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10(녹)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독서,복음서 주해

스크랩 인쇄

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9-09 ㅣ No.149624

1독서<나는 전에 그리스도를 모독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시작입니다. 1,1-2,12-14

1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나 바오로가,

2 믿음으로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내리기를 빕니다.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장 엘마르)

11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혹은 편지를 썼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편지는 바오로의 친서 형식을 빌려 그의 권위를 내세운다. 바오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므로 그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그가 편지에 쓰는 말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분의 권위를 지닌 말이다. 필자는 이 편지의 가르침이 바오로의 복음선포에 의거한 것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로로가 쓴 것처럼 꾸민 것이다. 하느님을 우리의 구원자라 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희망이라 했다. 이 두 표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 자신을 구원자로 드러내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고, 또한 희망이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니 우리의 희망도 진실하고 확고한 근거를 가진 희망이다.

 

2

참된 아들이란 본디 합법적인 부부의 적지를 뜻하는 표현이다. 여기서는 바오로와의 친밀성을 가리킨다.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개종시키고 안수례에 의해 교회 지도자로 임명했다. 어쨌든 이 편지에서는 티모테오를 신앙이 확고하여 믿음직하고 진실한 지도자라고 증언한다.

 

13

바오로의 생애에는 뚜렷한 전환점이 있었다. ,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개종하고 사도직을 맡았다. 바오로 친서들에 비해 사목서간은 바오로의 비그리스도교적 과거를 더 준엄하게 비판하는 한편 바오로의 모독을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변명한다. 역사상의 바오로 자신은 오히려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la의 은혜를 강조했다. 실상 친서의 바오로는 유다교인으로서의 자기 과거를 불신앙이나 무지 또는 모독의 생활로는 보지 않았다.

 

그의 개종은 죄의 불경에서 벗어나는 전환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과거에 경건한 유다인으로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개종은 다만 유다교인의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미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상, 과거 유다인으로서 중시했던 가치는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바오로의 개종을 필자 자신의 시대에 있어서의 개종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보고 소개한다.

 

 

 

 

복음<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뒤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렸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39

39절은 상징어. 그 변체가 마태 15.14에 있는데 바리사이들을 눈먼 길잡이라 한다. 그들이 율법의 세부 규정은 강조하면서 그 근본 취지는 망각했기 때문이다.

 

40

40절의 변체가 마태 10.24-25;요한 13.16;15.20에 있다. 단절어의 뜻인즉, 모름지기 제자는 예수 스승을 넘어설 생각을 말고 언제나 그분을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41

자기 자신은 큰 허물을 지닌 주제에 남의 작은 허물을 고치려는 짓거리를 말하시는 비유다. 마태 7.3-5에 변체가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70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