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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해성사에 대해 새롭게 안 흥미로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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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19-11-13 ㅣ No.133832

 

 

 

고해성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오늘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습니다. 교회법 상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실이 있는데 제일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환속하신 사제께서 고해성사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환속하신 신부님께서는 성사를 집전하실 수 없는데 참회자가 죽을 위험에 처해있고 또 고해사제가 없을 경우에 예외적으로 만약에 환속하신 신부님일지라도 그런 경우에 고해성사만은 집전할 수 있다는 교회법 내용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 조금 전에 우연히 인터넷 자료를 보고 알았습니다. 교회법을 담당하시는 신부님의 기고문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왜 환속하신 신부님께 예외적으로 고해성사만은 교회가 허용할까입니다. 사실 면직처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성품성사를 받은 효력은 불멸이라고 합니다. 다만, 성직자로서의 법적인 효력만 발효되지 못하게 했을 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순간 이 사실을 방금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고해성사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환속하신 신부님께도 이것만은 허용해 줄 의미가 있다면 이건 정말 진지하게 이런 사실에 한정해서 한번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만약 어떤 사람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세례 받을 때 받은 인호는 없어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이 대죄를 지은 상태에서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두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서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죽기 전에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해하고 죽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만약, 상식적으로 누구나가 두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다고 한다면 전자가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 다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근데 문제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만약 후자의 경우가 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굳이 교회법으로도 환속한 신부님이 모든 성사를 집전할 수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허용하는 건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뭔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제가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본다면 만약 이런 걸 상상해본다면 어떨까요? 가령 고해성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고해를 하지 않은 상태로 죽은 사람이 이렇게 평상시에 생각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 지금 고해를 신부님께 해야 되지만 어차피 나중에 죽게 되면 하느님 앞에 가게 될 건데 그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런 방법도 가능하다면 굳이 예전에 사용하는 용어인 종부성사를 굳이 살아서 받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일반적으로 죽기 전에 대죄가 있다면 아니면 또 경우에 따라서는 총고해를 통해 죄를 사함 받고 죽기를 권장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저는 이렇게 한번 추론해봤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저는 이 관점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니까 죄도 인간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죄를 고해하는 것이지 이미 생명이 다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하느님 앞이라고 해도 그건 이미 떠난 버스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쩌면 이미 떠난 버스에 대해서는 하느님도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이렇게 표현했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차원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이런 부분에서는 하느님의 영역 밖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소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식적인 논리로 보면 그렇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사실 그 일이 무슨 대수라고 마음만 먹으시면 못하실 것도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렇게 하신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그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해하는 건 이미 육신이 살아있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와 같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추론을 한번 해봅니다. 제가 예전에 이와 관련해서 아주 신기한 사실을 개신교 다닐 때 목사님한테서 들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후에 루터를 아는 사람이 루터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신부였을 때 많은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줬을 테니 어디 자네가 알고 있는 사실 좀 말해보게했다고 합니다. 근데 다른 건 몰라도 루터가 고해의 비밀만은 지켰다고 하더군요. 저도 아주 오래 전 이야기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합니다만 이런 일화가 실제 존재했다면 왜 루터는 자신이 개혁을 하려고 천주교를 박차고 나가는 마당에 그것만은 지켰을까를 생각해보니 그 정답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답은 루터만이 알고 있을 거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상상을 해봤을 때 루터도 더 이상은 신부가 아니지만 고해성사에 대한 뭔가 나름 특별한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해의 비밀을 준수했을 거지 단순히 인간적인 의리와 명분 때문에 지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해가 왜 중요한지는 신자라면 그냥 상식적으로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교회법상에 있는 고해의 예외적인 경우를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더 새롭게 다른 측면에서 고해성사의 의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려봅니다.

 

저는 신학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 제 생각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제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라도 고해성사가 중요하다는 이 사실만큼은 확실하다는 것 정도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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