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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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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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6-09 ㅣ No.138805

처음 외국에서 지낼 때입니다. 2005년이니까 15년 전입니다. 한국에서 당분간 지낼 수 있는 돈을 가져왔습니다. 교구에서도 매달 생활비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분명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낯선 곳에서 지내는 두려움, 외로움 때문에 잘 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행 계좌도 만들었고, 한국 성당에 주일미사를 도와주었고, 강의를 다니면서 시간도, 여유도 생기면서 돈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돈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입니다. 삶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두 번째 외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월급도 나오고, 한국에서 쓰던 카드가 있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유롭게 돈을 쓰고 있습니다. 성격 탓인지 아직도 몇 번씩 생각해보고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기는 합니다.

 

군자는 중용의 삶을 산다고 합니다. 소인도 중용의 삶을 산다고 합니다. 군자의 중용이 시의적절한 중용이라면 소인의 중용은 무기탄의 중용이라고 합니다. 군자는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 범람해서 갈 수 없다면 강물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소인은 약속했으니 불어난 강물을 건너다 위험에 처합니다. 군자는 쓰임과 재능과 본성을 알아보는 겁니다. 큰 기둥은 문을 부수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쓰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합니다. 재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빼미는 밤에는 작은 벌래도 볼 수 있지만 대낮에는 산도 보지 못합니다. 본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인은 쓰임과 재능과 본성을 알지 못합니다. 소인은 열심히 달리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쓰임과 재능과 본성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도 중용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알았지만 율법의 진정한 쓰임을 몰랐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지만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의미를 몰랐습니다. 단식하고 기도했지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단식과 기도의 진정한 가치는 하느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표와 시대의 흐름을 아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어부에게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재능을 보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의 재능을 교회를 세우는 재능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정한 여인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죄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열등감 때문에 닫혀졌던 하느님의 모상을 사랑으로 깨우셨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게 하셨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중용의 삶이며,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데 그 때 보는 세상은 예전에 보는 세상과는 다른 법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율법이라는 에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무기탄의 중용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라는 을 넘어 시대의 징표와 흐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시의적절한 중용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심판과 비판이 아닙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과 자비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구속과 억압이 아닙니다. 율법의 완성은 자유와 용서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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