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

제1부

1932년 7월 1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축일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을 따로 지내다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체 성혈 대축일로 함께 기념하게 되었음. – 역주)

  드디어, 영원토록 복된 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날이 왔다!

  오랜 준비 기간이 끝난 오늘, 내 아버지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분께서 이리로 오고 계시는 것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느껴지고 있다.

  잠시 기도를 바치고 나자, 벅찬 영적 기쁨을 느꼈다!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이 얼마나 크나큰 신뢰로 활짝 열리는지,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신뢰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아버지를 생각에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침내 노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천사들이 와서 이 기쁜 도착을 알려 주었다! 천사들의 노래가 하도 아름다워서, 할 수 있을 때에 적어두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잠시 멎은 후, 뽑힌 이들과 케루빔과 세라핌의 행렬이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오셨다.

  나는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고, 나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지를 절감하면서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역주)를 읊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내게 당신 가까이에 앉으라고 하셨고,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려고 작정하신 내용을 받아쓰라고 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천상 주민들은 모두 사라지고 홀로 아버지만 남아 계셨는데, 앉으시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에게 벌써 했던 말을 되풀이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내 사랑하는 아들을 또다시 내줄 수는 없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또 이 사랑을 그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이제는 내가 사람의 모습과 가난을 취하여 그들에게로 오기로 한 것이다. 보아라, 이제 나의 면류관과 모든 영광을 벗고 보통 사람의 모습을 취하겠다!”

  아버지께서는 과연 그분의 면류관과 영광을 벗어 발치에 내려놓으시고 보통 사람의 모습이 되셨다. 그리고 왼손으로 지구를 드시어 당신 가슴께에 안으신 다음 내 곁에 앉으셨다.

  그분의 도착과 사람의 모습을 취하시기로 하신 점에 대하여, 바로 그분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하여, 나로서는 이렇게 몇 마디밖에 할 수가 없다! 워낙 무지해서 그분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더 이상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집과 온 세상에 평화와 구원이 있기를! 나의 권능과 나의 사랑과 나의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온 인류가 구원의 길로, 그들을 찿아다니며 사랑하고 구원하는 그들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내 대리자 비오 11세는 지금이 구원의 때요 축복의 때임을 깨닫기 바란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녀들의 주의를 그들의 아버지께 향하게 하여라. 이 아버지는 현세에서 그들을 도와주고 후세에서는 영원한 행복을 마련해 주려고 왔다.

  사람들 가운데서 나의 일을 시작하려고 이날을 택한 것은 오늘이 바로 내 아들 예수의 ‘보혈 축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작하고 있는 이 일을 내 아들의 ‘피’와 섞어, 온 인류 사이에 위대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온 참된 목적

  1. 나는 내 피조물들이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나친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내 기쁨은 나의 자녀들이, 곧 현재와 미래의 온 인류가, 나를 알고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왔다.

  2. 나는 사람들과 뭇 민족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려고 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지! 그러나 희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와 안정 속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하는 것이다.

  3.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려 줌으로써 사람들이 아버지인 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더욱더 키우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내 유일한 관심사는 모든 사람들을 내 자녀로 여기며 보살피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창조의 걸작인  사람들 가운데 와 있는 것이 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시간의 급하다. 되도록 빨리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여느 아버지처럼, 나도 자녀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나는 영원한 존재이다. 홀로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을 때에도 내 모든 권능을 써서 나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할 생각을 이미 품고 있었다. 그러나 물적 존재들을 먼저 창조했으니, 이는 그들이 생존 수단을 찾아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창조하였고, 사람에게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만물들로 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공기와 태양과 비와 다른 많은 것들이 사람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창조되었다! 내가 손수 만든 이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나의 끝없는 인자함을 드러낸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구약성서를 보면, 창조주인 나는 예언자들을 택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살게 한다. 예언자들에게 나의 바람과 슬픔과 기쁨을 일러주어,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게 한 것이다.

  악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선함도 그만큼 더 나를 재촉하였기에, 의인들을 불러서 무질서를 일으키는 자들에게 나의 명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런 자들을 종종 엄한 말로 나무라곤 하였다.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렇게 했다면 그들에게 오히려 해로웠을 뿐이니까 — 그들의 악습에서 빼내어 창조주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잊어버렸고, 배은망덕하게도 아버지를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완악해지자, 그 때에는 세상에 재난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과 소유 재산의 파괴와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재난이 바로 노아 시대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인간 사이의 전쟁들 등이었다.

나의 변함없는 바람은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수 때에는 그 당시의 유일한 의인이었던 노아와 함께 있었다. 또한 다른 재난들이 일어났을 때에도 내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의인을 늘 찾아내었고, 그를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 가운데서 살았다. 언제나 그렇게 했던 것이다.

