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새 숨결 새 생명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 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에 있었을 때 정부 수뇌부에서 은근슬쩍 고급 정보를 흘렸다고 한다.

 ”세계가 깜짝 놀랄 비밀병기가 준비돼 있다.”

 아랍 국가들이 잔뜩 긴장했다. 전쟁은 이스라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어떤 비밀병기 때문에 졌는지, 그것이 아리송했다. 나중에야 밝혀졌다. 그 비밀병기란 다름 아닌 ‘야훼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맞다. 이스라엘은 이미 기원전 1000년경 이 비밀병기 위력을 극적으로 체험했다. 메소포타미아 왕이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에게는 지도자도 훈련된 병사도 없었다. 이때 ‘야훼의 영’이 판관 오드니엘에게 내려 그들을 무찌르게 하셨다(판관 3,9-11 참조). 판관기는 온통 ‘야훼의 영’에 사로잡힌 ‘판관’들의 영웅적 승전담(勝戰談)으로 이뤄져 있다.

 결국 비밀병기란 다름 아닌 ‘야훼의 영’이었던 셈이다. 거기서 전대미문의 영검 곧 카리스마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영’이 특별히 뽑힌 자 위에 임했다. 성령은 하느님의 사람들에게 역사하셨다. 모세ㆍ 판관들ㆍ왕들ㆍ예언자들에게 역사(役事)하셨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임했던 성령이 장차 만민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요엘 예언자는 말한다. 요엘서 3장 1절을 펼쳐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요엘 3,1-2).

 이 약속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성령’은 언제나 국면(局面)을 극적으로 전환 또는 반전시켜 줬다. 이 ‘성령’이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뿔뿔이 도망쳤던 겁쟁이 제자들을 당당한 ‘선포자’로 변화시켰다(사도 2,1-11 참조). 이 ‘성령’은 죽음이 두려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증거자’로 변화시켜 마침내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뒤따라 담대하게 ‘순교’하게 했다.

 ’120명'(사도 1,15)이나 되는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는 귀로,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2,2-3).

 먼저 하늘로부터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세찬 바람 소리’는 야훼 하느님의 영 또는 예수님의 영(로마 8,9; 필립 1,19; 1베드 1,11)이 ‘죽은 뼈’나 다름없는 처지의 사람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소리였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마른 뼈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뼈들에게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 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에제 37,4-6)

 이는 죽은 사람들의 힘줄, 살, 피부를 소생시키는 신묘한 생기(生氣)였다. 이 기운이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이내 썩은 공기, 낡은 체취들이 사라지고 새 숨결, 새 생명으로 온 방안이 가득 찼다.

 이어 불길이 보였다. 하느님의 거룩한 불길이 사람들 머리 위에 타고 있었다. 이 불길은 영락없이 모세가 보았던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었다. 바로 그 불이었다. 그들 눈은 모세 눈처럼 휘둥그레졌다. “저 떨기가 어째서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을까?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출애 3,3)

 또한 이 불은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450명 바알 예언자와 대결할 때 나타났던 그 불이었다.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때, 바알 예언자 450명이 어마어마한 제단 위에 모든 우상과 동물을 갖다 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위를 맴돌면서 춤을 추고 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심지어 자신들 몸을 찢어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며 제사를 지냈어도 감감 무소식이었던 그 불이었다. 하지만, 엘리야가 열두 단 제단을 만들고 도랑을 파고 물을 뿌리고서 딱 한번 “야훼여 저에게 응답하소서”하며 기도했을 때, 장엄하게 내렸던 그 불이었다. “그러자 야훼의 불길이 내려와 제물과 함께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 태웠고 도랑에 괴어 있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려 버렸다. 온 백성이 이 광경을 보고 땅에 엎드려서 부르짖었다.’야훼께서 하느님이십니다. 야훼께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8,38-40)

 지금 이 불길이 온 존재를 휘감으며 그들 마음 속 쓰레기를 태워버리고 그 자리를 ‘임마누엘’로, 열정(passion) 가득한 성심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때로, 성령의 힘은 우리 삶에서 조용하고 약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거나 느낄 수 없다.

 ”그(엘리야)가 거기 한 동굴에 이르러 그 속에서 그날 밤을 지내는데 갑자기 야훼의 말씀이 들려왔다.… ‘앞으로 나가서 야훼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 그리고 야훼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일어 산을 뒤흔들고 야훼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내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 다음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목소리를 듣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1열왕 19,9-13).

 이처럼 성령은 ‘조용하고 여린’ 목소리로 들려오기도 한다. 성령께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겨우 들릴까 말까 할 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시기도 하는 것이다.

 종합해보자. 성령은 단지 믿을 교리가 아니다. 구약의 사람들에게 성령은 영험한 능력이었다. 신약의 사람들에게도 성령은 감각으로 만날 수 있는 구원의 실재였다. 생기요, 열정이요, 내밀하게 들려오는 지혜의 음성이었다. 오늘도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다이나믹, 그 자체다.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30-그리스도인의 다이나믹, 성령
– medjugorj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