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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도란도란글방/ 마지막 추수(秋收) (묵시14: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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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9-21 ㅣ No.149886

 

 

(공동번역성서) 2021. 9. 21. [한가위] 도란도란글방

 

 마지막 추수(秋收)

 

(묵시14:14-20)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손에 날카로운 낫을 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15 그리고 천사 하나가 성전에서 나와서 그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 에게 큰 소리로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낫을 들어 추수하십시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16 구름 위에 앉은 분이 낫을 땅 위에 휘두르자 땅 위에 있는 곡식이 거두어졌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으로부터 나왔는데 그도 또한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불을 지배하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는 천사에게 큰 소리로 '당신의 날카로운 낫을 들어 땅의 포도원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 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9 그래서 그 천사는 땅 위에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가지고 하느님의 큰 분노의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 던져 넣었습니다. 20 그 술틀은 성 밖에 있었고 포도가 그 속에서 짓밟혔습니다. 그 술틀에서부터 피가 흘러 나와 한 길이나 되는 홍수를 이루어 거의 천 리 가량이나 퍼져 나갔습니다.

 

요한묵시록 12장부터 14장은 요한묵시록 전체의 요약(要約)이며,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요약인 하느님의 구속(救贖)사역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해 놓은 부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12장 처음에 여인이 낳는 아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탄생하게 된 교회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게 될 것이며 사탄의 세력은 그 성도들을 어떻게 공격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 나가다가 14장에 와서는 결론으로 그 마귀의 세력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공부할 부 분이 바로 그 결론(結論) 부분입니다. 심판(審判)! 먼저 14절부터 보겠습니다.

 

(묵시14:14)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손에 날카로운 낫을 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분이 등장합니다. 그 분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시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계십니다. 날카로운 낫이라는 것은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말합니다. 우리는 금방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7장으로 가서 확인해 보고 가겠습니다.

 

(다니7:13-14) 13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믓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본문 14절에 나오는 구름을 타고 계신 그 사람의 아들과 같은 분은 바로 이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금 면류관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금관’ ‘스테파노스는 승리한 자가 쓰는 관, 면류관 crown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묵시록 1장에서도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묵시1:7) 7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 인자 같은 이가 왜 다시 오셔야만 합니까? 그 분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은 인류 최후의 심판의 날입니다. 그 분은 심판을 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자 같으신 예수님께서 손에 날카로운 낫,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낫은늘 추수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는 구원을 상징하는 추수와 심판을 상징하는 추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심판의 추수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심판의 낫을 참고로 찾아볼까요.

 

(즈가5:1-3) 1 또 내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두루마리 책 한 권이 날고 있었다. 2 그가 나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기에 나는 '스무 자 길이에 나비가 열 자 되는 두루마리 책 한 권이 날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이것은 온 나라를 휩쓸 저주이다. 이 두루마리 한 쪽에는 '도둑질하는 자들은 다 여기에서 사라지리라' 라고 적혀 있고, 다른 쪽에는 '맹세하면서 사기치는 자도 다 사라지리라' 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날아가는 두루 마리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고 하지요? 두루마리’ ‘메기라(LXX, 70인 역)에서는 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주와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어떤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감히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명령을 합니다.

 

(묵시14:15) 15 그리고 천사 하나가 성전에서 나와서 그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 에게 큰 소리로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낫을 들어 추수하십시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휘둘러서 이제 익을 대로 다 익어버린 땅의 곡식을 거두라고 명령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명령 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하느님밖에 없으시지요? 그럼 이 천사는 지금 누구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그 천사가 하느님이 계신 성전에서 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 명령을 받고, 최후의 심판을 행하셔야 합니까? 왜 굳이 이런 장면이 등장할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그 최후의 심판의 때는 아버지만 아시지, 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르13:31-33)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33 그 때가 언제 올는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

 

예수님조차도 언제 최후의 심판이 임하게 될지 모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예수님이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심판의 낫을 휘두르시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이비들이 그 때를 예언했다가 망신을 당했었지요?

