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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살레시오회 : 선은 죽지 않습니다. 승리는 언제나 하느님 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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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1-09-08 ㅣ No.149609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원수 사랑’, 때로 백번 천 번 생각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게 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이냐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앞서 사셨던 신앙의 선배들은 그 어렵다는 원수 사랑을 기쁘게 실천했습니다. 특히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의 빛에 언제나 깨어있던 사람들에게 원수 사랑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유다인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서품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 사제 잉겔마르 운차이티크 신부(1910~1944)는 다카우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나치 수용소가 첫 번째 소임지가 된 것입니다. 그는 수용소를 자신의 첫 본당이요 거룩함을 배우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비밀리에 누나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감동적인 메시지가 적혀있었습니다.

  

“때때로 불운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일 때가 많습니다. 삶의 학교에서 겪게 되는 체험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에 평화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끼고 경험하면서 그들이 참 평화를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신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1944년 12월 수용소에 장티푸스가 발병하게 됩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2천명이 넘는 수용자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전염된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막사에 격리되어 소리 없이 죽어나갔습니다.

  

수용소장은 죽어 나가는 병자들을 운반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운차이티크 신부는 20명의 동료 사제들과 함께 지원했습니다. 사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100퍼센트 죽음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는 동료 사제들과 의기투합해서 생지옥 같은 병동을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머리맡에 앉아 그들은 따뜻이 위로했고 격려하며 마지막 길을 잘 동반했습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쁘게 고백성사와 병자성사를 집전했습니다.

  

봉사를 시작한 지 몇 주 후 운차이티크 신부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1945년 3월 2일 34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연합군이 수용소에 진군하기 불과 몇주 전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선은 죽지 않습니다. 승리는 언제나 하느님 편에 있습니다. 때때로 사랑을 전하는 일이 쓸모없게 여겨진다 해도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깨어 있고 그 사랑이 피조물이 아닌 하느님께 향해 있다면 그 힘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평화가 다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날이 올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로버트 엘스버그,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바오로딸)

  

그 혹독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늘 감사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면서 당당하게 죽어간 운차이티크 신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원수 사랑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어려운 원수 사랑에 기쁘게 도전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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