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 (수)
(백)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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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올지를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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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0-03-11 ㅣ No.136687

 

 

목요일 복음을 당겨 올렸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의 전체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부자와 나자로 이야기는 아주 잘 아는 내용입니다. 저도 이 복음을 아주 많이 들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전혀 다른 각도로 이 복음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복음의 초점을 우리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없다고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실제 포커스는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저도 8년 동안 이 복음에 대한 강론을 들으면서도 이곳에만 초점을 두었는데 오늘 새로운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실제 이 복음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말씀이 얼마나 영혼 구원에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와 부자 집 앞에서 구걸로 살아가는 아주 가난한 나자로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죽게 되어 가난한 나자로는 천사들의 품에 안기어 아브라함 곁으로 갔습니다.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등장한 것은 비유적으로 천국을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는 걸로 봐서 지옥인지 연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복음에서는 나자로의 삶이 언급되어 있지만 약간의 힌트를 봐서는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것을 받았다는 표현이 있는 걸로 봐서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지옥을 갔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유추하면 부자가 저승에서 받는 고통은 아마도 연옥에서의 고통 같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본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이 보인다고 하면 이건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공간이라고 하면 여기서는 이상할 겁니다.

 

제가 봤을 때는 하느님께서 환시를 통해서 보여주셨을 가능성이 다분히 큽니다. 일단 같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큰 구렁이 있고 서로 왕래를 할 수가 없다고 복음에 나오는 걸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는 아브라함 할아버지에게 간청을 합니다. 라자로를 통해 자기의 형제들에게 지금 자기가 있는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를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됩니다. 비록 자신은 지금 고통을 받고 있지만 형제는 이런 고통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아주 중요한 내용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부탁을 했을 때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하는 말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언자라는 존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실제 여기서 말하는 모세가 실제 모세를 말하는 게 아닐 거라고 봅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겁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리라고 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토록 많이 이 복음을 봤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특이하게 이런 생각이 떠올라서 눈여겨 봅니다. 부자는 여기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자기 형제들이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세상을 살면서 말씀을 보고 했지만 그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귓등으로 흘려들었기에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기 형제들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생각했을 때 좀 더 리얼하고 생생하게 이런 일을 전해주고 인식하게 하려면 죽은 사람이 전했을 때가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라자로를 통해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을 겁니다.

 

여기서 이제 아주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잘 한번 살펴보시죠.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이해는 되는데요 참 표현이 어렵네요. 최대한 한번 전달을 해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죽은 사람이 전하면 좀 더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지만, 말씀 자체를 평소에 신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죽은 사람이 전하여도 믿지를 않는다는 것일 겁니다.

 

이 말은 평소 말씀을 귀중하게 자기 마음에 심는 사람에게는 효력이 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하게 될 거라고 부자가 말을 하는 걸로 봐서는 부자도 스스로 자기가 왜 이런 고통을 받는지 알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부자라고 해서 지금 역으로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이 세상에서 부자들은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좀 더 넓게 바라본다면 여기서 부자가 말한 회개는 어떤 의미에서 회개일지를 묵상해보면 이럴 거라고 저는 나름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에 자기가 부자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면 말씀 속에는 자선과 자비를 베풀어라는 게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대로 살았다면 부자가 죽어서 고통을 받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는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진 재물이 세상적으로 봤을 때는 자기 소유 재물이지만 하느님의 시각으로서는 단지 그 사람에게 맡겨놓은 재물이기 때문에 자기 재물이 아닌데 부자는 그걸 자기 재물이라고 생각해서 나누지 않았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자기 소유물은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남의 소유물을 점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법률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횡령죄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원 소유권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의미로 해석을 한다면 부자라서 죽어 고통을 받는 게 아니고 자기 소유물도 아닌데 베풀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자로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자기가 나누지 않았다는 게 더 자기가 고통을 받는 정확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핵심은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대로 잘 살지 않게 되면 부자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말씀이 오늘 복음에 숨어 있는 메시지일 거라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1독서에도 나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고 표현을 합니다. 이 말씀 때문에 화답송에도 시편 1편을 인용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자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 가난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실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도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을 잘 묵상을 해보면 어쩌면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한번 묵상을 해보면 이에 대한 답이 나올 겁니다.

 

물질적 재화에 대한 사랑이 놓은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고 세상 재물의 증가를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천상보화의 부요함을 열렬히 바라는 그런 가난은 참으로 복됩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려면 말씀을 더 가까이 하며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자초하게 되는지 시편 10710절에서 12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비참과 쇠사슬에 묶인 채 어둡고 캄캄한 곳에 앉아 있던 그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을 업신여긴 탓이다. 그분께서 고통으로 그들의 마음을 꺾으시니 그들은 도와주는 이 없이 비틀거렸다.

 

잠언 1313: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는 멸망하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이는 보상을 받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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