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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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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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9-09 ㅣ No.140642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통해서 미리 다음 학년 것을 배웁니다. 학교의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 아낌없이 비용을 지출하고,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 학생들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공부를 해서 행복해야 하는데 자존감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다고 합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목적지가 틀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그에 합당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며칠 전에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자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지를 교육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경쟁과 지식의 암기를 통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독서와 성찰을 통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람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능력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능력은 탐구하고 토론하면서 키워질 수 있습니다. 결과의 평등은 아니더라도 기회의 평등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간 대한민국의 교육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목적이 변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교육목적은 황국의 신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에 충성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의 교육의 목적은 자유의 투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산업화의 일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싸워야 했고,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민주화된 시대의 교육의 목적은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자원이 없으니 인적자원을 키우자고 하였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자아의 발견, 사회적인 책임, 창조적인 능력 배양,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100년을 위한 교육은 자아의 발견, 사회적 관계 형성, 창조적 능력 배양, 행복한 삶을 향한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행해지던 것들을 고쳐야 합니다. 첫째는 입시 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과도한 경쟁과 입시 열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등록금을 없애야 합니다. 과도한 등록금은 가정경제에도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해야 합니다.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야 합니다. 자아의 발견, 사회적 관계 형성, 창조적 능력 배양, 행복한 삶은 서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대학은 이런 방향으로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민적인 합의와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예수님의 교육은 어떠하셨는지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자존감을 키워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나는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자존감도 높여 주셨습니다. 여인들의 자존감도 높여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자존감도 높여 주셨습니다. 병자들의 자존감도 높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관계 형성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강도를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자캐오의 선행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편견, 차별, 신분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큰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적인 능력을 키워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적인 능력은 경쟁과 이기심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스스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발전시키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두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키워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역시 경쟁과 이기심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발전시키면 더 큰 일을 맡겨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였고, 이것이 교회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고생하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시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여러분은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들의 꽃을 아름답게 입혀주시고, 하늘의 새를 먹여주십니다. 여러분은 소중하니 하느님께서는 더 잘 입혀주시고, 먹여 주실 겁니다.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이웃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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