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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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월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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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12-26 ㅣ No.151840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이다. 어부 출신의 그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두 형제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요한 사도는 성경에서 여러 차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되며, 예수님의 주요 사건에 동참한 제자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성모님을 맡기셨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 사도는 스승을 증언한 탓으로 유배 생활을 한 뒤 에페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1독서<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머리말: 생명의 말씀

머리말을 눈여겨보면 발신인. 수신인도, 발신지. 수신지도, 아니 인사조차도 없으니 요한 1서는 실상 편지가 아니고 애제자의 제자인 필자가 요한계 교회 신도를 가르치고 타이르는 훈시 또는 교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가르는 분리 그리스도론 영지주의, 곧 제린투스식 영지주의는 이단이니 마땅히 경계하라는 훈시다.

 

필자가 머리말에서 논지를 분명히 밝힌다. , 훈시의 기본명제를 제시한다. 말씀, 생명, 영원한 생명이신 초월자가 이승에 내려와 사람으로 사신 예수를 우리가청각, 시각, 촉각으로 포착했다고 한다. 예수와 직접 상종한 이는 애제자다. 그러나 필자는 애제자와 자신을 한무리로 보아 우리라고 한다. 애제자의 직접적 예수 체험은 원초적 체험이다. 요한계 교회의 신도들이 이 원초적 체험을 공유하면 필자와 친교를 맺게 될뿐더러 나아가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과도 친교를 맺게 된다. 필자는 원초적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곤 했다.

 

1

머리말(1-4)의 낱말과 문체와 내용은 요한복음 머리말의 그것들과 비슷하다. 거기서 말씀은 영원무궁하신 초월자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이듯이 우리 머리말의 말씀역시 예수를 뜻한다. 아울러 요한계 문헌에서 생명”,“영원한 생명이 예수이듯이, 우리 머리말의 생명영원한 생명도 예수를 뜻한다. 그럼 생명의 말씀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나? “생명이신 말씀으로 보면 무난하다.

 

3

친교라는 명사는 신약성서에서 열여덟 번 나온다. 그 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성령과의 사귐, 하느님과의 사귐, 그리스도인들간의 사귐,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귀게 되면 자연히 가진 것을 나누어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바오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치는 헌금을 코이노니아라고 불렀다.

 

 

 

 

 

 

 

복음<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져 다다랐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

다른 제자란 베드로와 함께 언급된 익명의 다른 제자”(18.15)와 관련된 듯하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서 빼돌렸다는 당시 유다인들의 소문과는 달리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서 가져가 버렸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다른 대목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입을 통해 반복된다(13.15절참조)

 

물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활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없다는 사실을 두 제자에게 알림으로써 급히 무덤에 가서 확인토록 했을 따름이다. “우리라는 표현은 무덤에 찾아간 이가 막달라 마리아 혼자가 아님을 시사한다. 일부 사본에는 우리대신 나는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비판의 원칙에 따라 전자에 더 신빙성을 둔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과 달리 무덤에 찾아간 동기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공관복음에서처럼 예수의 시신에 도유하러 간 것은 아닐 것이다. 장례 때 이미 도유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슬픔 때문에 곡하러 갔을 것이다(11.31 참조).

 

3

원문에는 동사가 단수형태로 베드로에게만 적용되어 있다. , 막달라 마리아의 말에 베드로만이 즉각 반을 보였다. 이 반응은 숨어 있던 베드로가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시사한 듯하다. 그리고 애제자에 관한 언급은 추가되었음도 반증하는 듯하다.

 

5

예수와 애제자의 관계가 시사된 듯하고, 베드로의 권위있는 위치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역학 곧 위계 질서가 반영된 듯하다. 아무튼 경주로 표현되듯이 베드로와 애제자의 어떤 경쟁임은 분명하다. 아마도 저자는 애제자가 베드로에게 모든 우선권을 내주지만 베드로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고 말하고자 애제자를 전면에 내세운 듯한다.

 

7

이 빈무덤사화의 전개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눈으로 본 대상들이 점점 극적으로 고조되며 묘사된 점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입구의 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았고,“애제자는 무덤 안에 놓인 염포들을 보았으며, 베드로는 염포들수건을 보았다. 이런 묘사는 저자의 의도가 담긴 문학적 기교로 여겨진다. , 베드로의 권위와 역할이 반영되며 그들이 눈으로 본 대상들은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일존의 표징으로 여길 수 있다.

 

부활한 예수는 새로운 천상적 실존을 취했기 때문에 염포들이나 수건을 남겨놓고 무덤을 떠나간 것이다. “염포들옆에 수건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는 묘사는 애제자가 믿음을 가지게 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생한 라자로의 얼굴이 수건으로 감겨져 있었다는 묘사와 비교할 때, 예수는 소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부활했다는 표징적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8

빈무덤사화의 절정이다. “애제자는 무덤 안에 들어가 정황을 보자 즉시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덤 안의 정황은 예수 부활의 표징이요 동시에 증언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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