  세상이 타락에서 정화되곤 한 것은, 인류에 대한 나의 이 무한한 선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택했으니, 그들을 통하여 내 피조물인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무슨 일인들 하지 않았겠느냐! 메시아가 오기 수천 년 전부터 그를 예표하는 상징들 속에서 나를 드러내었던 것이다!

  이 메시아는 누구이겠느냐?
  메시아는 어디로부터 오고,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이며, 누구를 계시하러 왔겠느냐?

메시아는 곧 하느님이시다.

­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겠느냐?
하느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다.

­ 메시아는 어디로부터, 아니, 누가 메시아더러 사람들 가운데로 가라고 명했겠느냐?
그것은 그의 아버지요 하느님인 나였다.

­ 메시아는 세상에서 누구를 계시하기로 되어 있었겠느냐?
그것은 그의 아버지요 하느님인 나였다.

­ 메시아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기로 되어 있었겠느냐?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곧 하느님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
  “저는 제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 참조)

  “나는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 5,30; 히브 10,9 참조)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요한 15,16 ; 16,23)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 6,9)

  메시아는 아버지를 찬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한 14,10. 11)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버지와도 함께 있다.”(요한 17장 참조) 등.

  그런즉, 오 사람들아, 영원으로부터 나는 단 하나의 바람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게 하여 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방금 표현한 것이 나의 진정한 바람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원하느냐?

  내가 ‘아버지’나 ‘형제’나 친한 ‘벗’처럼 내 피조물인 사람들에게로 와서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모세에게 장막을 짓고 계약궤를 만들라고 했겠느냐? 나는 이를 간절히 바랐건만, 사람들은 나를 잊어버리고 수없이 많은 죄를 지으며 나를 모욕하였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세에게 나의 계명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아버지인 하느님을 생각하게 하고, 하느님의 유일한 바람은 그들을 구원하는 것임을 일깨우게 했던 것이다. 사람은 원래 그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현세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그들을 구원하려고 항상 마음을 쓰는 무한히 선한 아버지를 기억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망각하고 그릇된 생각과 공포 속으로 빠져들었고, 내가 모세를 통해서 준 계명을 그대로 다 지키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고 여기게 되었다. 게다가 이를 더 수월히 지키기 위해서 제멋대로 다른 법을 만들기도 했으니, 그리하여, 지나치게 나를 무서워하면서 점점 더 잊어 갔고, 내게 대한 모욕만 쌓아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되게 굴어도 내 자녀들이니,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은 그칠 줄을 몰랐다.
  구약의 성조들이나 예언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알고 사랑하게 할 수 없었음을 보면서, 내가 몸소 사람들에게 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올 수 있었겠느냐? 내 신성의 제2위격이, 곧 나 자신이 올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알게 되었느냐? 내 말에 귀를 기울였느냐?

  그 이후 일어날 일들을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 이 두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
  “그들은 내 옆에 있으면서도 내 현존을 모를 것이다. 내 아들이 그들을 위해 하게 될 모든 선한 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을 통하여 나를 잔인하게 학대할 것이다. 내 아들을 통하여 내게 욕설을 퍼붓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기를 그만두었겠느냐? 아니다. 사람들, 곧 내 자녀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만두기에는 너무나 크다!

  그렇다. 나는 거기에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잘 알아들어라. 나는 이를테면 내 사랑하는 아들보다 너희를 더 사랑하였고, 아니 차라리 나 자신보다도 너희를 더 사랑하였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정녕 사실이다. 만일 내 피조물 가운데 한 사람이 내 아들의 삶과 죽음과 유사한 것으로 다른 이들의 죄를 충분히 보속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도록 선뜻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내 아들 안에서 나 자신이 고난을 받는 대신에 사랑하는 내 피조물로 하여금 그것을 겪게 했다면, 내가 내 사랑을 배반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녀들이 고통 받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내 아들을 통하여 내가 사람들 사이에 오기까지의 내 사랑의 역사의 요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든 사건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즉, 사랑이 그 모든 일을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것은 사랑이다. 이 사실이 바로 너희가 방금 읽은 이야기에서 내가 너희에게 지적하고자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사랑이 잊혀져 왔다. 그래서 내가 너희 기억에 떠오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게 되고, 너희를 이토록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노예들처럼 무서워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너희가 보다시피,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이제 1세기의 첫날에 있는 셈이 아니냐? 나는 그 첫날을 20세기인 현재로 가져오고 싶다.