참 이 세상에는 예수님보다 더 센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님도 모르신다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15절에서 심판 받을 죄인들을 가리켜서 땅의 곡식이 다 익었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최후의 심판은 이 땅의 죄()가 최절정(最絶頂)에 달해서 온 땅에 관영(貫盈) 하게 될 때그 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이 점점 악()하게 무르익는다는 것은 이 세상은 점점 악하게 변해 간다는 말이겠지요? 후 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제 곧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점점 악해 질 것이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잔인하고 포악하고 엽기적이며 추악하게 변해갈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 죄악의 정점에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창세15:16) 16 네 자손은 아모리족의 죄가 찰 만큼 찬 다음, 사 대만에야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곧바로 안 주시고 4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난 후에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바로 그 가나안을 멸망시켜서 이스라엘에게 주시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 이유를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죄가 영글고 영글어서 추수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점점 더 추악해져서 나중에 하느님 앞에서 핑계치 못할 상태가 될 때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속에서 살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렇게 사망(死亡)을 향해 달음박질치고 있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힘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18절과 19절에 보면 이제 곡식의 추수가 아닌 포도의 추수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역시 무시무시한 심판의 국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묵시14:18-19) 18 또 불을 지배하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는 천사에게 큰 소리로 '당신의 날카로운 낫을 들어 땅의 포도원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9 그래서 그 천사는 땅 위에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가지고 하느님의 큰 분노의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 던져 넣었습니다.

 

18절에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祭壇)으로부터 나왔다는 표현은 우리가 8장에서 본 어떤 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단 곁에서 금향로를 가지고 성도들의 기도를 받아서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서 제단 위의 불을 향로에다가 담아서 땅에다가 쏟은 그 천사 기억나십니까? 그 천사가 불을 땅에다 쏟았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역시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18절에 보면 바로 그 심판의 천사가 또 다른 날카로운 낫을 가진 자에게 외칩니다. ‘포도가 익었으니 포도를 추수해서 포도주 틀에 넣고 밟아라.‘ 무서운 하느님의 심판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 죄인들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넣고 밟으실 것이라는 내용은 이사야서 633절이나 묵시록 1915절에 역시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번의 추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봄철에는 밀의 추수, 곡식의 추수가 있었고, 그 때를 오순절이라 하지요. 가을철에 는 포도의 추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를 초절이라 합니다. 물이 귀한 중동 지방 사람들은 포도주를 음료수로 마셨기 때문에 가을철에 포도를 수확하게 되면 그 포도를 커다란 이중 돌로 된 포도주 틀에 쏟아 넣고 남자들이 올라가서 그 포도를 짓밟았습니다. 그러면 그 윗돌에서 밟은 포도의 즙이 아래 돌로 쏟아져 내려오게 되는데 그 즙을 받아서 포도주를 담갔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 포도주 틀에서 포도를 밟는 남자들의 옷은 물론이요 허벅지까지 빨갛게 피처럼 물이 들었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누구나 그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늘 주변에서 보던 장면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당시 유대인들이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었던 포도주 틀을 밟는 것으로 표현을 해 놓은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그 포도주 틀을 밟는데 거기서 피가 난다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묵시14:20) 20 그 술틀은 성 밖에 있었고 포도가 그 속에서 짓밟혔습니다. 그 술틀에서부터 피가 흘러 나와 한 길이나 되는 홍수를 이루어 거의 천 리 가량이나 퍼져 나갔습니다.

 

그 틀이 밟히니까 피가 나오는데 그 피가 말굴레까지 닿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굴레’ ‘칼리노스는 말의 재갈을 의미합니다. 그 피가 튀어서 말의 재갈의 높이까지 튀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악인들이 당할 극심한 고통을 나타낼 때 쓰이는유대인들 의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에스더기)에도 똑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피가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라고 나옵니다.

