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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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길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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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0-10-14 ㅣ No.141411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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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길


길은 항상 일정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 너비를 결정하는 양 가장자리 주위의 들과 산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나아가다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지점에서 끝난다.
아들아, 각 사람의 삶도 길과 유사해서 출발점과 최종 목적지가 있다.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이 있고, 이 길은 영원한 길이다.
그런데 지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와 지성이 있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과 유사할 정도로 위대하다.

지상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인간과 달리 본성이 시키는 대로 일정한 길을 따라가도록 정해져 있다.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길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로 말미암아 기묘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최종 목적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정해 주신 길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다.
어처구니 없고 흉측하기까지 한 일은, 사람들이 지상의 다른 어느 생물보다 그들을 드높여 주는 타고난 재간을 남용하면서 이 세상 나그네살이의 여정을 버리고, 영원한 멸망으로 데려갈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타락을 알지 못하고, 또 거짓의 두목인 사탄이 유혹과 속임수로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겨 농락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물론, 사탄은 사람의 자유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하기야 사람이 거기에 협력한다면 그리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벗어남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내 '구속'의 귀한 열매로 그 나약함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탄을 따르고 하느님을 거부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길

사람들은 오늘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나를, 곧 곧고 안전한 길인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교활한 모방자인 사탄이 알려준 길로 접어들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내 포도밭에 가라지 씨를 뿌리는 자들은 메뚜기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단지 어리석음을 퍼뜨리고 여러 이단으로 영혼들을 대량 학살하고 있을 따름이다.
허영심과 교만으로 달아오른 마귀의 화신인 그 이단 사설(邪說)들은 음란 서적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건만, 신학교나 수도원이나 학교 등 어디서나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치명적인 독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특히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길은 모태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귀착점은 육신의 죽음이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결정하고, 그 이후에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선용했는지 악용했는지에 따라 행복하건 불행하건 영원한 삶이 시작된다.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낳음을 받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인 나는, 때가 차자 지극히 순결하신 내 어머니의 태중에 강생하셨고, 지금은 영광에 싸여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있지만, 또한 '신앙과 사랑의 신비' 안에서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으로 언제나 너희 가운데에 있다. 나 역시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을 걷고자 했으니, 출발점은 내 어머니의 동정의 태중에 잉태되는 것이었고 도착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서 그 위에 달려 죽은 육신의 죽음이었다.
'길'인 나는 너희를 위해서, 곧 너희 각자가 나를 따름으로써 평탄한 길을 가고 의심이나 불안을 품지 않으며 위험하게 빗나가지도 않게 하려고 나의 이 세상 길을 끝까지 다 걸었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나의 길은 - 이는 빗나가거나 되돌아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다 -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좋고 안전한 길이며 무한한 겸손의 행위로 시작되는 길이다.


무한한 겸손

하느님 아들의 강생은 무한한 겸손의 행위였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이 기본적인 덕행이고 모든 덕행을 이루는 든든하고 본질적인 기초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숱한 사이비 신학자들은 이 신적 사실을, 즉 내가 외양간으로 쓰이는 춥고 누기 찬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조금만 생각해도 넉넉히 깨달을 수 있으련마는!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나의 길은 그렇듯 더할 나위없는 절대 빈곤 속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비 사회의 지지자들이면서 이른바 나의 추종자들이기도 한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내 사제들은? 또 내 복음의 신적 단순함을 망각하고 복잡한 궤변과 논리로 유해한 책을 쓰기를 즐기는 몇몇 주제넘은 신학자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나는 무한히 단순한 하느님이므로 단순함을 사랑한다. 안락하고 난방이 잘 된 아파트를 좋아하는 저 신학자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외양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또한, 부와 안락을 탐착하고, 아무것도, 심지어 정당하지 못한 것까지도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런 신학자들의 삶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들의 구세주의 삶과 얼마나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내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모든 호소에 귀를 막고, 단지 교황의 말을 반박하는 데만 재빠른, 무관심한 이기주의자들도 있으니, 이런 자들은 '진리'로 인해서 초래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기초조차 잡혀 있지 않은 그런 모든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내 교회에 끊임없이 흙탕물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내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을 잊어버린 자들이다 : "과연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인간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에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환희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1,18)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나는 내가 세상에서 걸었던 길을 통해서 이를 환히 보여 주었으니, 그것은 겸손, 가난과 순종, 더없이 혹독한 고통, 내 아버지와 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길이었다.
사제와 목자들을 위시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바오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했던 이 말을 잘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았습니다."(로마 1,2)


교만과 자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천 년 전의 이교도들보다 더 나을 성싶으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길'을 버리고 더없이 천박한 육정의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들고서도,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그들은 나의 진리를 흐리게 하여 그들 자신의 교만한 자만의 구렁텅이 속에 매장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예언자들과 신(新)프로테스탄트 선전자들이 하고 있는 짓이 아니겠느냐? 이 신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것은 역겨운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품이, 처음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길을, 나의 길이 아닌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번번히 내 '자비'에 호소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자비의 때였지만 바야흐로 '정의'의 때가 오려고 한다.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께서 정의를 행사하시는 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겠느냐!
그들은 어찌나 분별이 없는지, 내가 나의 삶을 부인하기를,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나의 신원마저 부인하기를 바라고 있을 지경이다.

아들아, 한 번 더 네게 당부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회개하도록 호소하여라. 어떤 반발이 일어나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지만, 그들이 교만한 고집을 꺽지 않는 이상,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세상의 '빛'인 내가 가져온 빛을 향해 눈을 뜨기를 원치 않는 이상, 이 세상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암흑밖에 달리 수확할 것이 없지 않겠느냐?
네게 강복한다. 나와 함께, 너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내 어머니께서 네게 축복을 보내신다.

(1975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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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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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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