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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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마르의 꾀[7]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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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0-04-27 ㅣ No.13785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타마르의 꾀

 

그리하여 타마르는 친정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친정에 머무르는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은 것 같다. 이는 두 아들이 죽은 진짜 이유가 자기 아들보다는 며느리 쪽에 둔 것을 지레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타마르와의 관계를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유다의 판단이 옳은지의 여부는 후에 밝히기로 한다. 암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수아의 딸,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물론 타마르가 친정에 간 것도 한참이나 세월이 흘렀으리라. 아무튼 유다는 아내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르고 정해진 애도 기간이 지나자, 그는 아둘람 사람인 친구 히라와 함께 팀나로 자기 양들의 털을 깎는 이들에게 올라갔다. 팀나는 아둘람의 북쪽이자, 베들레헴의 서쪽에 있는 산악 지방이다. 통상 양털을 깎을 때는 축제가 곁들여진다. 양을 키우는 목축 업자들에게는 틀 깎는 일은 술을 마시며 즐기는 큰 축제의 때이기도 했다. 야곱도 이런 기회를 틈타서, 외속 라반과의 생활을 청산으로 하란을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31,19).

 

타마르는 너의 시아버지가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팀나로 올라간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입고 있던 과부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몸을 가리고, 팀나로 가는 길가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나가 앉았다. 셀라가 이미 다 컸는데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데려가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타마르는 시아버지 유다에 대해 좀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게다. 자신은 이렇게 친정에서 하마하마하며 시댁에서의 부름을 받을까 봐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시아버지는 이에 아랑곳도 없이 축제에 참석하러 간다니!

 

그리고 이맘때면 셋째도 이미 결혼 적령기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친정에 온 이후 계속 입고 있던 과부 옷을 벗어 던지고 너울을 써서 몸을 가렸다. 너울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가 좀 곤란한 경우에 했다. 당시 여자들은 혼인과 같은 특별한 상황이나(24,65; 29,23-25), 자기 신분을 노출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너울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며느리의 신분을 너울로 숨길 참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주 위험천만한 수작이 아닌 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 같았다. 타마르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당시의 유다 율법에 따라 죽은 남편의 피와 똑같은 혈통의 아이를 갖는 권리를 얻으려 했다. 그는 이미 유다의 첫째 에르의 아내였다. 유다 가문에 의연한 며느리다. 율법대로라면 셋째 시동생의 도움으로 장남의 후사를 낳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시댁의 전갈을 기다리기에는 이제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너울을 쓰고는 아예 셀라를 자기에게 주지 않은 시아버지를 유혹하기로 대담한 결심을 한 것이다. ‘너울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창녀 차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마르가 입은 옷과 자세는 그녀를 쉽사리 신전 창녀로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그 자체가 그녀의 애초 계획일진대, 누구나가 그렇게 보았을 수도. 이렇게 타마르는 창녀처럼 치장하고는 두 개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에나임성문 어귀에 나가 시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팀나로 가는 길목이었다.

 

마침 유다가 그녀를 보았을 때,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창녀려니 생각하고는 수작을 걸어 왔다. 그래서 그는 길을 벗어나 그 여자에게 가서 말하였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와 한자리에 들어야겠다.” 유다는 그가 자기 며느리인 줄을 정작 몰랐을 것이다. ‘그 집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 죽음의 안방으로 내려가게 된다.’(잠언 7,27) 라는 말대로 간음녀인 창녀들과 놀아나는 일은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지지만, 때가 양털 깎기 축제의 때인지라 유다는 자신의 기분을 만족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다짜고짜로 물었다. “저와 한자리에 드는 값으로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내 가축 떼에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마.” 하고 그가 대답하자, 그 여자가 그것을 보내실 때까지 담보물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유다가 너에게 무슨 담보물을 주랴?” 하고 묻자, 그 여자가 어르신네의 인장과 줄, 그리고 손에 잡고 계신 지팡이면 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며느리와 시아버지, 아니 유다와 타마르의 남녀의 대화에서 창녀와의 매음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관습상으로 타락으로 인해 저주받아야 할 만한 것 같은데도,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전혀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물론 타마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은 남편에게 후손을 이어 줄 생각으로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다. 이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 양쪽이 스스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아마도 하느님의 힘이 이들에게 미치는 것 같은 생각이다.

 

사실 타마르가 유다에게 담보물로 제시한 세 가지는 당대에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소유자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인장과 줄은 추측컨대 에 달아 목에 거는 인장으로 유복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표지로 여겨지는 일종의 신분증과 같은 것이었다. 또한 지팡이는 상당히 공들여 다듬어진 것으로서 일종의 권위의 상징을 나타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세 가지는 당시 상류 계급에 속한 인물임을 드러내는 표지였다.

 

이처럼 중요한 개인 소지품을 유다는 서슴없이 며느리에게 담보물로 맡겼다. 그만큼 그는 그 창녀에게 반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며느리와 한자리에 들었다. 타마르는 그 길로 임신을 해 유다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며느리와 한 자리에 드는 자는 추잡한 짓을 하였으므로, 그 죗값으로 그는 반드시 죽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0,12).라는 율법이 무색할 만큼 유다는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 물론 며느리 타마르의 이런 기발한 발상도 율법을 따지자면 빠져나가기가 참으로 궁색할 수도. 암튼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묵상에서 확인해 보자.

 

이 일이 있고 난 뒤, 타마르는 일어나 돌아가서 쓰고 있던 너울을 벗고 다시 과부 옷으로 갈아입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타마르의 변호‘ / 요셉[4] 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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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 옷,너울,신전 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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