  오, 사람들이 나의 이 부성애를 얼마나 잊어버리고 말았는지! 그럼에도 나는 이다지도 뜨겁게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들 안에서,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된 내 아들 안에서, 내가 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냐! 이 인성 안에 신성이 감춰져 있으니, 신성이 움츠러들고, 가난해지고, 굴욕적으로 낮추어져 있었고, 나도 내 아들 예수와 함께 희생과 노동의 삶을 살았다. 또한 내 아들의 기도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분명하게 가르침을 받은 길을 따라서 언제나 정의 안을 걸음으로써 무사히 나에게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내 자녀들의 나약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 아들에게 사람이 넘어진 뒤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수단을 주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이 수단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은 죄에서 깨끗이 정화될 수 있고, 그러면 전과 같이 내 사랑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주된 수단은 ‘칠성사’이다. 특히 너희의 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전한 구원의 수단은 ‘십자가’, 즉 내 아들의 ‘피’이다. ‘참회의 성사’와 ‘미사 성제’를 통해서,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내 아들의 ‘피’가 너희에게 쏟아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이천 년 동안 이 특별한 은총의 선물들을 아낌없이 너희에게 주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내 아들을 통하여 내 사랑의 자녀가 되고서도 서둘러 영원한 (멸망의) 구렁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정녕 나의 무한한 선함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처럼 끔찍이 너희를 사랑하건마는!(이는 에우제니아 수녀가 좋아하는 표현이며, 이 메시지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 원주)

  아, 적어도 너희는 너희에 대한 자비 때문에 내가 친히 이렇게 와서 너희와 이야기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내 사랑을 깨닫게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너희만이라도 가파른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지 말아라.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희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는데도, 내게서 멸망에 이르도록 너희를 내버려둘 만큼 굳고 무딘 마음밖에 못 본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느냐? 아니다,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다! 내 피조물들의 약함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내게로 오너라!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오너라! 너희가 뉘우치면 용서하겠다. 너희의 죄가 진창처럼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하더라도, 너희에게 사랑과 신뢰가 있으면 내가 그 죄를 용서하여, 심판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 나는 정의의 하느님이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보상하는 것이다!

  잘 들어라, 내 자녀들아. 우리 함께 가정해 보자. 그러면 너희가 내 사랑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내게는 너희의 죄가 쇳덩어리와 같고, 너희 사랑의 행위는 황금과 같다. 너희가 비록 내게 쇳덩어리를 천 근(千斤)이나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황금 열 근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이는 너희의 얼마 안 되는 사랑만으로도 엄청난 죄들을 속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내 자녀들에 대한 내 심판의 아주 약한 모습이고,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그러니 너희는 내게로 와야 한다.
  나는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나를 사랑하고 흠숭하여라. 그러면 심판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무한히 자비로운 사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이와 같지 않다면 세상이 죄를 지을 때마다 번번이 멸하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보아 왔듯이, 나는 언제나 은총과 은혜로 내 보호를 드러낸다.
  이를 보고 너희는 모든 아버지들 위에 계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과 이 아버지는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결코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두가지 길을 통하여 너희에게 온다. 그것은 십자가와 성체이다!

  십자가는 내가 내 자녀들 가운데로 내려오는 길이다. 내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로 너희를 속량하게 한 까닭이다. 그건즉 너희에게는 십자가가 내 아들에게로 올라오는 길이요, 내 아들로부터 내게로 올라오는 길이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내게 올 수가 없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체를 통하여 나는 가족과 함께 있는 아버지로서 너희 가운데 살고 있다. 내가 내 아들에게 성체성사를 세우도록 한 것은, 모든 감실이 나의 은혜와 풍요와 사랑의 그릇이 되게하여, 이 모든 것을 내 자녀들에게 베풀기 위함이었다.

  내가 나의 능력과 한없는 자비를 끊임없이 내려 보내는 것은 언제나 그 두 길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내 아들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나타낸다는 것과 그를 통해서 내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나의 성령을 통해서 어떻게 너희 가운데 오는지에 대해서도 일러주겠다.

  내 신성의 제3위격인 성령은 은밀히 역사(役事)하신다. 그래서 사람은 왕왕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내게는 매우 적합한 생활 방식이니, 비단 감실뿐만 아니라 은총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 안에 나의 옥좌를 차리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떠받쳐 주는 아버지로서 항상 그들 안에 사는 것이다. 내가 한 영혼과 단둘이 있을 때에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의인이건 죄인이건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아버지인 나의 이 마음을 알고, 사랑하고, 흠숭하는 것이 내 신성의 끝없는 소망인데, 아직껏 이를 깨달은 사람도 별로 없다. 이는 내가 사람들에게서 경의의 표시로 받고 싶은 세 가지 예물이니, 그러면 나는 가장 큰 죄인들도 늘 자비롭고 상냥하게 대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담에서부터 예수의 양부인 요셉에 이르기까지, 요셉의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내 백성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그러니 사람은 마땅히 그들의 아버지요 창조주요 구속주인 나에게 특별한 예배를 바쳐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이 특별한 흠숭을 아직 받지 못하였다!

