이미'(hoti ego agathos eimi; because I am generous; because I am good)에서 '에고'(ego; I)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

 

'에이미'(eimi; am)란 동사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에고'(ego)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후하고 관대하며 선한 자가 바로 포도밭 임자(주인)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가토스'(agathos)'윤리적으로 선하다'는 뜻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너그럽다'는 의미도 지닌다.

말하자면, 놀고 있는 자를 고용하여 넉넉한 품삯을 준 포도밭 임자 자신의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후하다고'를 의미하는 '아가토스'(agathos)대응되는 단어로서 '시기하는'으로 번역된 '포네로스'(poneros; envious; evil)'비열한', '무가치한'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의인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은혜를 베푼 것을 도덕적으로 비열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비록 늦게 포도밭에 왔지만 동료가 후한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한데, 이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우월감을 타인과 비교하여 드러내기를 좋아할 뿐, 하느님의 입장에서 내려지는 크나큰 사랑을 볼 줄 모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본성적 요소가 만드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기준은 항상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안목으로 볼 때,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어 입어야 하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보며,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은 바로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감히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해 판단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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