1,6004X4X10X10이지요? 우리가 전에 공부하기를 4라는 숫자는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고 했지요? ‘네 천사, 네 모퉁이, 네바람이런 구절들 공부할 때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10이라는 숫자는 왕들과 관련이 있는 숫자입니다.

 

(묵시17:12) 12 그리고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이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때 왕노릇할 권세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피가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라는 말은 그 심판의 범위가 범 우주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어나게 됨을 상징하며, 그 심판이 이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 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세상 왕들과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므깃도 골짜기에 모여서 하느님께 전멸 당하게 되는 유명한 전쟁이 뭡니까? 묵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 바로 그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 땅의 모든 악한 세력이 심판을 받아 불 못에 던져지게 되는 그 모습이 여기 묵시록 14장 말미에 결론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16:12-16) 12 여섯째 천사가 자기 대접에 든 것을 유프라테스라는 큰 강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13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악령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5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6 그 세 악령은 히브리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세상 왕인 마귀와 그 세력들을 모으시고 오늘 본문의 말로 하자면 추수를 하셔서 전부 짓밟아 멸망시켜 버리실 것입니다. 그게 세상의 마지막입니다. 하르마게돈(아마겟돈) 전쟁은 또 21장의 백 보좌 심판과 동일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묵시20:11-15) 11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 나는 또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많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는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냈고 죽음과 지옥도 자기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 행적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15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렇게 묵시록 14장 후반부는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을 보면 그 무르익은 포도들은 성 밖에서 밟힌다고 나오지요?

그 성()은 우리가 거하게 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어린양과 함께 서게 되는 거룩한 산, 시온 산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 밖에 있는 자들은 전부 하느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그 성 밖의 심판을 면하게 되신 것입니까? 여전히 이렇게 못되고 악하고 더러운 삶을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성 밖의 포도주 틀에서 벗어나게 되셨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 대신에 성문 밖에서, 성 밖에서 포도주 틀에 밟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포도주 틀의 저 주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히브13:12) 12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피가 튀어야 할 성문 밖,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튄 것입니다. 우리의 살이 찢겨야 할 성문 밖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 찢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저주의 포도주 틀에서부터 자유로워 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음대로 막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히브13:13-16) 13 그러므로 우리도 영문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 14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16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우리도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따르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장차 올 영구(永久)한 도성을 바라보며 항상 하느님을 찬송하며 선을 행하며 서로 나눠주며 그 다가올 도성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은 도적처럼 우리에게 닥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의 포도주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죽음을 통과하게 되듯 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그 심판 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영원의 시작인 바로 그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엉터리로 사는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기와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는 죽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자동차 사고와 화재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보다 못 배워서 죽는 거 아닙니다. 그들이 여러분보다 능력이 없어서, 가난해서 죽는 것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죽음과 심판을 인식하고 그 죽음 뒤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거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고 내 쉰 숨을 여러분의 코가 다시 들이마시지 못하면 여러분은 죽는 것입니다. 죽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비(無備)()’일 뿐입니다. 콧구멍이 막혀버린 상태를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600년 전의 이사야도 이미 그 진리를 설파해 놓았습니다.

 

(이사2:22) 22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아무 보잘 것 없느니라.

 

사람은 코에서 숨이 끊어지면 그냥 끝입니다. 그러면 당장 그 호칭이 바뀝니다. 아무리 힘이 없고 연약하고 심지어 그가 혼수(코마)상태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코끝에 숨이 붙어 있으면 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코에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그의 호칭은 시체(屍體)가 됩니다.