  너희는 출애굽기에서 하느님을 특별한 예배로 흠숭해야 한다는 것을 읽는다. 특히, 다윗의 시편에도 이 가르침이 들어 있다. 모세에게 준 계명에서 내가 강조한 것은, “너희는 오로지 너희 하느님 야훼만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출애 23,25 참조; 신명 6,4-5, 18,13 참조 – 역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과 흠숭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두가지이다. 내가 너희에게 수많은 은혜를 아낌없이 주었어니, 너희도 특별한 모양으로 나를 흠숭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생명을 주면서 나의 모습대로 빚어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기에 너희의 마음은 내 마음처럼 민감하고, 내 마음은 너희의 마음처럼 민감한 것이다!

  너희의 한 이웃이 너희를 기쁘게 하려고 작은 부탁이지만 힘써 들어준다면 너희도 그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지 않겠느냐? 마음이 더없이 무딘 사람도 늘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누구든지 가장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자기에게 해 준 일에 보답하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나를 흠숭하라는 내 작은 당부를 너희가 힘써 들어준다면, 나는 너희에게 훨씬 더 큰 고마움을 느끼며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않겠느냐?

  나는 너희가 내 아들을 통하여 나를 흠숭한다는 것과 무엇이든지 내 아들을 통하여 나에게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런 이들은 사실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 아들을 흠숭하면 나를 흠숭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내 아들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확실히 나를 흠숭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내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이 특별한 예배로 그들의 창조주 아버지를 흠숭하는 것을 보고 싶다. 너희가 나를 흠숭할수록 그만큼 더 내 아들을 흠숭하는 것이다. 내 아들은 나의 뜻을 따라서 ‘강생한 말씀’이 되었고, 자기를 보낸 분을 알게 하려고 너희 가운데 왔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면 나와 내 사랑하는 아들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 아들의 ‘구속 신비’로 내 자녀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아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마련한 목장에 아직 들어와 있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라. 너희가 알다시피, 아직 이 목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리고 내 손으로 빚어 만들었기에 너희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는 내 피조물 가운데, 자기를 창조한 이를 모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냐!

  아! 내 간절한 바람은 너희로 하여금 이를 알게 하는 것이니, 곧 너희에게 참으로 전능한 아버지인 나는 또한 저 사람들에게도 내 은혜들을 통하여 그런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나의 법으로 그들의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그들에게 가서 나에 대하여 말해 주기 바란다. 그렇다. 그들에게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과 그 아버지께서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보화들을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신다고 말해 주어라. 무엇보다도 특히, 아버지께서 그들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시고자 하신다고 말해 주어라. 오 약속하지만, 너희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회개를 더욱 앞당기게 될 것이다!

  너희가 교회 초창기부터 특별한 예배로 나를 흠숭하기 시작했더라면, 이천년이 지난 지금쯤은 정녕 우상 숭배나 이교나 그릇되고 악한 종파에 빠져 영원한 불의 나락을 향해 분별없이 내달리며 살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보아라,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느냐!

  이제 나의 때가 되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들의 사랑과 흠숭을 받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 사람들을 창조한 내가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다음에는 그들의 구원자가 되고, 마침내 그들의 영원한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였다. 이를 다시 상기시켜 온 것은, 나는 너희의 생각처럼 무시무시한 아버지가 아니라 지극히 인자한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창조할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너희가 더욱 더 확신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너희가 또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고, 사랑하고, 특히 흠숭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특히 죄인들과 병자들과 임종자들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나의 무한한 선함을 누구든지 알아보기를 바란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임을 알려 주어라. 그것은 바로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내 은총을 주고, 뉘우치면 용서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정의가 아니라 자비로 그들을 심판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여 내 뽑힌 이들 속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 짤막한 이야기의 마무리로, 이제 영원토록 유효한 한가지 약속을 해 주겠다.

  그것은 너희가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나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면, 이 아버지에게서 사랑과 자비와 아울러 무엇이든지 다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영적 아버지인 내 아들(사제가) 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기를 바라니, 내가 너에게 받아쓰게 한것과 앞으로 받아쓰게 할 것도 한 구절 한 구절 다 인쇄해두면 좋겠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흐뭇해 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내용에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사람들에 대한 나의 바람과 내 기쁨과 비통에 대해서 날마다 조금씩 이야기 하겠고, 무엇보다도 나의 무한한 선함과 나의 부드럽고 자비로운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일 작정이다.

