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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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에사우의 복[3]/야곱[3]/창세기 성조사[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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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0-03-14 ㅣ No.13675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잃어버린 에사우의 복

 

성조사의 시대 근동 지역에서는 맏아들에게만 축복을 주는 게 사회 풍습이었기에, 다른 자식들은 아버지의 축복을 바랄 수가 없는 실정이었을 게다. 그렇지만 레베카는 무모하리만큼 이런 제도에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 뚜렷한 이유는 없다. 다만 있다면, 에사우가 친족이 아닌 히타이트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다. 이것이 레베카에게는 어쩌면 무엇보다도 큰 근심거리였는지도. 그리고 임신 중 들은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25,23)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 수도.

 

아무튼 레베카의 계획은 그대로 실현되어 에사우 대신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다. 문제는 야곱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어떻게 이런 사기극인 관계에 의해 성취될 수가 있느냐이다. 부도덕한 뜻에 따라 자행된 나이 많은 아버지를 속인 그 행위는, 신앙의 눈을 떠나서라도 의심의 여지를 둘 수밖에는 없다. 겉으로 드러난 이 사기행각 사실만으로는 정말 나쁜 행위로 볼 수밖에 달리 결론을 내릴 그 어떤 명분도 없다.

 

아무튼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나서 그가 아버지 앞에서 물러나자마자, 그의 형 에사우가 사냥에서 돌아왔다. 그도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들고 와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아들이 사냥해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제게 축복해 주십시오.” 동생 야곱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는 두려움에 싸여, “아버지!” 하고만 불렀다. 그러나 형은 일어나셔서 빨리 별미를 드시란다. 축복은 그다음이란다.

 

역시 죄짓고는 이처럼 행동반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이에 이사악은 너무 당황해한다. 그래서 그는 예기치 않는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라며, 그에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다. 에사우가 저는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하고 답한다. 이번에는 오히려 당당하게 달려온 그가 아버지의 이 황당한 물음에 되레 덤벙이며 응수한다. 그것도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라면서 두 번이나 반복으로 되풀이한다.

 

그러자 이사악이 깜짝 놀라 몸을 떨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냥을 해서 나에게 고기를 가져온 먼저 온 그자는 누구란 말이냐? 네가 오기 전에 나는 이미 그것을 다 먹고, 그에게 축복을 주었다. 그러니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다.” 늙은 아버지의 축복은 효력을 지니는 동시에 철회 또한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이사악은 놀란다. 왜 그가 이처럼 깜짝 놀랐을까? 그것도 노인네가 치매 걸린 환자처럼 몸을 갑자기 떨면서!

 

어쩌면 이는 그 오랜 기간 떠돌이 나그네살이에서 몸에 젖은 그 어떤 직감이 이사악을 엄습했으리라. 그는 불과 몇 시간 차이로 두 에사오를 같은 목적으로 만났다. 축복받으려고 별미 들고 온 두 에사오 중, 한 놈은 필히 가짜 에사오가 아니던가! 단 한 번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인지라, 어찌 그 순간 몸 둘 바가 있었으랴! 주마등처럼 다가오는 형으로 변장한 동생과 동생보다 못한 형이 그의 뇌리에 스치면서 그의 몸을 뒤틀리는 거다.

 

동시에 앞 못 보는 그에게는 경탄의 신음마저 스민다.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작은아들을 통해 이렇게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 수가 있었기에. 야곱 그 녀석은 태어날 때 이미, 어미 태에서 뒤에 나오면서도 앞선 놈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온 야곱이 아니던가! 그 이름 뜻도 발뒤꿈치를 뜻하는 아켑’, ‘속이다를 뜻하는 아캅이다. 그것도 큰 놈 작은놈이 아닌, 민족의 이름으로 출생했다. 이사악은 먼저 온 야곱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늦게나마 눈치채고, 지금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깜짝 놀라 몸을 떨고 있는 거다.

 

에사우는 아버지의 말에 비통에 차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하였다.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 그때서야 이사악이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는 맏이를 달래며 차분히 이른다. “네 동생이 와 나를 속이고, 네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구나.” 사실 이사악도 내심 이 일이 하느님의 애초 의도대로 이루어진 게 다행이라며, 어쩌면 안도의 숨을 쉬었을 수도. 그렇다면 에사우로 변장한 야곱이 아버지에게 말한,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27,19)가 과연 거짓말로 볼 수밖에 없을까?

 

에사우는 이미 자기 동생과 거래하여 맏아들 권리를 넘겼다(25,33). 그냥 넘긴 게 아닌, 무엇을 받고 팔아넘겼다. 그 무엇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거래로 팔아넘긴 것이다. 그러니까 형은 그것을 잃었고 동생은 그것을 손에 꽉 쥐었다. 맏이로의 대우는 이제 이사악 집안에서 야곱의 몫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정자권마저 쥐지 못한 저 에사우는 집안 내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민족 여자를 둘이나 끌어들여 축복은커녕 저주받아 마땅했다. 이렇게 분별없고 무책임한 맏이에게 아브라함의 귀한 아들인 이사악이 축복을 해 주었을 리 만무하지만, 설상 또 그렇게 되도록 하느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게다. 그러기에 야곱의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는 사실 진실일 수도.

 

이사악은 체념의 한숨을 내뺏다. 이제 와 누구를 탓하랴! 그는 맏이에게 네 탓이 아닌, 내 탓이라며 겉으로는 야곱을 질책한다. 그러자 에사우가 말하였다. “이제 저를 두 번이나 속였으니, 야곱이라는 그 녀석의 이름이 딱 맞지 않습니까? 저번에는 저의 맏아들 권리를 가로채더니, 보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습니다.” 그러고서는 저를 위해선 축복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악을 쓰자, 이사악이 에사우에게 대답하였다. “얘야, 나는 그를 너의 지배자로 세웠고, 그의 모든 형제들을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술을 그에게 마련해 주었다. 그러니 내 아들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에사우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는 축복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에사우는 한없이 목 놓아 울었다. 그러자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살 곳은 기름진 땅에서 저 위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면서 네 아우를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뿌리칠 때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

 

이사악은 서러움에 울부짖는 맏이를 달래려고 축복 아닌 나름으로 희망을 안긴다. 비록 기름진 땅이 아닐지라도, 그래도 땅에서는 발붙이고 살긴 살겠단다. 야곱의 이스라엘과 에사우의 에돔 사이의 충돌 관계를 묘사하면서 미래를 사전에 점쳐 주는 것처럼 보인다. 후에 그들의 역사에 따르면, 다윗은 아직 왕국을 갖추지 못했던 에돔을 굴복시켰으나, 후에 에돔은 독립을 되찾아 바빌론 유배 시대에는 에돔인들이 유다 남쪽을 차지하였다.

 

앞으로 에사우는 정착된 농경 생활보다는 유목민으로 살아갈 게다. 야곱의 가로챈 복과 에사우의 잃어버린 복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선택된 이가 어쩌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에 충실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은총은 그리 호락호락 주어지지는 않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조사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비단 우리가 아무리 바장이더라도 그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선택과 구원은 그래도 그분의 자비 때문임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계속]

 

[참조] : 이어서 '4. 에사우의 복수 다짐/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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