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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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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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5-21 ㅣ No.138406

인터넷에서 좋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영상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공감하였습니다. 제목은 나는 여러분을 벌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일깨우러 왔습니다.”였습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호주에서 몇 달씩 산불이 멈추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하였습니다. 가뭄이 길어지고, 사막이 넓어져도 무관심했습니다. 강력한 태풍과 쓰나미가 왔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기가 오염되고, 강물이 썩어가고, 바다에 쓰레기 섬이 떠다녀도 아직은 별거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미세먼지가 태양을 가리고 호흡기 질환이 늘어나도 곧 좋아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전쟁으로 사람은 죽었고, 난민들은 바다 위에서 죽어갔습니다. 적자생존, 양육강식을 이야기하며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왔습니다. 여러분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재앙이고, 재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실수와 잘못으로 우리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직자가 넘쳐나고, 여행도 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코로나19는 우리를 일깨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성공, 명예, 재물이라는 별을 쫓아가기보다는 믿음, 희망, 사랑의 별을 쫓아가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자연은 파괴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계속 자연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삼으면 더 큰 것이 우리를 일깨워 줄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유와 욕망의 배에서 내려와 존재와 가치의 배를 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발열체크를 해야 하고, 손 소독을 해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사제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불편을 감수하면서 우리는 공동체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수도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공감이 가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나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둡니다.

체온을 측정하면서, 내 사랑의 온도는 얼마나 될지 헤아려봅니다.

손 소독제로 손을 닦으면서 하느님 앞에는 깨끗한 손, 빈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말을 줄이고, 덜 먹고 덜 마시기를 다짐합니다.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서 하느님이 내게 정해주신 자리를 찾았는지 성찰해 봅니다.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내 이웃 사람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해주었는지 반성 해봅니다.

 

생각하나 바꾸면 불편함이 나를 성찰하는 묵상이 됩니다. 아기의 출산은 분명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박해와 순교는 고통의 시간이며, 절망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행복의 시간이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물리적인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의미의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치의 시간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헤어짐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가난함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아픈 것도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단절과 허무입니다. 세상에서 이룬 모든 것들과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죽음도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두렵고 떨리는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며,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걸어서 먼 길을 갔으며, 때로는 매를 맞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치의 시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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