  나는 또한 네가 장상들의 허락으로 네 자유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매일 30분씩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여라. 그러면 너는 사람들의 마음이, 내 자녀들의 마음이, 내가 너에게 그 형태를 알려 준 이 (특별한) 예배를 전파하기 위하여 일할 준비를 확실히 갖추게 할 것이고, 그 결과 자기 자녀들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는 이 아버지에 대한 큰 신뢰를 얻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는 이 일이 뭇 민족들 사이에 되도록 빨리 확장되고 그 전파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조금도 경솔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너의 나날을 잠심(潛心) 중에 지내어야 한다. 다른 이들과 말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니 네게는 기쁨이 될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도 마음 속으로는 나에게 말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또 한 가지 네게 당부하거니와, 내가 때때로 내 속에 품고 있는 말을 털어놓을 때면 그것을 위해서 따로 마련한 수첩에 적어 두어라.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나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어머니보다 더 친밀하게 내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아버지께서는 원하시는 바를 얻기 위해서, 자녀들 한 사람 한사람이 약간의 시간을 내어 아버지와 단둘이 만나게 되기를 어서 보고 싶어 하신다. – 원주)

  사람을 창조한 이래 나는 한 순간도 사람에게서 떠나 있은 적이 없다. 사람의 창조주요 아버지로서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게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이며 창조주인 나의 사랑이 사람을 사랑할 필요를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 가까이에서 살고 어디든지 따라다니며, 무슨 일에서나 도움을 주고,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 준다. 나는 사람의 필요와 고통과 욕구를 알고 있으니, 사람을 돕고 구원하는 것에 나의 가장 큰 행복이 있다.

  사람들은 나를 무시무시한 하느님 – 온 인류를 지옥으로 내던지려고 하는 하느님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매우 놀랄 것이다! 그들이 멸망했으리라고 여긴 이들이 뽑힌 이들 사이에서 영원한 지복(至福)을 누리는 것을 보겠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을 보살펴 주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미리 맛보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확신하면 좋겠다.

  어머니는 자기가 갓 낳은 아기를 결코 잊지 않는다. 나로서는 내가 낳은 모든 인간을 다 기억하니, 월등 더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어머니가 내게서 받은 아기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그 아기를 빚어 만든 나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아기에게 어떤 결함이 있어서 어머니가 그 아기를 덜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오히려 그 때문에 그를 더 사랑하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나중에, 특히 아기가 성장하여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면 잊어버리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결코 그를 잊어버리지 않는다(이사 49,15 참조 – 역주). 언제나 그를 사랑하고, 설사 그가 자기의 창조주요 아버지인 나를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기억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너희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너희는 아직 이 말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며 아버지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부르면, 지금 여기에서도, 영원토록 너희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랑과 신뢰 안에서 살기 시작하리라는 뜻이다. 너희가 뽑힌 이들과 함께 천국에서 노래할 것도 사랑과 신뢰이니,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이어질 천상 행복을 미리 맛보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가 있는 바로 그곳에 나도 있다는 것을 자주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살아 있듯이 나도 살아 있고 그런 내가 함께 있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 곁에 있는 것이다.

  아! 나는 너희에게 알리고자 하는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몹시 보고 싶은데, 그 계획은 이렇다.
  지금까지 사람은 아버지 하느님께 이 기쁨을 드리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이에 크나큰 신뢰가 확립되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신뢰란 섬세한 정신에서 싹트는 참된 친밀함이니, 그것이 확립되면 나의 위대한 선함을 악용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필요와 욕망과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가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는 아이처럼 내게 와서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내 마음이 여간 기쁘지 않다. 하도 기뻐서 고마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작은 것이건 더없이 큰 것이건 너희가 청하는 것을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비록 나를 보지는 못하더라도 너희와 너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내가 아주 가까이에 있음이 느껴지지 않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다면(요한 20,29 참조 – 역주), 너희는 어느 날인가 참으로 큰 상급을 받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몸소 여기 너희 가운데에 있으면서 너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과 너희가 특별한 예배를 통하여 나를 알고 사랑하고 흠숭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여러 모양으로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받아쓰고 있는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나를 볼 수가 없다. 온 인류 중에서 딱 한 사람만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면서 말하고 있는 이 수녀를 통하여 너희 모두를 보고 너희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너희도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바람은 사람들이 나를 알고 내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기억하여라, 오 사람들아, 나는 인류의 희망이고자 한다는 것을! 사실은 이미 그러하지 않았느냐? 내가 인류의 희망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평화와 신뢰와 사랑이 그들의 마음 안에 흘러들어,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늘과 땅의 아버지와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무서운 노인으로 여기지 말아라. 사람들이 상본이나 책에 그런 모습으로 나를 묘사하곤 하지만, 아니다, 아니다, 나는 내 아들과 내 성령보다 더 젊지도 더 늙지도 않았다.