그리고 그 즉시 그 시체는 사람과 격리가 됩니다. 병원에서 죽은 사람은 시체실로 그 거처를 옮겨야 합니다. 집에서 죽은 사람도 병풍 뒤로 그 거처를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곧 썩습니다. 제가 무덤을 이장할 때 한번 곁에서 지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체가 썩는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합니다. 그래서 영안실이나 병풍 앞에 향을 지독하게 피워 놓는 것입니다. 시체 썩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죽어버린 인간의 몸이 얼마나 더럽고 쓸모가 없는지 그 몸 안에서 기생하던 기생충들 까지도 인간의 숨이 멎는 순간 전부 기어 나옵니다. 여러분은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50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 대 부분이 향후 50년 안에 전부 그 병풍 뒤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의대생들의 해부학 실험실에 잠깐 들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체들 40구가 머리를 빡빡 밀은 채 실습대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남자시체, 여자시체, 나이든 사람시체, 젊은 여인네의 시체, 커다란 용 문신을 한 시체, 온갖 부류의 시체들이 벌거벗겨진 채 누워있었습니다.

이제 실습생들이 들어오면 곧 그 배가 갈리고 내장들이 그 몸에서 떨어져 나와 실험용 병에 담기게 될 것입니다. 머리뼈가 전기톱에 의해 잘려져 나가고 그 안에 들어있는 뇌가 밖으로 떨어져 나올 것입니다. 제가 본 그 시체들은 그냥 실험용 마네킹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분명 거기 그렇게 누워 있는 시체들도 그 코에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청운의 꿈과 야망을 품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거기 누워있던 아낙네들이 살아있는 동안 그 얼굴에 발랐던 화장품들과 그들이 심사숙고해서 골라 입었었을 화려한 옷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도 코에 숨이 붙어 있었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투고, 시기하고, 모함하고, 행복해 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병들고,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 코끝에서 숨이 멎었을 뿐인데 그들은 그렇게 벌거벗겨져서 실험대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실험이 끝나면 그들 은 1000도가 넘는 화장터의 화로 속으로 들어가거나 반 평짜리 땅에 묻혀 여지없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 것입니다. 그게 정말 우 리 인생의 끝일까요? 우리는 그렇게 공으로 없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육신의 삶 이후에 이제 영원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 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사시겠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이제 곧 썩어 문드러질 그 육신을 위해서만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이후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시겠습니까?

 

(갈라6:8) 8 자기 육체에 심는 사람은 육체에게서 멸망을 거두겠지만 성령에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여러분이 평생 이 땅의 썩어질 것들만을 목표로 살게 되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 썩어질 것들과 함께 영원히 썩게 될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어주세요. 제가 여러분에게 이 땅의 삶을 소홀히 여기라는 것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가정, 직장누구보다 성실하게 사세요. ? 많이 버십시오. 명예? 주어지면 받으셔야지요.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반은총의 것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돈과 명예는 세상 사람들의 돈과 명예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것만을 위해서 그들의 인생을 소비하지만 우리는 성실하게 열심히 영원한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잠시 맡기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의 힘이 주어졌을 때 자기 것처럼 교만을 떨게 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 한 물질과 명예가 주어졌을 때 겸손하게 그 것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실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과 명예가 주어지게 되면 그건 100% 그 사람을 파괴해 버립니다.

 

예전에 아침마당이라는 TV프로그램에 어떤 아주머니가 출연을 했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는 병약한 홀어머니가 계셨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병석에 누워 계셔서 누군가 그 곁에서 수발을 들지 않으면 대소변도 못 가리시는 그런 분이셨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그 아주머니는 자기 남동생을 자식처럼 돌보며 사랑해 주었답니다. 그 남동생이 장가를 가게 되었을 때 그 아주머니가 자기 남동생이 결혼을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그 병 수발을 들게 될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 남편에게 동의를 얻어서 그 병든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고 수년간 병 수발을 해 드렸답니다.

아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는 어머니를 수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그 아주머니를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답니다.

