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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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아합의 죽음 / 통일 왕국의 분열[2] / 1열왕기[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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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09-26 ㅣ No.14999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9. 아합의 죽음(1열왕 22,29-40; 2역대 18,28-34)

 

이스라엘의 아합과 유다 임금 여호사팟이 사마리아 성문 어귀의 타작마당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에, 미카야의 어둠이 깃든 예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두 임금은 라못 길앗으로 진군하기로 하고 앞장 서 올라갔다. 이스라엘 임금이 여호사팟에게 말하였다. “나는 변장을 하고 싸움터에 나갈 터이니, 임금님은 그대로 정장을 하십시오.” 이렇게 이스라엘 아합 임금은 변장을 하고 나서 싸움터로 나갔다. 아람 임금은 그의 병거대 장수 서른두 명에게 명령하였다. “낮은 자든 높은 자든 누구하고도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임금하고만 싸워라.”

 

병거대 장수들은 여호사팟을 보고, “저자가 바로 이스라엘 임금이다.” 하며, 그와 싸우려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여호사팟이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자, 군대 장수들은 그가 이스라엘 임금이 아님을 알아보고서, 그를 쫓다가 돌아섰다. 이는 아람의 병사들이 볼 때에, 유다의 여호사팟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예루살렘 말의 억양을 알아듣고, 아니면 공격의 함성이 이스라엘 임금의 외침과는 달랐기에, 그가 이스라엘 임금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병사가 무턱대고 쏜 화살이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정확히 맞추었다. 사실 그는 미카야의 예언이 적중하여 자기가 죽을까 봐, 적군의 눈을 속이려고 변장까지 한 처지였다. 그것도 유다 임금에게 공개적으로 양해를 얻어가면서 말이다. 이렇게 아합은 단순히 병사 차림으로 싸움터에 나셨지만, 미카야의 예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었기에 그렇다. 비록 일개 병사가 무턱대고 쏜 화살이었지만, 그 화살이 그의 갑옷 가슴막이의 갑옷 비늘들 사이의 이음매에 꽂히자, 임금은 자기 병거를 모는 부하에게 말하였다. “병거를 돌려 싸움터에서 빠져나가자. 내가 부상을 입었다.” 사실 말이 무턱대고 쏜 화살이라지만, 하느님의 뜻이었기에 과녁을 조준하여 정확히 맞추었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그날의 싸움이 아주 격렬해져서, 아합 임금은 아람군을 마주 보며 병거 위에서 부축을 받고 서 있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죽었다. 병거 바닥에는 상처에서 흐른 피가 흥건했다. 해 질 무렵, “각자 자기 성읍으로, 각자 자기 고향으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병사들 사이에 돌았다. 그렇게 임금은 죽었다. 사람들은 임금을 사마리아로 옮겨 그곳에 묻었다. 그리고 그의 병거를 사마리아의 연못가에서 씻었는데, 개들이 그 피를 핥았고 창녀들이 그곳에서 목욕을 하였다. 어쩌면 이는 후대 사람들이 아합 임금을 기억할 때에, 창녀들과 관련된 이 같은 언급, 곧 임금의 피가 달거리하는 창녀들과의 피와 섞였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는 심한 모욕이 된다.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아합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저주스런 일, 그가 세운 상아 궁과 그가 세운 모든 성읍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 곳곳에 쓰여 있지가 않은가? 사실 근세에 와서 므기또에서 이루어진 여러 발굴은, 그 성읍의 권세와 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그곳에서 발굴된 상아 조각 장식들의 유물은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정교하다. 그리고 이 왕국의 사치와 관련하여 아모스 예언자의 격렬한 비난을 들을 만도 하다(아모 3,15; 6,4 참조).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 오모리가 시작한 사마리아 건축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므기또와 하초르를 튼튼하기로 소문이 난 요새 성읍으로 만들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성경 저자는 아합에게 수많은 비난을 쏟아붓지만,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그는 어쩌면 위대하고 강력한 이스라엘 임금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를 여러 문헌에서 알 수가 있다.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 3세의 한 기념비는 유프라테스 강 가 카르카르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기원전 853년경), 아합이 그의 가장 무서운 적 가운데 하나였다고 적는다. 그는 수천 명의 보병과 이천 대의 병거를 아주 질서 있고 조화롭게 이끌었고, 실제로 지중해와 아시리아 사이의 온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군주들 가운데 하나로 세력을 떨쳤다. 아합이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자, 그의 아들 아하즈야가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이즈음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에서부터 아비야, 아사의 통치 아래서는 하느님에게서 매우 멀어졌다. 그러나 여호사팟의 시대에서는 좀 달랐다. 그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 제사년에 유다의 임금이 되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30. 여호사팟의 유다 통치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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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마당,병거대,살만에세르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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