  그런즉, 가장 어린 아기에서부터 가장 늙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나를 ‘아버지’와 ‘벗’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러 주면 좋겠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너희를 닮음으로써 너희도 나를 닮도록 하고 있으니, 나를 ‘형제’라는 이름으로도 불러 주면 좋겠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나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주 부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 내 기쁨이 얼마나 크겠느냐! 과연 나는 아버지이니 말이다! 정말이지 그 어린 영혼들 안에 나에 대한 신뢰와 자녀다운 사랑을 불어넣어 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 주었으니, 너희도 나를 위하여 이를 실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모든 가정을 내 영지(領地)로 삼아 집집마다 그 안에 나의 집을 짓고 싶다. 누구든지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
  “우리는 한없이 선하시고 한없이 부요하시며 매우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 대해서 생각하시고,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지켜보시고, 친히 우리의 지주가 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없어서 청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재산이 모두 우리 것이니,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할 마음이 들게 하려고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마태 7,7 – 역주) 모두가 나를 가족과 함께 사는 참 아버지로 여기기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사실인즉, 내 부성적인 선함으로 무엇이든지 너희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작은 딸”에게 나중에 알려 줄 모습대로 그린 상본을, 집집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현시하기 바란다. 이와 같이, 모든 가정이 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쉽게 나를 흠숭할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이 상본 앞에서 온 가족이 나와 함께, 가정의 필요와 사업과 슬픔과 고통과 소망을, 그리고 즐거움을 나눌 일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알아야 하니 말이다.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을 것이니 말할 것도 없이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단순함을 사랑한다. 또한 나 자신을 너희에게 맞추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어린이들과는 어린이가 되고 어른들과는 어른이 되며, 노인들과는 노인이 됨으로써, 모든 이의 성화와 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누구든지 알아듣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방금 말한 것에 대한 증거를 너희는 너희처럼 작고 약한 사람이 된 내 아들을 통해서 보지 않았느냐? 너희가 지금 여기에서 너희와 말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것도 그 증거이다. 그리고 너희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게 하는 것도 그 증거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너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보아라. 나는 내 면류관을 발치에 내려놓고 이 세상을 내 가슴에 안고 있다. 하늘의 영광을 떠나 이리로 와서, 가난한 이들에게는 가난한 이가 되고, 부유한 이들에게는 부유한 이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젊은이들에게는 애정 깊은 아버지가 되어 보호해 주고자 한다. 세상에는 악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 가련하고 경험이 없는 영혼들이, 서서히 그들을 완전한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악습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특히 세상의 악을 피할 수 있도록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희는 내게로 오너라! 나는 아버지이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너희를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내 곁에, 아주 가까이에 피신하여라. 그리고 너희 생각과 소망을 내게 털어놓아라. 나는 너희를 극진히 사랑하리라. 너희의 현재에는 은총을, 미래에는 복을 내려 주리라. 15년 뒤거나 20년 뒤거나 30년 뒤거나 나는 너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 너희를 빚어 만든 내가 아니냐? 그러니 오너라? 너희에게는 나처럼 다정하고 한없이 인자한 아버지가 필요하다.

  이 메시지와 관련된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특히 내가 사제와 수도자로 뽑은 사람들에게 말하겠다. 내 사랑의 소중한 자녀들인 너희에 대하여 크나큰 계획을 품고 있는 것이다!

교황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다른 모든 사람보다도 먼저, 내 대리자인 너의 손에 이 사업을 맡긴다. 너는 이 일을 네가 해야할 모든 일 중에서 첫째 자리에 놓아야 한다. 악마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나에 대한 공포심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이는 당장이라도 이루어져야 할 일인 것이다.

  아! 나는 네가 이 사업의 범위를, 그 크기와 너비와 깊이와 높이를 알기 바란다. 현재와 미래의 인류에 대해 품고있는 나의 한없는 소망을 네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특별한 예배’를 통해 나를 알고, 사랑하고, 흠숭하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네가 안다면! 이는 나의 영원한 바람이니, 첫사람을 창조한 이후부터 줄곧 지녀 온 바람이다. 그래서 여러 시대에 걸쳐서, 특히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도무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 바람이 실현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나의 오랜 염원이었으니 만큼 모든 과거를 잊을 수 있겠다.