그 병든 할머니에게는 서울 변두리에 아주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걸 자식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 어머니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면서 얘야, 그 집은 네 남동생 주자그러셨대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그 말을 듣자마자 만일 자기 옆에 과도가 있었다면 그 어머니를 찔러 죽이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도끼가 있었다면 도끼로 어머니를 찍고 싶더래요 십수년간 어머니를 모시면서 한번도 어머니를 원망해 본 적도 없었고 기쁘게 어머니를 모셨었는데 그 사이에 돈이 들어오니까 갑자기 그 어머니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더라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형이 동생을 죽인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평소에 아주 의가 좋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45억원의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형에게 3억원을 남기시고 동생에게 15억원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다 치르고 동생이 형에게 자기 몫인 15억원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이 동생을 자기 차에 태우고 양산에 까지 가서 그 동생을 살해하고 열 손가락을 다 잘라서 산 속에다가 묻었습니다. 지문 때문에 그랬겠지요?

그런데 집에 와서 그 동생 소지품을 정리하다 보니까 그 동생이 생명 보험에 들어 있었습니다. 유족은 자기 한 명뿐이기 때문에 그 동생의 보험금은 당연히 자기가 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의 손가락을 전부 잘라서 묻어 버렸으니 그 동생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형이 그 동생을 암 매장한 산 아래에 있는 주유소에 어디 어디로 가면 시체가 암매장되어 있을 것이니 신고하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필적 감정에 의해 잡혔습니다. 그 아버지가 남긴 돈 45억원만 없었더라도 그 두 형제는 평소처럼 사이좋게 성실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 때문에 형제의 의()가 갈라지고 심지어 살인까지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한테 유산(有産) 물려주지 마세요. 자식들한테 뭐 물려줄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곳에 잘 쓰세요. 그리고 자식들한테는 올바른 신앙을 물려주십시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그 것을 감당할 실력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치명적인 독입니다. 재벌 자녀들이 그 많은 유산을 가지고도 형제끼리 끊임없이 소송하는 걸 보세요. 자기의 땀 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술과 여자 도박, 마약으로 자기 인생을 망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우리가 옆에서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이 세상의 힘을 상징하는 그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돈을 세상 신’‘맘몬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맘몬 사상이 교회까지 들어와서 성당에서도 돈 없는 사람을 괄시합니다. 신앙을 거룩의 문제, 성품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는가?’로 신앙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사업이 망했다거나 몸에 병이 들거나 하면 당신 혹시 하느님 앞에 뭐 죄지은 거 없어?’ 이렇게 무식 한 소리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쓴 정약용은 한 때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동부승지를 사양하는 상소문에서 자기 입으로 나는 천주교 신자였지만 지금은 그 천주를 버렸다라고 배교를 선언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그 정약용의 셋째형인 정약종은 끝까지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서 땅을 굽어보며 죽을 수 없다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참수를 당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망나니가 헛 칼질을 했을 정도로 서슬이 퍼랬다고 하지요. 그런데 가톨릭에서 발표한 위대한 가톨릭 신자 100에 정약종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정약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죠? 정약용이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적인 성공 앞에서는 순교조차도 빛을 잃어버립니다.

오늘날 개신교도 똑같습니다. 개신교가 예수를 이용해서 병이나 낫고 돈이나 많이 벌고 자식들 좋은 대학 들여보내는 것으로 개신교가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위해 나를 죽이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다른 것들은 전부 사망과 함께 썩어져 버릴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느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쌓아 가세요. 수의(壽衣)에 주머니가 없는 줄 아세요?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망자들이 입는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분별하시고 신앙생활 하세요. 여러분이 쌓아 올린 그 모든 것들이 다 불타버릴 심판의 날이 분명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 끝을 생각하고 그 심판 이후의 삶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 4:26) 26 셋도 아들을 얻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어 불렀다. 그 때 에노스가 비로소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에노스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비로소 야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에노스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의 뜻에 맞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심판대 위에 서게 됩니다. 그 때를 준비하세요. 도적처럼 그 죽음이란 녀석이 여러분을 덮쳤을 때, ‘난 정말 바보처럼 한 세상을 살았구나.’ 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열심히 사세요. 마지막으로 디모테오전서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1디모 6:7-14) 7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9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 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일꾼인 그대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12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와 본시오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는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가 맡은 사명을 나무랄 데 없이 온전히 수행하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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