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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코로나 시국 섣달 그믐날 양평서 만난 젊은 신부님들과 이포 나루터 회고와 사목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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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찬 [andreaphc] 쪽지 캡슐

2021-02-11 ㅣ No.221987

2021년 코로나 시국 섣달 그믐날 양평서 만난 젊은 신부님들과 이포 나루터 회고와 사목단상 ! 

 

 - 정영식 신부, 변기영 몬시뇰, 김동원 신부와, 동북아 선교 지원자 정원준 미카엘 및 고옥자 沙右居士紀念書齋 자료실장(2020.02.11)- 

 

코로나 난국에 이렇게 만나다니! 중원 땅 동북아 선교를 꿈꾸는 젊은 선교사도 만나고! 

 

中國人들의 大國夢과 日本人들의 大陸夢에 빠지지 않는 한국 젊은이들의 선교는 순교이니, 주님의 제자들이 모두 순교하셨고, 특히 265분의 역대 교황님들 중에 약 60 ~ 70%의 교황님들께서 모두 순교하신 분들이니, 우리 모두 순교생활로 매일 선교에 임해야 할텐데! 더욱이 코로나 대 난국에 우리가 섣달 그믐날 와서 점심을 한술 뜨며 밟고 가는 이 땅은 우리 수원교구에서 도시화 현상이 가장 힘든 산악지대의 양평군과 여주시의 이른 바, 왕조실록에서까지 거론 되던 양여지간이 아니랴,,,! 그러나 신앙사 면에서 보면 매우 뜻깊은 지역이다.

  

楊麗之間(양여지간); 양근과 여주 지역, 權哲身, 權日身, 등 하느님의 종들이 천주교 신앙의 씨앗을 뿌리러 왕래하던 곳, 더욱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건너던 이곳 利浦 나루터와 강건너 권철신, 권일신, 권제신, 권익신, 권득신, 저명한 5형제 분 학자들이 살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던 학당과 서재와 학문을 탐구하며 토론하던 강학당이 있던 양평의 葛山里에는 지금 옛 학문과 신앙의 전당이 있던 터전에 현재 양평 초등학교, 양평 중학교, 양평 고등학교, 양평 도서관, 양평 읍사무소가 자리하고 있고, 한강을 출입하던 葛山津 나루터가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의 더구나 이포나루터 건너의 천서리는 양근 갈산리 지역과 함께, 한국천주교회가 잊을 수 없는 유서깊은 곳이다! 

 

 

필자가 1971년 8월 말 사제품을 받고, 교구장 윤공희 주교님 비서로 임명되었을 때, 그 해 9월 말10월 초(?)에 당시 교구 상서국장 故 이계항 신부님과 함께 교구장 윤 주교님을 모시고 양평본당과 용문본당에 교구장 순시, 수원 옛 교구청사에서 일찍 점심을 먹고, 검은 찦차로 이천을 지나 이포 나루터에 와서, 주로 사람들을 태워 건너게 하지만 시골 마차들도 한번에 3대 정도씩을 함께 싣고 강을 건너주던 노젓는 큰 바지선 배로, 필자도 신부 된지 한두달 후에 처음 건너본 기억이 생생한 지역이다. 당시는 곤지암 천부터 퇴촌을 거쳐 양평까지 한강에 다리가 전혀 하나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래서 양평과 용문 본당은 수원교구청과의 교통이 어려워서, 원주교구에서도 바라고 있는 터에, 본당 신도들도 별로 많지 않으니, 아예 원주교구로 이관하자는 말이 교구 신부들 사이에 자주 거론되었었다. 때마침 9월 말(?) 10월 초(?) 때늦은 큰 비가 그친 후라서, 양평, 용문 본당 순시를 마치고, 해가 저물어 차려준다는 저녘도 못 얻어먹고, 급히 되돌아올 때 우리 찦차를 실은 노젓는 바지선 배가 작은 늦장마의 강원도 상류 강물이 불어서 강건너 남쪽 이포나루터에서 꽤 멀리 하류로 수백미터가량 떠내려가서 길없는 밭둑에 닫는 바람에, 나이 젊은 내가 내려가서 이웃 마을 사람들을 여러 명 불러서 힘을 합쳐서 삽과 가래로 임시 길을 만들고 여럿이 찦차를 밀어서 밭을 지나 이천 가는 길로 들어서 밤늦게서야 수원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지금 이포나루와 양평 여주 가는 길은 이천, 용문, 홍천 가는 이곳 갈산진 나룻터의 2차선과 4차선 전용차선과 더불어 광주에서 원주, 평창, 강릉, 주문진 가는 고속도로 신설 개통으로, 이곳 대신면 새 인터체인지가 생기는 바람에, 오늘의 천서리는 인구가 계속 늘고 상가들도 커가며 늘어가고 있어서, 교회도, 만시지탄이 있으나 하루 속히 본당 터를 마련하고 전교사를 파견해야 할 사목적 필요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특히, 강원도 원주, 홍천, 인제, 양구, 등 1군사 관내의 장병들이 서울과 전국 각처로 휴가나올 때 반드시 들려서 점심을 하고 가야 하는 [천서리] 주막 거리가, 지금은 옛 여주군 관할이던 현재의 개군면이나, 현 여주시의 대신면과 양평군의 지평면 소재지 못지 않게 커지고 있다.

 

곡수리 공소 마을은 영조,정조 때부터 내려온 곡수리 장터가 폐지되어 없어지고, 60여 년 역사를 지닌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있던 초등학교도 몇년 전부터 신입생이 매년 한두명 뿐이다가 현재는 전교생이 모두 50여 명 뿐이고, 우체국도 폐쇄되어 빈 건물만 늘 잠겨 있으며, 병원이나 제대로 차린 약국도 없는데다가,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공소 신자들 평균 연녕도 80여세다. 그나마 노환으로 성당에 나오기도 힘들어 하시고, 요새같은 고약한 코로나 대난국 시절에는 성당 나오시라고 하기가 사실 어렵다. 매월 병원출퇴근하다시피 해야 하고 또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없지 않아, 코로나로 성당에서 섣달 그믐에도 신자들 보기가 어렵다. 

 

왕복 4차선의 일반 국도와 자동차 전용도로와 고속도로가 신설되어 인터체인지도 생겨서, 운행차량이 급증하는 이 지역에 성당건립을 위하여 정성을 바치려는 교우들이 있으면 수원교구 주교님께 알려 드리기 바랍니다.-Msgr. Byon-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Msgr. Peter Byon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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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변기영몬시뇰사랑방.kr  또는  www.msgr-byon.org    www.msgrpeterbyon.org 의 알림.기별.시문에서 퍼온 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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