  나는 나 자신을 낮추어 사람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람들 가운데 이루고자 하는 이 일의 위대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과 신학을 논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이 사람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터이니 나는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단순함과 천진함을 통하여 이 계획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이 사업을 연구하게 하여 하루빨리 실행해야 할 차례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특별한 예배로 나를 알고, 사랑하고, 흠숭하게 하기 위해서 뭔가 유별난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

  1. ‘온 인류의 아버지’라는 칭호로, 어느 날을, 적어도 어느 주일을 나를 특별히 흠숭하는 날로 바치기 바란다.
  이 축일 고유의 미사 예식서와 성무일도를 작성하면 좋겠다. 이 본문은 성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만일 어느 주일을 택하여 이 특별한 예배를 내게 바치고자 한다면 8월 첫째 주일이 좋겠다. 평일을 택하려면 같은 달 7일이 좋겠다.

  2. 나는 모든 성직자가 이 예배를 발전시키는 일과,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나를, 곧 모든 아버지 중에서 가장 자상하고 가장 사랑 깊은 아버지인 나를 알리는 일을 맡기 바란다.

  3. 또한 성직자들이 모든 가정, 병원, 작업장, 공장, 군대 막사, 뭇 나라 정부 각료의 회의실 등, 요컨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를 모셔가기 바란다. 다만 한 사람밖에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참으로 현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본이, 보이지 않는 내 현존의 보이는 표지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활동하고, 나로서는 내가 친히 빚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녀로 삼기도 한 그들 앞에 있게 된다. 말하자면, 내 자녀들로 하여금 그렇게 아버지의 자상한 눈길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어디에나 있지만, 내 자녀들이 나를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있고 싶다는 것이다.

4. 그리고 성직자와 신자들이 평소의 일에 지장이 없는 몇가지 신심업을 실천하면서 연중에도 나를 기억하기 바란다.
  사제들은 두려움 없이 도처로, 뭇 민족들 가운데로, 사람에 대한 내 부성애의 횃불을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믿지 않는 이들뿐만 아니라 참된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모든 종파의 사람들도 교화시켜 그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런 이들 역시 내 자녀이니, 그들 앞을 비추는 이 횃불을 보고, 진리를 알고 기꺼이 받아들여 그리스도인다운 모든 덕행을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다.

  5. 나는 또 신학교와 수도자 수련원과 학교와 양로원에서도 특별한 모양으로 흠숭을 받고 싶다. 가장 어린 아이에서부터 가장 나이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나를 그들의 ‘어버지’로, ‘창조주’로, ‘구원자’로 알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6. 사제들은 내가 사람들에게서 받기를 원하는 예배에 관해서 이전에 말한 것과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성서에서 찾아보도록 해야 한다. 나의 바람과 나의 뜻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되, 내가 일반 사람들과 특히 사제와 수도자들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여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한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흠숭을 내게 바치도록 뽑힌 사람들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너에게 알려 준, 인류에 대한 나의 이 숙원을 완전히 이루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사업’을 위하여 헌신하는 충실한 영혼들의 기도와 희생을 통해서 어느 날인가는, 그렇다,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내가 흡족히 여길 정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게 강복하마, 그리고 네가 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될 모든 일에 대해서 백 배의 상급을 주겠다.

주교에게

  내 아들 알렉상드르야, 나의 바람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너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구나.
  너는 내 아들 예수의 “작은 초목”인 이 수녀의 영적 지도 신부와 손을 맞잡고, 이 일을, 즉 내가 사람들에게서 기대하는 이 ‘특별한 예배’를 권장해야 한다. 내 아들들아,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이 사업과 이 사업의 미래를 맡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바를 말하고, 주장하고, 알림으로써 모든 사람이 나를 알고, 사랑하고, 흠숭하게 하여라. 그렇게 하면 너는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 곧 나의 뜻을 준행하는 셈이 되고, 내가 오래 전부터 은밀히 간직해 온 소망을 이루게 된다.

  너희가 내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나는 그 갑절로 너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하여 일하겠다. 마침내 너희는 하늘에서, 오직 하늘에서만, 이 목적을 위해서 일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내가 특별히 너희에게 줄 큰 상급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창조했으니, 마땅히 사람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아버지의 창조주인 나를 빼놓고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홀로 나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나 역시 내 조물들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큰지, 그들 가운데 있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하늘의 내 영광은 무한히 크다. 그러나 내가 온 세상 사람들, 곧 내 자녀들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영광이 한층 더 큰 것이다. 내 피조물인 너희의 행복은 이미 뽑힌 이들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있다. 이는 너희가 영원토록 나를 바라보며 끝없는 영광을 누릴 곳이기 때문이다. 오 사람들아, 나의 하늘은 너희 모두가 있는 땅에 있다! 그렇다, 내가 내 행복과 기쁨을 찾는 곳은 이 땅에 있는 너희의 영혼인 것이다. 너희는 이 기쁨을 나에게 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의 창조주요 아버지인 나에 대한 의무이다. 내가 너희에게서 이를 바라며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와 함께 있음으로써 느끼는 나의 기쁨은 내 아들 예수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느꼈던 기쁨 못지않은 기쁨이다. 내 아들을 보낸 것은 바로 내가 아니었느냐? 그는 내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내 성령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냐? 그러니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는 언제나 나였던 것이다.(하느님의 일치 :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 원주)

  나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내 아들을 사랑한 것처럼 내 피조물인 너희도 사랑하기에, 내 아들에게 말한 것과 같이 너희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 “너희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 내 마음에 드는 자녀들이다”.(마태 17,5 참주 – 역주) 이런 이유로 너희와 있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니, 함께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있는 나의 현존은 땅을 비추는 태양과 같다. 너희가 나를 맞아들일 준비를 잘 갖추고 있으면, 나는 다가가서 너희 안으로 들어가겠고, 너희를 비추며 내 무한한 사랑으로 뜨겁게 해 주겠다.

  죄 상태에 있거나 종교적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내가 너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늘 곁에 있다. 끊임없이 너희를 부르면서 내가 주는 은혜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여, 너희가 빛을 보고 죄에서 나음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다.

  나는 불행한 처지에 있는 너희를 측은히 여기며 바라볼때가 있는가 하면, 너희가 은총의 힘에 이끌려 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사랑으로 바라볼 때도 있다. 어떤 영혼들 곁에서는 여러 날을, 때로는 여러 해를 보내기도 한다.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행복을 확실히 얻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거기에서 하루에도 순간마다 그들을 부르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어느 날인가는 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적어도 죽기 전에는 내게 사랑의 어떤 몸짓이라도 바치리라는 것을 줄곧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저 곁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죽음에 직면하게 된 어떤 사람을 그 예(例)로 들어보마, 내게는 이 사람이 늘 ‘방탕한 아들’(루가 15,11-32 참조 – 역주)과 같았다. (“나는 이 예를 보았으니,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이 받아쓰게 하신 대로 그는 실제 인물이었다.” – 마더 에우제니아의 주)

  나는 그 영혼에게 은혜를 풍성히 쏟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인 내가 그에게 준 이 은혜와 선물들을 모조리 허비하였다. 더욱이, 중죄를 지음으로써 나를 모욕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를 기다렸다. 어디든지 따라다녔고, 은혜도 더 많이 베풀었다. 건강을 주었고, 그의 사업을 번창하게 하여 넘칠 정도로 재물을 얻게 하였다. 내 섭리에 따라 때로는 더 많은 선물을 주기도 했기에, 그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족하였다. 그러나 나쁜 길로 빠져든 그는 일체를 그릇된 시각(視覺)으로 보았고, 습관적인 대죄로 말미암아 그의 한평생은 온통 잘못으로 짜여진 천 자락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내 사랑은 지칠 줄을 몰랐고, 전과 다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를 사랑하였고, 무엇보다도 특히, 퇴박을 맞으면서도 참을성 있게 그의 곁에서 사는 것이 기뻤다. 그도 언젠가는 내 사랑에 응답하면서 자기의 아버지요 구원자인 내게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 아버지인 내게로 돌아오게 하기 이해서 한 가지 질병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이 가련한 내 아들은 — 그는 지금 일흔 네 살이다 — 임종을 맞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지금도 그 곁에 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말을 걸고, 호소하고, 끈기있게 기다리며, 뽑힌이들을 불러서 그가 내게 용서를 빌 마음이 들도록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분부한다. 빌기만 하면 용서해 줄 작정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눈을 뜬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게로 이르는 참된 길을 벗어나 얼마나 멀리에서 헤매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정신이 든 그는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가냘픔 음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 “오!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그토록 사랑해 주셨는데도 저는 너무나 악한 생활로 끊임없이 당신을 모욕했습니다. 제 아버지이시며 구원자이신 당신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니, 제게서 보시는 이 모든 죄악을, 제가 지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알아보고 있는 이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소서, 저의 구원자이신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숨을 거두었고, 지금은 여기 내 앞에 있다. 나는 아버지다운 사랑으로 그를 심판한다. 즉 그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이다. 앞으로 그는 연옥에서 일정 기간 보속한 후에 영원토록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 때문에 기쁨을 느겼던 나는 이제 내 천상 주민들과 함께 더 크게 기뻐하고 있다. 영원히 그의 아버지가 되고자 한 내 바람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정의와 성화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 안에서 사는 내 행복을 그들에게 드러낸다. 그들에게 나 자신을 주고, 내 권능을 쓰도록 건네주며, 내 사랑을 통하여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요 구원자인 내게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메시지의 제1부가 끝난다.

–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 제 1부 ; 지은이 : 마더 에우제니아 ; 펴낸곳 : 가톨릭출판사 ; 1999년 10월 15일 교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